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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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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4년 전 그러니까 2006 6 27, 서강대학교 시장경제연구소 개소식에 초대되어 시장경제의 이론과 실제라는 제목으로 기념 강연을 한 일이 있다. 당시 노무현 정부가 집권한 이후 시장경제에 대한 이념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 때인지라 이 제목을 택한 것이다. 그런데 2008년 세계적 금융위기가 닥쳐 오자 국내에서는 매스컴이 자유경제체제의 종언이니 순수자본주의의 실패이니 하고 떠들어 댔고, 외국, 특히 유럽에서는 Karl Marx의 경제이론을 재평가해야 하다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국내에서도 상당수의 맑시스트 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데 그들 또한 시장경제에 대한 반론의 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예컨대 저항의 세계화 또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혹은 레프트21” 라는 Web-Site에 들어가보면 맑시스트 들의 다양한 담론을 볼 수 있고 그 중에는 보안법, 한미간의 적전 통제권 이양. 대북정책 등의 관한 좌파적 논의가 포함되어 있다.

 

특히 이 Site에서 나의 눈길을 끈 것은 2009 12런던 킹스 칼리지의 좌파 학생 모임인 자본론 강독 그룹과 우파 학생모임인 비즈니스 클럽이 공동 주최한 [자본주의의 미래현 경제 위기의 원인과 전망]이라는 토론회의 발제 문 이었다. 발제문을 쓴 사람은 좌파에서는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 중앙위원이자 킹스 칼리지 교수인 알렉스 캘리니코스 (Alex Callinicos)였고, 우파에서는 <파이낸셜 타임스>의 수석 경제 평론가 마아틴 울프(Martin Woolf) 였다. 맑시스트 들이 그들의 목적을 위해 이 발제문을 번역해서 웹 사이트에 올려 놓았는데 좌파가 아니더라도 읽어 볼만한 논문이다.

 

먼저 좌판인 알렉스의 발표문을 읽어보았는데 맑시스트 들의 주장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느껴졌다. 그는 자본주의 본질을 착취와 경쟁으로 파악하고 착취는 빈익빈 부익부의 계급적 대립을 격화하고 경쟁은뿌리깊은 불안정성의 원천으로서 자본주의 역사를 통해 주기적으로 위기를 불러온 주범이라고 단정한다. 그리고 이번의 세계적 금융위기기는 주택 시장을 중심으로 형성된 투기 거품이 금융 시스템뿐만 아니라 세계경제 자체의 파탄을 가져 온 것인데 이러한 위기는 무정부적 경쟁 하에서 생산과 소비의 균형이 파괴 될 때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것이 맑시스트 들의 주장이다. 

 

그러면 자본주의의 대안이 있는가? 알렉스가 하나의 대안을 제시한 점이 다른 맑시스트와 다르다면 다른 점이다. 그는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지 않으면 인류의 장래에는 희망이 없다고 극언한다. 그러면 그의 대안은 무엇인가? 그는 구 소련(蘇聯)식 계획이 아니라  민주적 계획이라고 한다. , “직장과 지역 기반의 평의회로 조직된 소비자들과 생산자들이 지역 수준에서, 그리고 필요하다면 더 높은 수준에서 최대한 서로 협력하는 가운데 자원의 이용에 관한 사항을 결정해 자신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시스템이이라는 것이다.

 

알렉스는 그의 민주적 계획이 생산수단의 공유를 전제로 하는 것인지 아니면 어느 정도의 재산의 사유와 시장경제를 전제로 한 것인지는 말한 바 없다. 아마도 그는 생산수단의 공유를 전제로 했을 것이다. 그러나 생산 수단 공유 하에서는 제아무리 민주적 계획이라 할지라도 인간의 이기적 본성 때문에 생산을 위해 공동체 구성원의 최선의 노력과 창의를 이끌어 내기 어렵다는 것은 지난날 사회주의 국가의 집단 농장 (예 컨대 소련의 골호즈)의 경험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생산수단 사유하의 협동농장과 공유하의 집단농장 사이에는 생산성 면에서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우파가 강조하는 사유, 이윤, 효율에 대해 알렉스는 사욕(私慾)만이 모든 진보와 발명의 원동력이 된다는 생각에는 동의 할 수 없다고 반론한다. 사람을 움직이는 동기에는 호기심, 이타심, 창조 욕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시장경제의 채찍과 당근이 없으면 사람들이 아무 것도 안 할 것이라는 생각은 정말 어리석다고 극언한다. 그러나 이것은 엄청난 곡해(曲解)이다. 인간 생활에 여러 가지 측면이 있고 노력의 동기에도 여러 가지가 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물적 생산이 인간생활의 기초가 되고 자원은 유한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생산의 효율을 따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다. 그리고 계획적 통제경제가 아니라 자유경제체제 하에서 사람들이 보다 자유롭게 다양한 욕구와 동기를 추구하고 자유경쟁이 그 촉진제가 되어 진보와 발전의 원동력이 되어 왔다는 것은 역사적 진실이다. 이에 관련하여 맑스는 욕망과 동기 구현의 총체인 사회적, 문화적 상층구조 밑에 경제적 하부구조가 있다고 했고, 맹자(孟子)는 항산(恒産)이 있어야 함심(恒心)이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알렉스는 결론에 가서 우리가 직면한 선택은 시장이냐 계획이냐가 아니라어떤 종류의 계획이 필요하냐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을 보면 알레스는 시장의 기능을 전적으로 배제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그의 맹렬한 자본주의 비판에 불구하고 그의 대안은 시장경제 체제에 접근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다음에 우파의 마아틴의 주장 또한 새로운 것은 없다. 그는 자본주의의 대안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케인즈가 1930년대의 위기를발전기 고장으로 묘사한 것처럼 오늘의 세계적 금융위기도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엔진에 고장이 생긴 것이라고 보고 있다. 엔진의 일부를 고치면 되는 것이고 실제로 지금 국제사회는 대체로 알려진 방법으로 고장 난 곳을 고치고 있다.

 

그는 인간이 만들어 낸 제도치고 완전한 것은 하나도 없고, 자본주의도 그 예외가 될 수 는 없다.  만약 자본주의가 나쁘다고 비난한다면 역사상의 모든 다른 시스템에 비해  가장 덜 나쁜 시스템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에 따르면 자본주의가 망하지 않은 것은 자본주의는 역사상 적응력이 가장 뛰어난 체제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뛰어난 적응력을 발휘하는 것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결합되어 있는 경우라고 나는 본다. 국가독점자본주의와 같은 비 민주적 자본주의도 있으니까 말이다. 하기야 민주주의라 하더라도 잘못된 정치가 시장경제원리를 왜곡하고 경제를 망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이점에 관련하여 Winston Churchill의 말이 생각난다. 그는 1947 11월 영국 하원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누구도 민주주의가 완전하고 전적으로 현명하다고 말할 수 없다. 과거에 때때로 시험한 모든 다른 정부형태를 예외로 하면 민주주의는 최악의 정부형태다-라는 말이 있다.”[1]*  즉 민주주의 체제가 나쁘다면 과거에 있었던 모든 다른 정부형태 보다는 덜 나쁘다는 뜻이다.

 

덜 나쁜 민주주의덜 나쁜 자본주의가 결합해서 자유경제체제를 구성하고 있는데 그러나 이 체제는 그런대로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뛰어난 적응력을 발휘하여 경제의 지속적 성장 발전을 가능케 했고, 경제 문제가 발생할 때 마다 제도적 해결책을 강구해 온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경험 때문에 마틴이 말한 대로 이번의 위기는 1930년대의 위기에 비하면 비교적 가볍게 끝나 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마아틴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우리가 직면한 선택은 자본주의를 폐기 할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자본주의가 필요하냐 하는 것이다. 앞으로는 오직 하나의 단순한 자본주의 모델이 이 아니라 다양한 모델들이 공존하게 될 것 이다.”

 

나 자신도 지난 번 연설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정치-경제체제 중에서 문제가 없는 체제는 없고 시장경제체제도 그 예외가 될 수 없으나 자본주의의 대안은 없다고 말한바 있다. 그 근원적 이유는 인간에게는 기본적으로 빵과 자유가 필수 불가결인데 자유경제체제 만이 양자를 양립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양자를 양립시키기 위해서는 과도한 계획과 통제는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반면에 지나친 자유 방임은 법과 질서를 파괴하여 빵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역사적 경험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달리 말하면 자본주의 하에서 정부의 규제는 불가피하나 그 범위와 방법에 있어서 경제활동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지금 세계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빈곤의 퇴치, 고용창출, 자연 환경 보호 등) 도 이러한 관점에서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다고 나는 본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 이외에는 대안이 없고 결코 망하지 않는다는 마아틴의 말에 동의한다. 마아틴이 말한 대로 자본주의는 부단히 개선을 추구하고,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에너지를 발현시키며, 그러면서도 사람들의 독자적 활동을 시장 기능을 통해 상호 조율하는 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나의 결론에 대해 맑시스트 들은 물론 반대할 것이다. 바라건대 맑시스트 들의 주장을 초극(超克)하여 자유 경제체제의 본질을 널리 알리고 자본주의의 한국적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 한국선진화포럼의 사명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램이다. Winston Churchill의 말을 다시 한번 인용하고 나의 이야기를 마감하고자 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자본주의의 내재적 악()은 유복(裕福)의 불공평 분배이고 사회주의의 내재적 선()은 궁핍(窮乏)의 공평 분배이다.”.


* 원문은 다음과 같다. “Nobody pretends that democracy is perfect or all-wise. Indeed, it has been said that democracy is the worst form of government except for all other forms that have been tried from time to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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