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창간18주년 기념 인터뷰

 

 

  기사 게재 일자 : 2009년 11월 02일  (44면)

 

 

 

<국가 원로에게 듣는다>
“젊은이들이여, 월급쟁이보다 혁신적 기업가가 돼라”

 

남덕우 前 총리-‘글로벌 리더’로 가는 길

 

최영범기자 youngbchoi@munhwa.com

 

[인터뷰=최영범 정치부장]

앞으로 1년 뒤인 2010년 11월. 한국에서 세계적인 행사가 열린다. 세계 주요20개국(G20) 정상들이 모여 세계 질서의 틀을 협의하고 만드는 회의. 우리나라는 의장국으로 회의를 주최한다. 1945년 8·15 광복 직후 세계 최빈국중 하나였던 대한민국이 광복 65년인 내년, 선진 열강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글로벌 코리아’ ‘글로벌 리더’로서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글로벌 리더는 단순히 G20정상회의를 주최하는 것만으로, 또는 열 손가락에 드는 무역대국이라는 경제력만으로 자리매김되는 것은 아니다. 국제사회에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국내적으로도 법적·제도적 개선, 의식 및 환경의 변화를 통해 글로벌 스탠더드를 갖춰야 한다. 진정한 글로벌 리더가 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재무부장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 대통령 경제담당 특별보좌관 등을 지내 한국 경제의 산파 역할을 했으며 제14대 국무총리를 역임한 국가원로 남덕우(85·사진) 한국선진화포럼 이사장을 만나 글로벌 리더에 대한 그의 견해를 들어봤다. 10월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산학협동재단 빌딩 자신의 사무실에서 기자를 반갑게 맞은 남 이사장은 건강해 보였다. 그는 창간 18주년을 맞는 문화일보에 대한 축하인사부터 건넸다.

“문화일보는 석간신문으로 창간후 18년 동안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해 왔습니다. 자유민주와 시장경제의 이념을 받드는 신문이죠. 무궁한 발전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요즘 건강은 어떠신가요.

“한동안 허리가 안 좋아 운동을 못했는데 요즘은 나아서 헬스장에 가서 주로 걷는 운동을 합니다. 골프도 한동안 못쳤는데 쳐 볼까 합니다.”

―먼저 G20 얘기부터 하겠습니다. 한국이 내년 G20 의장국으로 정상회의를 주최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지금까지는 G7 선진국끼리 세계문제를 논의해 왔는데 한국을 비롯한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의 경제성장이 빠르고 경제 규모 면에서 선진국을 압도하면서 세계 문제와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 등 국제기관에 대한 후진국의 발언권을 높여야 한다는 여론을 배경으로 G20이 결성됐는데, 한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 만큼 회원국들이 내년 11월 서울에서 회의를 개최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한국이 국제문제에 적극적으로 기여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과거에도 IMF, 아시아개발은행(ADB) 등의 국제회의를 서울에서 개최한 일이 있으니 회의 개최 자체에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고, G20이 무엇을 해낼 것이냐에 관심을 집중해야 합니다. 세계의 환경문제, 에너지 자원문제, 테러리즘, 국제금융기관의 개편문제 등에 관하여 실행이 보장되는 해결책을 내놓아야 G20은 의미가 있습니다.”

―G20 정상회의를 주최했다고 단번에 글로벌 리더 반열에 오른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어떤 단계라고 보십니까. 선진국입니까, 개도국입니까.

“선진국의 문턱에 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브릭스보다 빨리 산업화와 민주화를 달성한 나라이므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도 선진화를 위해 풀어야 할 과제가 많으므로 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한국이 진정한 글로벌 리더가 되기 위해서 시급히 개선해야 할 분야와 문제점은 무엇이며,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첫째로 대의정치의 생산성을 높이도록 선진화해야 합니다. 국회의 개회여부를 놓고 당쟁을 일삼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습니다. 둘째로 과학기술 개발에 경제의 운명을 걸어야 하고, 셋째로 중소기업이 질적으로 최고 수준의 부품과 소재를 만들어 내고 각종 서비스업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격상시키는 일을 해내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합니다. 넷째로 한국을 동북아 물류와 인류의 중심으로 발전시키고, 다섯째로 소득분배 상태를 개선하며, 여섯째로 윤리·도덕·청결을 중시하는 문화적 풍토를 배양하고 끝으로, 노사 양측이 적대적 투쟁은 공멸의 길이고 화합과 협력은 상생의 길임을 확실히 인식하도록 해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각종 국가적 현안을 놓고 벌어지는 이념적 갈등 또한 글로벌 리더로 가는 길에 걸림돌이 아닌가 합니다. 갈등현상을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진보와 보수의 개념부터 재정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 체제에 동조하는 것은 좌파적 보수이지 진보는 아닙니다. 중국의 경우는 좌파적 진보라 할 수 있습니다. 한편 보수라 하면 무조건 기득권을 수호하는 수구(守舊)고 서민층의 편이 아닌 것처럼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선진국의 어떤 보수정치도 서민층의 권익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서민을 위한 사회복지정책을 도입한 것은 좌파가 아니라 우익의 정치지도자였습니다. 예컨대 1880년대에 공적 연금과 건강보험제도를 확립한 것은 독일의 재상 비스마르크였고 1912년에 세계 최초로 본격적인 실업보험제도를 정비한 것은 영국의 윈스턴 처칠이었으며, 1930년대에 사회복지제도를 강화하여 미국을 대공황에서 구출한 것은 프랭클린 루스벨트였습니다. 진보는 전통과 현실을 뛰어넘어 빠른 변화를 실현하자는 주장이고, 보수는 전통과 현실에 발을 딛고 차질 없는 변화를 이룩하자는 주장입니다. 양측이 토론과 협상을 통해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는 것이 민주적 대의정치의 모델입니다.”

―가장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는 세종시 문제도 같은 범주가 아닐까요.

“10월22일에 한국선진화포럼에서 이 문제를 심층적으로 담론한 일이 있습니다. 그를 경청한 본인의 소감을 말씀드린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세종시는 균형발전, 서울의 인구 소산, 서울의 도시생산성 향상 등의 관점에서 구상되었는데 이 세 가지 목적 달성에는 행정기관 이전보다 산업의 지역적 확산이 보다 유력한 수단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까닭은 산업도시는 국내와 해외의 경제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생산, 소득, 고용을 창출하고 유발하는 효과가 크고 다른 지역으로부터 인구를 흡수하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행정도시는 그러한 효과가 미약합니다. 하기야 행정 문화, 교육과 같은 비산업적 특성 도시를 만드는 것은 그런대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의 중추기능을 수도와 지방에 양분하는 것은 문제가 있고 장차 통일후의 수도도 생각해 두어야 합니다. 오랜 논란 끝에 국회와 행정부가 결정한 문제를 뒤집으면 정부의 공신력이 문제가 된다는 주장이 있으나 원안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수정을 가하는 일은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지난 대통령선거전 열풍의 영향이 컸고, 당초 입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이 있었으며, 신임 국무총리가 문제를 제기한 만큼, 국가백년대계의 견지에서 정치권이 보다 나은 방법을 찾기 위해 고민해 주었으면 합니다. 참고로 필자가 중국 쑤저우(蘇州)에 가 본 일이 생각납니다. 저는 쑤저우를 역사적 유적도시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 도시가 첨단산업 도시와 대학원 도시로 변모한 것을 보고 크게 놀랐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일자리가 없어 많이 상심하고 있고 청년실업이 심각한 상황입니다. 대한민국이 글로벌 리더로 계속 성장하는지 여부는 청소년 세대에게 달려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좋지 않은 상황에서 고민하는 젊은이들에게 어떤 점을 충고하고 싶으십니까.

“청년실업자는 많아도 쓸 만한 인재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 재계의 고충입니다. 그리고 젊은이들이 대기업을 선호하고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는데 오히려 중소기업에 취직해서 자기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고 중소기업을 알찬 기업으로 만드는 데에 정열을 쏟는다면 그것이 보다 값진 경험이 될 것입니다. 월급쟁이보다 혁신적 기업가가 되어 보라는 것입니다.”

―한국 경제가 글로벌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속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중 가장 빠르다는 외국 기관의 평가가 있었습니다. 글로벌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지난 1년간의 노력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한국은 외환위기 때 홍역을 치른 경험이 있어 대응이 비교적 쉽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러나 구조조정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항시적인 것이 되어야 하고 주변 정세 변화에 재빨리 적응해야 합니다. 중국이 경제적 공룡이 되어 가고 있는데 이는 도전인 동시에 기회이기도 합니다.”

―도전의 측면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중국 자신과의 경쟁입니다. 중국은 ‘세계의 제조창’이 되어 가고 있고 수입대체는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전통적 공산품은 이미 중국 시장에서 밀려났고 지금 우리가 수출하고 있는 상품들 중에서도 경쟁력을 잃게 되는 것이 많을 것입니다. 둘째는 중국이 아닌 외국과의 경쟁입니다. 상품의 품질, 가격, 기술 면에서 우리가 낙후되어 있으면 중국은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 상품과 서비스를 택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기회란 측면은 무엇입니까.

“경제대국 중국이 근접한 우리에게 미치는 파급효과는 엄청나게 클 수밖에 없습니다. 예컨대 세계관광협회(WTO·World Tourism Organization)에 따르면 2020년에는 중국에서 관광 목적으로 출국하는 사람이 매년 1억명 이상이 될 것이라 하는데 그 중 일부는 한국을 방문하거나 경유할 것입니다. 중국 경제가 커짐에 따라 막대한 물량이 수출되고 수입될 것입니다. 무역액이 지금(2008년)의 2조6000억달러에서 2050년에는 45조달러 이상으로 증가할 텐데 이 과정에서 엄청난 물량이 한국의 손을 거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정학적 이점을 활용하여 한국을 동북아 물류(物流)와 인류(人流)의 중심지로 만들자고 하는 것입니다.”

―이 기회를 살리는 것이 우리의 과제인데 그 방법은 무엇일까요.

“모든 재화와 서비스를 자급자족할 수 있는 나라는 없습니다. 중국에도 비교우위가 없는 생산이 있고, 생산자와 소비자의 욕구를 채워 주지 못하는 ‘틈새’가 반드시 있게 마련입니다. 그것만 하더라도 엄청난 수요가 있을 것이니 우리는 중국이 할 수 없는 것과 틈새를 발견하여 우리의 장기 수출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이미 중국은 최대의 수출시장이 되어 있고 수출의 대종은 부품 혹은 반제품인데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리고 과학기술 면에서 우리는 항상 중국을 앞서가야 합니다. 한편 중국과의 지리적·문화적 근접성을 활용하여 중국과 동아시아 시장을 노리는 선진국 기업들을 적극적으로 경제자유구역에 유치, 합작하고 제휴해야 합니다.”

―끝으로 정부와 기업에 부탁하고 싶은 말은.

“정부가 알려진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계획을 수립하며, 계획 실현에 적합한 제도를 창출하고, 집행 결과를 평가하여 결함과 미비점을 시정하는 시스템을 확립해야 합니다. 원론적인 이야기 같지만 이러한 시스템이 확실하게 작동하고 있느냐가 근본 문제입니다. 경제부총리제를 부활했으면 합니다. 민간은 과거에 창업세대가 발휘했던 기업가정신을 되살려야 합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에 생애와 자본과 시간을 거는 것이 기업가정신입니다.”

 

 

 

  기사 게재 일자 : 2009년 11월 02일

(44면)

 

 

<국가 원로에게 듣는다>
“세종시 원안 수정” 거듭 강조

 

국정현안에 대하여…

 

최영범기자 youngbchoi@munhwa.com

 

남덕우 한국선진화포럼 이사장의 세종시 논란에 대한 생각은 확고했다. 정부 기능이 수도와 지방에 양분되면 문제가 있을 수 있고, 통일후의 수도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9부2처2청의 이전보다는 산업의 지역적 확산을 주장하는 백지화에 가까운 ‘원안 수정론’이었다.

특히 남 이사장은 정치권 일각에서 거론하는 정부의 공신력 문제도 원안 자체를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들어 “수정은 있을 수 있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특히 세종시의 탄생 배경이 대통령선거를 겨냥한 정치적인 측면이 있었고, 수도를 옮기는 입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이 있은 후 정치적으로 나온 행정중심복합도시법이란 점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남 이사장은 이같은 결론이 한국선진화포럼 주최의 세미나에서 4시간 이상 치열한 토론을 거쳐 내린 결론이란 점도 강조했다.

진보와 보수간의 이념갈등에 대해서도 남 이사장은 명쾌했다. 그는 우선 혼동되고 있는 진보와 보수의 개념부터 선을 그었다. 북한 체제에 동조하는 것은 좌파적 보수이지 진보는 아니라는 것이다.

진보와 좌파를 동일시하고 혼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았다. 더구나 그는 보수의 개념과 관련, 서민을 위한 사회복지정책을 도입한 것은 좌파가 아니라 우익의 정치지도자였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의 진보와 보수 개념을 가르는 기준은 한마디로 변화에 대한 ‘속도’였다.

남 이사장과의 인터뷰 내용중 눈에 띄는 또 다른 점은 이른바 청년실업에 대한 그의 시각이었다. 그의 생각은 “실업자는 많아도 쓸 만한 인재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 재계의 고충”이라는 것이다. 모두가 구직난을 얘기하지만 그는 오히려 구인난을 지적하고 있었다. 특히 그는 젊은이들이 대기업을 선호하고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경향을 지적하며 월급쟁이보다 혁신적 기업가가 돼 보라고 충고했다.(끝)


youngb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