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게재 일자 : 2009년 04월 22일

 

<사랑 그리고 희망 - 2009 대한민국 리포트>
“한국경제 회복 이끄는 일등공신은 기업”

 

남덕우 前총리 ‘경제 희망진단’

 

김병직기자 bjkim@munhwa.com

 

사진=정하종기자

 

“한국경제가 본격적인 회복세로 돌아서려면 조금 더 긴 호흡으로 내년까지는 기다려야 할 겁니다. 분명한 건 이 과정에서 경제회복을 이끄는 1등공신은 ‘수출’과 ‘한국기업’이 될 것이란 점입니다. 한국경제는 그동안 위기가 닥칠 때마다 수출로 이를 극복해왔잖아요.”

한국경제 현대사의 산 증인으로 불리는 남덕우(85) 전 국무총리가 바라보는 현 경제위기에 대한 진단이다.

196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까지 재무부장관과 경제부총리, 국무총리 등을 맡아 경제개발계획을 진두지휘했던 그는 “이번 글로벌 경제위기의 해법도 결국 한국 기업들의 저력에서 찾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 전 국무총리는 지난 16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세계경제가 극심한 침체국면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한국경제가 금방 상승국면으로 가기는 힘들 것”이라며 최근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낙관론을 경계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내년쯤 한국경제가 회복세에 접어들면 그 속도는 경쟁국을 훨씬 앞서며 가장 빨리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남 전 국무총리는 경제위기 조기극복을 위해 특히 기업들의 의지와 기업가 정신을 위축시키는 각종 규제와 우리사회의 반(反)기업정서를 해소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정부가 나서서 기업들의 투자를 채근하는 것과 관련해 “기업들이 투자를 주저하는 것은 세계적 경제위기 속에 심화된 불확실성이 큰 이유지만 아직도 곳곳에 남아있는 뿌리깊은 규제도 한 원인이 된다”고 말했다.

한국사회에 여전히 남아있는 반기업정서에 대해서도 그는 안타까워했다. 남 전 국무총리는 “한국경제가 불과 30~40년 만에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올라선 건 한국기업과 근로자들의 의욕과 창발력 때문”이라며 “한국경제가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기업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반기업정서부터 빨리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경제위기는 우리만 겪는 게 아니고 선진외국은 우리보다 더 큰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고 상기시키면서 “그동안 숱한 위기를 극복해온 한국경제의 저력을 바탕으로 이번 경제위기 역시 그 누구보다 빨리 회복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김병직 경제산업부장 bjkim@munhwa.com

 

 

<사랑 그리고 희망 - 2009 대한민국 리포트>
1960년대 성장이론 제공한 서강학파의 좌장

 

남덕우 前 국무총리는

 

김병직기자 bjkim@munhwa.com

 

남덕우 전 국무총리에 대한 인터뷰가 진행된 지난 16일은 때마침 서강대 시장경제연구소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서강의 제안’이란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던 날이다.

지난 1960년대 서강대 교수 시절 성장이론을 제공한 서강학파의 좌장으로서 그는 이날 토론회에서 기조연설을 했다. 그와의 인터뷰를 위해 토론회가 진행된 서강대 교우회관에서 꼬박 몇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후배 교수들의 발제와 토론내용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집중해 있는 그에게 선뜻 인터뷰를 위한 자리이동을 권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85세의 고령에도 그는 세상 흐름에 대한 이해가 젊은 학자들 뺨칠 정도다. 여기에는 컴퓨터를 통한 세상과의 교류가 있다. ‘컴퓨터 1세대’로 통하는 그는 요즘도 사무실로 출근해 첫 일과를 e메일 확인과 경제문제, 세계정세 등에 대한 인터넷 서핑으로 시작한다. 외부원고나 강연원고 등도 모두 컴퓨터로 처리한다.

 

 

<사랑 그리고 희망 - 2009 대한민국 리포트>
“與野도 勞使도 和而不同으로 무한한 자생력 키워야”

 

‘사랑·희망 전령사’ 릴레이 인터뷰 - 남덕우 前 국무총리

 

김병직기자 bjkim@munhwa.com

 

글로벌 경제위기의 끝은 어디인가. 최근 엿보이는 희미한 희망의 빛은 믿어도 되는 것인가. 이 과정에서 한국경제는 ‘최후의 승자’그룹에 낄 수 있을 것인가. 한국경제를 둘러싼 대내외 불확실성이 가중되고 있다. 현 경제상황과 앞으로의 한국경제를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제각각이다.

현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한국경제의 좌표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지난 16일 한국 경제사의 산 증인으로 불리는 남덕우(85·사진) 전 국무총리를 서강대 교우회관에서 만났다. 1960년대 중반 체계적인 성장이론을 제공한 ‘서강학파’의 좌장이자, 고도성장기 한국 경제개발계획을 진두지휘해온 그로부터 이같은 의문에 대한 답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현 경제상황에 대한 막연한 낙관론을 경계했다. 그러면서도 한국경제의 미래에 대해선 확신과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 호흡을 길게 갖자

경제계 일각에서 경기 조기회복론이 나오는 상황에서 남 전 국무총리는 현재의 한국경제를 어떻게 진단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경기 회복을 논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로 봐요. 과거 경험 등을 종합해보면 내년쯤부터 차차 나아질 것 같습니다. 한국경제를 둘러싼 제반 여건이 경기가 금방 상승국면으로 갈 수 없게 합니다. 조금 더 호흡을 길게 가져가야 할 것 같아요.

그는 특히 경기회복 과정에서 가계부채 문제를 걱정했다. 그는 “우리 가계부채가 국내총생산(GDP) 76%나 된다”며 “가계가 빛에 쪼들리니까 소비할 여력이 없고, 이에 따른 소비위축이 경기회복을 더디게 한다”고 말했다. 남 전 국무총리는 “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도 마찬가지이며, 가계부채를 떠안고 있는 금융기관이 이것을 어떻게 처리하고 정리하느냐 하는 게 경기회복에 중요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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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역할 중요… 경제부총리제 필요

남 전 국무총리는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세계적으로 신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과 함께 시장이냐 정부냐, 민영이냐 공영이냐 등의 문제를 놓고 논쟁이 뜨겁다”며 “내가 보기에는 여기에도 공자의 중용과 같은 균형감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현재의 국내 경제상황에선 특히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세계적 불황으로 수출부진은 당분간 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내수진작에 주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가계부채 문제로 민간소비 확대는 기대하기 어렵고, 기업 투자 역시 현 상황에선 기대할 수 없어요.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정부지출 밖에 없는 셈이고 정부지출이 견인차 역할을 해줄 수밖에 없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평균 국가채무(IMF기준) GDP 77%이지만 우리나라의 채무비율은 약 34%에 불과한 만큼 재정적자를 감수하더라도 정부지출을 더욱 확대하는 재정금융면의 비상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재정지출과 관련해 그는 ‘어떤 곳에 어떻게 쓰느냐’가 무척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공시설 투자와 고용효과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정부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가 정부부처간 정책조율 문제에 이르자 남 전 국무총리는 적지 않은 우려를 내보였다.

“경제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는 특히 정부 부처간 정책조율이 중요한데 지금은 조정이 잘 안되는 것 같아요. 나도 경제부총리를 해봤지만 각 부처에 의견이 안맞으면 부총리가 불러서 ‘서로 이렇게 합시다’라고 하면 대개 조정이 돼요. 그래도 정 안되면 대통령이 나서서 의견을 들어보고 부총리에게 힘을 확 실어서 교통정리를 해줬어요. 그런데 지금은 영….

그는 “같은 장관들끼리인데다, 대통령이 ‘이 장관 말을 들어라’ 이런 것도 아닌데 정책조정이 제대로 되겠느냐”며 “지금과 같은 시스템에선 누가 기획재정부 장관이 되더라도 정책조정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왜 경제부총리제를 없앴는지 정말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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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극복의 원천은 한국기업의 저력

이야기의 화두가 기업투자 위축에 이르자, 남 전 국무총리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듯 긴 말을 이어갔다.

“기업들이 투자하지 않는 이유는 뻔합니다. 앞으로 세계경제가 어떻게 될지, 어떤 산업 어떤 업종에 집중해야 할지 가늠이 안되는 불확실성이 우선 투자를 주저하게 만들고 있어요. 정부에선 규제를 많이 풀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막연하게 기업에게 ‘투자하라’고 하는 것보다 직접 경제인들과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해보고, 그들의 투자애로를 듣다보면 해결방안이 반드시 나올 겁니다.

지난 196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까지 재무부장관과 경제부총리, 국무총리 등을 맡아 경제개발계획을 진두지휘하면서 기업들과 더불어 ‘수출한국의 신화’를 써온 경험 때문인지, 그는 한국기업의 저력에 무한한 신뢰를 보였다.

“한국기업은 무한한 자생력이 있습니다. 지난 1970년대 오일쇼크도 겪었고 지난 1997년 외환위기도 겪었지만 모두 이겨냈잖아요. 과거 외국신문들이 ‘한국경제는 중화학 과잉투자 때문에 망할 것’이라고 떠들어댔지만 지금 한국 조선업이 세계 1위 아닙니까. 과거 수주현장을 누비던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 등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눠봤지만 한국 기업인들의 의욕과 창발력은 대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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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부동의 교훈 되새겨야

그는 그러면서도 한국사회의 치명적인 ‘약점’을 하나 지적했다. “손 잡을줄 모른다”는 게 그것이다. “그래서 정치권이 저 모양이다”고 쏘아붙이는 걸 보니 한국정치에 대한 불만이 무척 커보였다.

‘한국정치에는 희망이 없는 것이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서로 입장이 다르더라도 대의를 위해서는 화해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화이부동(和而不同)’의 교훈을 되새겨보길 권하고 싶습니다. 물론 야당의 입장과 여당의 입장이 다릅니다. 보수와 진보의 입장도 다르고요. 그러나 인간적으로 손잡고, 대화하고 타협점을 찾아야 합니다. 이는 노사문제도 마찬가지로 근로자와 기업이 손잡고 공생의 길을 찾아야 합니다. 제발 정치권이나 노사나 죽기 살기식으로 싸움만 하지 말고 화이부동의 가르침을 실천해주길 바랍니다.

그는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 선수 예를 들면서 “한국인들은 개인적으로도 상당히 우수하고 창발력도 뛰어나다”며 “서로 손을 잡을 줄 모른다는 약점만 극복하고 공생의 길을 찾는다면 어떤 위기도 문제없다”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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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는 기회... 한국경제를 믿는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에게 극심한 경기침체 속에서 경제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국민들에게 한마디를 해 줄 것을 권했다.

“경제가 무척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이는 세계가 다 같이 겪고 있는 일이에요. 그러나 우리 국민과 기업, 근로자는 저력이 있으니까 반드시 남보다 빨리 회복할 겁니다. 위기를 재도약의 기회로 삼아 극복해온 한국경제와 한국민의 저력은 이번에도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절대로 비관하거나 좌절하지 마십시오.

남 전 국무총리는 “특히 위기상황에선 서로 손잡고 위하고 협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위기 속에서 하나가 되는 한국민의 저력을 보여주자”고 당부했다.

인터뷰=김병직 경제산업부장 bj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