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로 눈을 돌리자

 

남덕우 지음

 

2002년 10월 31일

삼성경제연구소

 


   

차 례

 

  서 문

   1 변화하는 세계 속의 우리의 환경

  삼중의 변화/   우리의 기업환경

 

  2 중국의 약진

   성장의 열기 /    중국 경제의 난제 /    중국의 강점 /    우리의 대응

 

  3 한국을 물류 중심지로

   물류 중심지 구상 /    물류 중심지의 개념 /    한국의 지리적 조건

   물류 산업의 경제적 효과

 

  4 주변 정세

   물류 시설의 대대적 확충 /    다국적 기업의 유치 /    개발 계획

 

  5 외국의 성공 사례와 우리의 현실

   네덜란드 /    아일랜드 /    싱가포르 /    홍콩 /    대만

   중국 푸동신구 /    외국의 성공 요인 /    우리의 강점과 약점

 

  6 정부 시안 개요

   기본 구상 /     교통 인프라의 구축 /    통신-정보 인프라의 구축

   비즈니스 중심지 개발 /    산업의 지역적 특화

   제도적 개혁 /    국제 협력

 

  7 정부 시안의 검토

   전략개념의 정리/    투자 계획과 자원 조달 /    서비스 체제의 개선

   근본적인 제도 개혁 /    추진 기구의 강화 /    우리의 제언

 

  8 동북아개발은행을 설립하자

   동북아의 어제와 오늘 /    동북아개발은행의 구상 /    제안의 개요

   왜 동북아개발은행이 필요한가 /    제기된 문제

 

  9 우리는 변해야 산다

   세계화는 잘못된 선택인가? /    세계화는 민족적 정체성을 파괴하는가?

   리더십이란 어떤 것인가? /    우리는 변해야 산다

 

  에필로그-월드컵이 보여준 것

 

  참고 문헌

 

 


 

 서 문

 

  지금까지 필자는 21세기 세계의 변화 방향을 세 가지로 요약해 왔다. 세계화, 정보화, 민주화가 그것이다. 여기에 또 한 가지 중요한 변화가 있는데, 바로 '아시아 시대'의 도래이다. 특히 중국의 경제 발전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파장은 가히 충격이다. 13억 인구의 거대한 중국이 지금과 같은 빠른 속도로 경제 발전을 계속할 때 장차 세계 경제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 가늠하기란 쉽지 않다. 더욱이 중국 대륙 한 귀퉁이에 혹처럼 붙어 있는 한반도는 중국 경제가 기침을 하면 고뿔에 걸릴 위치에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동해 건너 일본과 태평양 건너 미국을 바라보며 살아왔지만 이제 황해 건너 중국을 위시하여 동북아로 눈을 돌릴 때가 온 것이다.

  필자는 일찍부터 동북아 지역의 경제 발전과 지역 내 국제적 경제 협력 방안에 대해 관심을 갖고 '동북아 경제포럼'이라는 국제 논단에 몸담아 왔다. 그리고 그를 통하여 '동북아개발은행'의 설립을 제안하였으며 최근에는 한국이 동북아 물류 중심지가 될 수 있고 또 되어야 함을 주장해 왔다.

  다행히 2001년 뜻을 같이하는 동료들과 함께 이 제안을 추진하기로 하고 이를 위해 '동북아 경제포럼 한국위원회'를 결성하여 다각적인 활동을 전개해 오고 있다. 청와대의 요청으로, 김대중 대통령에게 우리의 견해를 보고하고 정책적 건의도 하게 되었다. 그 후 2002년 4월에 재경부는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 실현 방안'을 발표하였고 7월 29일에는 제2차 시안을 발표하였다. 그로써 이 제안이 공론화된 것은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때마침 삼성경제연구소의 최우석 소장이 일반 독자들에게 동북아 물류 중심지의 개념과 내용을 알리기 위한 책을 써 보길 권유하였다. 국민들의 이해 없이는 우리의 제안이 도저히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터라 최우석 소장의 권유를 감사히 받아들였다. 필자는 그러한 취지를 살리고자 노력하였고 이 책은 전문가를 상대로 한 학술서가 아니라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평이하게 쓴 해설서라 할 수 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 책에 포함된 정보와 지식과 생각은 필자만의 것이 아니다. 한국위원회 위원들의 조사 보고서, 내외 연구기관과 학자들의 논문이 주요 정보와 지식의 원천이다. 아울러 일반 독자를 위한 해설서를 자청하였기에 모든 통계 숫자와 자료의 출처를 일일이 밝히지는 않았으나 모두가 이 책 말미의 참고 문헌에서 인용한 것임을 일러 둔다.

  끝으로 이 책과 인연이 깊은 여러분께 감사를 드리고 싶다. 특히 '동북아 경제포럼'의 조이제 의장을 비롯하여 현지 조사를 담당한 '동북아 경제포럼 한국위원회'의 이승윤, 이종찬, 박병윤, 홍재형, 고병우, 김윤형, 김범헌 등 여러분의 노고가 컸다. 그리고 많은 도움을 주신 교통개발원 이부식 원장과 연구위원들, 인천광역시 물류 단지 개발 현황을 시찰할 수 있도록 안내해 준 최기선 전 시장과 박연수 기획관리실장에게도 이 기회에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이 책을 발간할 수 있게 해 준 삼성경제연구소 최우석 소장과 편집을 맡아 주신 직원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2002년 10월 남덕우


  1. 변화하는 세계 속의 우리의 환경

 


 01 삼중의 변화

 

  21세기 세계의 변화 방향은 세계화, 정보화, 민주화(3化라 하자)로 요약할 수 있다. 물론 그 밖에 다른 변화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이 세 가지 주된 변화에 시선을 집중하기로 하자.

  우리 나라는 1997년 말 외환위기에 직면하였고 그로 인해 IMF(국제통화기금)가 주도하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경험했다. 그것은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처방이었을 뿐만 아니라 한편으로는 21세기의 이러한 삼중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시도된 전반적 경제 개혁이라 할 수 있다. 돌이켜 보면 우리 나라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을 미처 하지 못하고 외압에 의해 하게 된 약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에서 외환위기와 IMF 체제는 우리에게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동안의 구조조정 성과는 무엇인가? 세 가지 변화 방향에서 그것을 간략히 요약할 수 있다.

 

  | 세계화

  먼저 상품과 용역 및 자본 시장은 대부분 개방된 상태에 있다. 수입 개방에 따른 무역수지 적자를 우려했지만, IMF 사태 이후 1998년부터 2001년 말까지 무려 942억 달러 이상의 무역(상품 및 서비스)수지 흑자를 축적하였다. 이것이 우리 나라가 2001년 말 현재 1,028억 달러의 외환보유고를 가지게 된 주인(主因)이다.

  금융 부문에서의 변화는 특히 두드러진다. 2000년 8월 말 현재, 외국인이 보유한 국내 주식의 시가 총액은 전체의 30%(75조원)를 차지하였다. 또한 주요 은행의 외국인 지분율이 23% 내지 63%에 이르렀고 외국인 한 사람이 최대 주주인 은행들이 국내 예금과 대출의 40% 이상을 차지하였다. 제2금융권의 사정도 비슷하다. 비금융업 분야에서도 외국인 직접 투자가 1998년부터 2000년 8월까지 260억 달러에 달하였고(도착 기준) 그를 통하여 외국인이 국내 기업을 매수하거나 직접 경영에 참가하는 사례도 더욱 늘어났다.

  이제 외자계가 국내 금융 시장과 경제의 향방을 결정하는 주도 세력으로 부상하였고 외국인이 자금을 회수할 경우 국내 시장은 빠르게 위기를 맞게 될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때문에 이러한 국제화에 대하여 반론도 있고 불안도 있다. 그러나 국제화 없이 우리 금융과 기업 경영이 구습에서 탈피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나가 생각한다면 앞으로 우리 기업들이 다시 태어나 역으로 외국계 기업이나 은행을 인수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예상했던 대로 기업 경영에서도 적지 않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외국 자본의 진출과 함께 정부, 금융기관, 기업, 사회단체들이 제도와 관행면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를 수용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예를 들면, 부실 금융기관과 기업의 퇴출과 구조조정이 진행되었고 이사회가 주요 경영 전략을 결정하고 기관장의 경영 행위를 통제하는 관행이 나타나고 있다. 외형 위주의 조직에서 성과 중심의 조직으로 변화하고 있고, 이윤을 무시한 다각 경영을 지양하고 경쟁력 있는 부문을 특화하는 방향으로 돌아서고 있는가 하면, 기존의 회계 기준과 감사 관행이 국제 기준으로 바뀌고 있다. 경영 정보를 공개하고,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려는 노력도 보인다. 개인의 성과에 따라 인사 및 보수 체계를 정하는 기업들도 눈에 띈다. 금융기관의 리스크 관리, 신용평가, 여신관리 기법이 개선되고 상호지급보증, 상호출자, 내부거래의 금지와 사외이사제 도입 등으로 재벌이 현대적 기업 집단으로 변모하고 있다. 경쟁이 상품과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고 있고 그것이 대학에까지 파급되어 고등 교육의 질을 높이고 있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보편화되었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변화가 파급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 정보화

  현재 수출과 경제 성장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정보 산업이다. 반도체 생산은 세계 제1위, 통신기기와 컴퓨터 생산은 각각 세계 제7위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Time)』(2000. 12. 11)은 우리 나라의 정보화에 관해 특집 보도를 한 일이 있다. 그에 따르면 인터넷을 사용하는 인구 비율은 대만의 18%, 홍콩의 17%, 일본의 14%, 중국의 0.7%에 비하여 한국은 34%에 이르며, 초고속 인터넷을 사용하는 인구수도 일본의 45만, 미국의 600만에 비하여 한국은 300만 명으로, 놀랍게도 우리 나라가 세계 제1위의 정보화율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또 국제전기통신연합(ITU)에 따르면 2001년 2월 현재 초고속 인터넷의 보급률이 세계 제1위(4가구당 1가구, 460만 명)이다. 이러한 정보화가 우리의 생활양식과 생산 방식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더불어 여러 가지 역작용을 일으키고 있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과학ㆍ기술 발달의 산물이니 역작용을 제거하면서 정보화를 보다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에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몇몇 벤처 기업의 금융 비리가 우리에게 충격을 주고 있지만 그래도 벤처 기업들이 IT 산업을 일으켜 온 것 역시 자명한 사실이다.

 

  | 민주화

  끝으로 민주화에도 진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정치는 가장 뒤떨어진 부문이다. 지금도 극심한 과도기적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지방 자치 제도의 실시는 획기적 변화였으나 경험 부족과 정치 문화의 구습으로 말미암아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집단 이기주의가 기승을 부리는가 하면 지방 재정의 문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중앙의 정당 정치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정당법, 정치자금법 등이 개정되었다고는 하지만 권력형 부정부패는 여전히 끊이질 않는다. 지난날 대통령의 아들이 부정부패 때문에 형무소로 가게 되더니, 현직 대통령의 두 아들이 같은 신세가 되고 만 사실이 이를 잘 말해 주고 있다.

  정당은 정책 개발과 입법 활동을 제쳐두고 당리당략에 몰두하고 있고, 끝없는 중상모략이 정치의 기능처럼 되어 버렸다. 범죄의 혐의가 있으면 대통령의 아들까지도 구속하여 조사하는 사실 자체에서 일면 민주주의의 발전을 엿볼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구태의연한 정치 상황이 경제 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음은 틀림이 없다 .

  물론 건실한 대의정치가 몇몇 정치인들의 힘만으로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국민들은 그에 값하는 정부를 가지게 된다."라는 말도 있다. 민주의 이름으로 조리를 무시한 채 집단적으로 떼를 쓰고, 법을 지키지 않고,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에게 대가를 요구하는 국민들이 있는 한 우리의 정치적 후진성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우리는 3化의 도전에 나름대로 적응하고자 노력을 기울여 왔고, 세계화, 정보화의 측면에서는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아직 세계적 변화 방향에 충분히 적응했다고 할 수는 없다. 지금까지의 구조조정의 목적이 우리 경제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고 이 나라를 살기 좋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만드는 것이라면 우리의 현실은 그 목적과 너무나 거리가 먼 상태에 있다.

 


02 우리의 기업환경

 

  스위스에 있는 저명한 조사 연구기관인 IMD(국제경영개발원)를 비롯한 주요 기관들이 평가한 우리 나라의 기업 환경은 주요 경쟁 상대국들에 비해 전반적으로 열악한 수준이다. 2002년 IMD가 발표한 국가경쟁력 종합 순위를 보면 우리 나라는 49개국 중 27위로 대만(24위), 말레이시아(26위), 싱가포르(5위), 홍콩(9위)보다 낮다. 또한 '기업하기 좋은 아시아 국가'라는 비교 평가에서 우리 나라는 12개국 중 9위를 차지하였고, 경제 자유도에서는 123개국 중 43위, 국가위험도에서는 185개국 중 47위를 차지하였다. 특히 부끄러운 것은 사회청렴도에서 19개국 중 18위를 차지한 사실이다. (표1)

  

한편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는 2002년 3월 「한국 기업 환경 특별보고서」를 발표하였다. 여기에서는 조세 부담률, 외환 거래 자유도, 영어 활용도, 노동 시장 유연성 및 국가 이미지 등을 주요 척도로 하여 우리의 기업 환경을 인근 4개 국제도시(홍콩, 싱가포르, 상하이, 도쿄)와 비교했는데, 한국을 최하위로 평가하였다.

  『중앙일보』(2001. 3. 28)가 외국 기업을 대상으로 국내 투자 애로 사항을 설문 조사한 바에 따르면 217개의 응답 업체 중 43%가 노사 문제를 지적하고, 36%가 행정 규제를, 29%가 불투명한 회계를, 14%가 정책 일관성 부재를, 13%가 낙후된 금융을 지적하고 있다.

  이밖에 국제비교에서 우리 나라가 열위에 있는 약점으로 창업비 및 물류 비용이 높고, 연구 개발 투자가 적으며, 학생 1인당 교육비가 낮고, 학생들이 이공과 지망을 기피하며, 또한 고급 인력의 국외 유출이 심각한 점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우리 나라는 외국의 직접 투자가 적은 것으로 유명하다. 싱가포르의 외국인 직접 투자는 GDP(국내총생산)의 85.8%에 달하고 중국의 경우 27.6%에 이르고 있는데 반해, 우리의 경우 6.1%에 불과하다. 우리 나라는 일찍부터 기업의 외국인 지배를 두려워하여 직접 투자 대신에 차관을 선호했기 때문인데, 일종의 민족주의의 발로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경영 환경으로 인해 『포천(Fortune)』지가 선정한 100대 글로벌 기업들이 아시아 지역에 두고 있는 총 50개의 지역 본부 거의가 홍콩(23개)과 싱가포르(16개)에 집중되어 있고 우리 나라에는 오직 하나(Prudential Insurance Company)가 있을 뿐이다.

  이상의 관찰에서 얻은 결론은 명백하다. 지난 5년 간의 개혁과 구조조정 노력에도 불구하고 살기 좋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목표의 달성은 아직도 요원하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동안 우리의 주변 정세는 크게 달라졌다. 아시아 시대가 예견되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중국의 경제적 약진은 세계 경제에 충격을 던져 주고 있고 우리에게도 중대한 전략 변수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새로운 관점에서 21세기를 바라보는 국가 전략을 다시 짤 필요가 있다.

 


  2. 중국의 약진

 


 01 성장의 열기

 

  존 나이스비트(John Naisbitt)에 따르면 21세기 메가트렌드의 하나는 아시아 시대의 도래이다. 즉, 세계 경제와 문화의 중심이 서양에서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1995년부터 아시아 지역 내의 무역 총액이 아시아와 서양(서구와 북미) 사이의 무역 총액을 능가하였다. 또한 1960년경의 동아시아 경제는 세계 GNP(국민총생산)의 4%를 차지하는 데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약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가 지속된다면 동아시아의 경제 규모가 유럽이나 북미를 능가하는 날이 머지않아 올 것이다.

  동아시아 경제에서 중심적 역할을 해 온 것은 일본,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중국 등 한자 문화권의 국가들이고, 그 중에서도 지리적으로 동북아에 속하는 일본, 한국, 중국이 그 중핵(中核)을 이루어 왔다. 그런데 앞으로는 중국이 동북아 및 아시아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될 전망이다. 중국은 1978년 이래 개혁 개방을 꾸준히 추진한 결과 1980년대에 9.7%, 1990년대에는 10.2%의 평균 경제 성장률을 달성하였고, 현재 중국의 GDP 규모는 세계 제7위를 점하고 있다. 지금의 성장 추세를 지속하면 앞으로 10~15년 후에 미국의 GDP 규모를 능가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성장 속에 중국의 국제적 역할과 위상이 높아져 가고 있다. 2001년 11월 10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WTO(세계무역기구) 제4차 각료회의는 142개국 만장일치로 중국의 회원국 가입을 결의하였다. 또한 이미 7월 13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총회는 2008년 하계올림픽을 중국 베이징에서 개최하기로 결정하였다.

  중국은 2008년의 올림픽을 준비하기 위하여 체육관 등의 올림픽 관련 시설 확장, 베이징-상하이간 고속 철도 부설, 베이징 공항 확장, 디지털 CATV망 및 초고속 통신망의 구축, 해저 광케이블 부설, 전국 디지털 방송망 구축 등의 인프라 공사와 환경 및 관광 관련 사업 등을 계획하고 있다. 때문에 그 집행을 통하여 중국의 성장 열기는 한층 더 달아오를 것이고, 환경과 인권 개선 등의 시너지 효과도 기대되고 있다.

 


02 중국 경제의 난제

 

  중국의 장래를 매우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견해도 있다. 예컨대 지난 20년 동안 베이징, 홍콩, 상하이의 미국계 법률 사무소에서 일해 온 고든 창(Gorden Chang)은 그의 책 『중국의 몰락(The Coming Collapse of China)』에서 중국은 WTO 가입 후 5년 이내에 붕괴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창이 지적하지 않더라도 중국 경제의 문제점은 널리 알려져 있다

  먼저 주룽지(朱鎔基) 총리 자신이 WTO 가입 이후 관세 인하로 농산물이 대량 유입될 경우 8~9억 명의 농민들이 큰 타격을 입을지도 모른다고 우려한 바 있다.

  둘째로 중국에는 약 13만 개의 국영 기업과 3,200개의 향진(鄕鎭) 기업이 있는데 이 기업 조직은 방대한 과잉 인력을 고용하여 생필품을 생산해서 인민에게 공급하는 역할을 해 왔다. 시장 경제의 관점에서 보면 이들 국영 기업은 기업이라기보다 사회복지기관이라 할 수 있는데 그것이 중국 공산당에 정체성을 부여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시장 경제의 확대와 WTO 가입에 따라 국영 기업은 적자 도산이 불가피하게 되었고 그것은 공산당의 존립 기반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다.

  셋째로 이러한 위기 국면에 대처하기 위하여 중국 정부는 국유 은행으로 하여금 회수 불능의 대규모 융자를 하게 하고 있으므로 기업 부실은 금융 부실로 전가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1999년 말 현재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이 대출 잔액의 25%라고 발표한 바 있고, 2000년에는 '자본재편계획'에 의거하여 1조 3,000억 위엔(1,570억 달러)의 부실채권을 정리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외국 은행들은 중국의 부실채권 비율을 50% 이상으로 보고 있고, 그것이 중국의 화약고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넷째로 동부 해안 지역과 서부 미개발 지역 사이 또는 동부 지역의 계층간 소득 격차의 확대 및 부정부패의 만연이 중국 정부를 괴롭히고 있다. 중국은 서부 지역에 대한 외국의 직접 투자를 유치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여의치 않고 동부 해안 지역으로의 인구 이동을 막기 위해 주민 통제를 실시하고 있다. 그리고 만연하는 부정부패를 산발적 처벌로만 해결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도 있다.

  다섯째로 중국의 경제가 발전할수록 '천민자본주의'의 폐단이 표면화하고 민주화의 요구가 확산된다는 것은 우리 나라의 경험으로 보더라도 명백하다. 중국 내외에서 반정부 운동을 하고 있는 단체가 적지 않고.{註 : 필자의 홈페이지(http://www.dwnam.pe.kr)「중국의 민주화 운동」참조.} 최근에는 파륜공(法輪功) 운동이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파륜공은 1992년 리홍즈(李洪志) 교주가 창설하고 기공(氣功)을 사용하는 신앙 단체인데 회원수가 중국 내에 7,000만 명, 외국 회원을 합치면 1억 명에 달한다. 1999년 약 1만의 회원이 중난하이(中南海)에서 데모를 강행한 후 중국 정부에 의하여 불법 단체로 규정되었는데 그들은 집단 자살 등으로 정부 탄압에 항거하고 있다.

 


03 중국의 강점

 

  그러나 이상과 같은 중국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과장할 필요는 없다. 그것들은 공산주의 계획 경제가 사회주의 시장 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문제들이지만 그렇다고 해결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실제 중국 정부는 그들 특유의 실사구시(實事求是) 정책으로 서서히 문제를 해결해 가고 있다. 부실 기업의 문제에 관해서는 1996년 13만 개였던 국영 기업이 2000년에는 5만 4,000개로 감소하였고 국영 기업의 공업 생산액도 중국 전체의 80%에서 약 30%로 감소하였다는 보고가 있다.{註 : 일본『이코노미스트』, 2001. 8.14}

  또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에 관해서는 공산주의 체제에서 그것은 장부상의 문제로 처리될 수 있고 그것이 실물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최소화할 수 있다. 다만 처리 이후 자본주의적 경영 및 회계 제도가 정착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다. 정치 체제에 관해서는 공산당 간부들도 공산주의를 믿지 않고 있고 공산당은 다만 기득권 유지를 위한 껍데기만 남은 조직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어쩌면 최근 거론되기 시작한 '사회민주당'으로의 당명개정(黨名改定)이 예상보다 이른 시일에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대만이 우리와는 달리 큰 파열 없이 민주 체제로 이행하는 데에 성공하였고 마오쩌둥(毛澤東)의 과격한 문화혁명이 실패한 것을 보면 중국인들은 점진주의로 문제를 해결해 나갈 확률이 높다.

  하여튼 이제 중국은 WTO의 질서 아래 국제 경쟁에 뛰어들었고 우리 나라를 포함한 선진권의 제조업은 중국의 생산비상의 비교우위로 인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무엇보다 중국의 임금 수준은 우리의 5분의 1 내지 10분의 1 정도이며 잠재적 노동 공급은 거의 무한정이고 노동의 질 또한 나쁘지 않다.

  둘째로 중국이 유리한 또 하나의 조건은 토지국유 제도에서 오는 것이다. 지난 2001년 4월에 필자가 창춘(長春)에 갔을 때 알아본 바에 의하면 기업은 30~50년 기한으로 토지 임대를 받고 연간 우리 돈으로 평당 약 10만 원 정도의 임대료를 낸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SOC(Social Overhead Capital : 사회간접자본)의 건설에서도 지가 보상이니 지역 이기주의니 부동산 투기니 하는 문제 없이 정부가 계획하면 그대로 추진되는 체제이다. 경제 발전 초기에 이른바 '개발독재'가 능률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 나라뿐 아니라 대만, 싱가포르 등의 경험이 말해 주고 있는 터인데, 중국이 바로 그러한 발전 단계에 있는 것이다.

  셋째로 중국 정부는 외국 투자와 기술 도입을 적극적으로 유치해 왔다. 1992년 덩샤오핑(鄧小平)이 남방순회강화(南方講話)에서 사회주의 시장 경제의 방향을 천명한 것을 전기로 하여 그 해부터 외국인 직접 투자가 급증하였다. 직접 투자 도입의 전략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중국의 시장과 선진국의 기술을 교환하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선진국의 경영 방식을 도입하여 국내의 비능률적인 국영 기업을 재건하자는 것이다. 2000년까지 중국의 외국인 투자는 계약 베이스로 6,760억 달러, 도착(실행) 베이스로는 3,483억 달러로 집계되었다.

  초기에는 홍콩에서 들어온 외국 투자가 대종을 이루었으나 경제특구 수의 확대와 규제 완화 조치로 투자하는 나라가 다변화되었고, 현재(2000년)는 미국(계약액 전체의 8. 96%), 일본(5.74%), 대만(7.07%), 싱가포르(5.23%), 한국(3.66%), EU(14.20%) 등이 주요 투자국으로 부상했다. 특히 경제특구를 랴오둥(遼東) 반도 및 산둥성(山東省) 지방으로 확대한 결과 텐진(天津), 다렌(大連), 칭다오(靑島) 등으로 외국 투자가 진출하였고 이들 동북부에 대한 외국 투자(실행 베이스)가 전체 투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84년의 7.1%에서 2000년에는 21.2%로 증가하였다. 이것은 동북아 물류의 관점에서 매우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註 : 참고 문헌 No.11.Pingyao Lai의 논문 참조.}

  우리 나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초기에는 노동 집약적인 가공무역형 투자가 대종을 이루었으나 1992년 후에는 화학, 기계류, 수송장비, 전자통신, IT 산업 등 자본 및 기술 집약적인 투자로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외국의 직접 투자가 중국의 생산, 수출, 고용, 소득의 증가를 가져오고,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 온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중국이 투자 유치에 크게 성공한 이면에는 3대 요인이 있다. 값싼 노동력, 광대한 시장, 정부의 과감한 유인 정책이 그것이다. 중국이 채택한 주요 유인 정책은 (1) 각종 특혜를 제공하는 경제특구의 설정, (2) 산업, 특히 제조업뿐만 아니라 서비스, 금융, 보험 등의 개방, (3) 국산 자재 사용률에 관한 규제 완화, (4) 수출 의무화율 완화, (5) 합작 투자 비율 완화 등인데, 우리보다 크게 신축적이고 과감한 것이 특징이다. 예컨대 금융, 보험의 개방은 우리보다 앞선 측면이 있고 합작 투자 비율 제한도 과감히 철폐하여 지금(2000년)은 전액 투자의 투자액이 합작 기업의 투자액을 넘어섰다.

  개방화 정책으로 중국 제조업의 경쟁력은 높아지고 중국 제품의 질적 수준은 나날이 향상되고 있다. 그 결과 많은 나라의 제품이 중국의 제조업과 경쟁할 수 없게 되었고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 되어 가고 있다. 예컨대 중국은 이미 일본과 한국을 추월하여 세계 최대 가전 생산국으로 부상하였고 세계 시장 점유율에서 TV는 36%, 에어컨은 50%, 세탁기는 24%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 나라도 이미 중저가 섬유, 의류, 백색가전, 신발, 완구, 농업 등에서 중국과 경쟁할 수 없게 되었다. 어쨌든 중국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경제 파트너로 부각되고 있으며 중국을 떠나 한국 경제를 논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중국은 이미 2001년부터 일본을 제치고 우리의 제2의 무역 대상국으로 부상하였다. 2001년 미국에 대한 수출이 312억 달러였고 홍콩을 포함한 중국에 대한 수출은 275억 달러에 달하였다. 미국을 제치고 중국이 우리의 제1의 무역 대상국이 되는 날도 멀지 않은 듯하다.

 


04 우리의 대응

 

  세계는 나날이 달라지고 중국의 약진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전략을 세워야 할 것인가? 추상적인 대답은 어렵지 않다. 먼저 시장이 넓으면 틈새도 많은 법이다. 공업 제품을 고급화, 차별화하고 첨단기술 제품을 만들어 내어 중국 시장의 틈새를 찾아야 한다. 아직은 자동차, 철강, 정보통신, 석유화학, 고급 가전, 고급 섬유, 바이오 등이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품질 향상과 차별화에 피나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성공의 기회는 많을 것이다. 특히 중고급의 원자재, 부품, 반제품, 완제품 등에 대한 중국의 수요가 늘어날 전망이므로 이에 신속 적절히 대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중국의 WTO 가입에 따라 관세율이 인하되고 투자 여건도 개선되고 있으므로 이러한 긍정적인 요인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직접 투자 등을 통하여 중국 시장 점유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중국에 대한 우리 나라의 투자는 2000년 말 현재 실행액 누계로 4,865건의 44억 달러에 달하고 전체 해외 투자의 17%를 차지했다. 중국은 우리 나라의 최대 투자 대상국(중국측에서 보면 전체의 3.66%에 불과하지만)으로 부상했고 누계 투자에서 미국에 이어 제2위를 차지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주로 중국의 저임금과 시장을 바라보고 우리의 사양 산업을 중국으로 이전하는 투자가 많았으나 앞으로는 보다 미래 지향적인 투자가 늘어날 것이다. 이미 중국이 일본을 비롯한 여러 선진국의 직접 투자를 받아들인 결과로서 현지 메이커들이 속출하였고 품질면에서 그들과 경합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따라서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 저임금만으로 제3의 시장에서 경쟁하기는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일본 기업들 역시 중국에서 비교적 싼값으로 고급 두뇌를 활용할 수 있고, 한자 문화권의 본국이니 만큼 일본어 표시의 소프트웨어 개발이 용이하다는 데에 착안하여 직접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즉, 컴퓨터 소프트웨어뿐만 아니라 각종 가전제품의 제어장치 같은 첨단제품을 저비용으로 개발하자면 중국에 거점을 두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편 중국의 경제적 이륙이 다가오면서 그에 따라 가전제품 등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대할 것이 예견되므로 지금부터 공장 진출로 대비해야 한다는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註 : 『이코노미스트』.2002, 2. 04,PP. 12-43.} 결국 중국 진출에서도 우리 나라는 선진국들과 경쟁을 피할 수 없다.

  우리에게는 값싼 노동력도 없고 광대한 시장도 없다. 따라서 외국 투자 유치에도 한계가 있다. 제조업에서는 점점 중국과 경쟁하기가 어려워지고 중국에 투자 진출하는 것에서도 선진국, 특히 일본에 비하여 불리한 조건이 많다. 그러면 우리의 갈 길은 무엇인가? 대답은 『강대국의 흥망(The Rise and Fall of the Great Powers)』으로 유명한 폴 케네디(Paul Kennedy)가 주고 있다. 즉, "21세기에 한국이 지속적인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제조업이 아니라 중국이 창출하는 부가가치의 흡수 효과가 가장 큰 산업 부문을 전략적으로 채택, 발전시키는 것이다."{註 : 전일수「21세기 동북아 물류 중심지화 실천 전략」, 동북아 경제포럼 한국위원회에서 발표.}

  우리는 중국과 세계를 연결하는 물류 산업이 바로 그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한국을 동북아의 물류 중심지로 만드는 것이 새로운 경제 전략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 다음 장에서 상세히 살펴볼 것이다.

  


  3. 한국을 물류 중심지로

 


 01 물류 중심지 구상

 

  | 인천시의 구상

  한국을 동북아 물류 중심지로 만들자는 구상이 표면화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그러나 그와 유사한 발상은 1986년 인천시에서 배태(胚胎)되고 있었다. 당시 도시계획국장이고 지금은 기획관리실장으로 있는 박연수 씨가 그 중심 인물임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 2002년 8월 '동북아 경제포럼 한국위원회'가 주최한 하와이 회의에 참석한 박연수 실장으로부터 그 동안의 경위를 상세히 들을 수 있었다.

  당시 도시계획국장 박연수 씨는 1986년 (1) 국제 교역과 IT 등 첨단 산업 중심 도시로서의 '송도 정보화 신도시' 건설, (2) 중국 시장을 겨냥하는 영종도(永宗島)ㆍ용유도(龍遊島) '국제 관광 휴양 단지' 조성 사업, (3) 수도권 신 국제공항의 영종도 유치 등의 전략을 시장에게 보고하였다.

  그러나 그 당시 영종도와 용유도는 경기도 땅이었고, 수도권 신공항은 이미 청주(淸州)로 결정되어 상당 부분 토지 매입이 진행되고 있었다. 인천은 수도권 인구 억제 정책의 주요 대상지였고 그에 더하여 안보취약지로 분류되어 있었다.

  당시의 박배근 시장은 인천시의 구상을 전두환 대통령에게 조심스럽게 보고하여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으나 비서실과 관련 부처의 심한 반대에 부딪혀 사업을 추진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후임 이재창 시장은 본격적인 사업 추진에 착수하는 한편 노태우 대통령 초도순시와 다음 해 연두순시 등 두 번에 걸친 별실 보고를 통하여 설득에 성공하였다. 노태우 대통령은 인천 지역의 제9 공수부대 초대 여단장 재임시 안 질환으로 용유도에 요양차 방문한 일이 있어 현장 상황을 잘 알고 있었고 그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는 후문도 있다. 또 당시의 청와대 문희갑 경제수석비서관이 인천공항 SST(Super Sonic Transportation) 개발과 관련하여 인천시의 구상을 지지한 것도 큰 힘이 되었다 한다.

  이재창 시장은 1989년 3월 이 사업을 전담할 기구로 '공영개발사업단'을 발족하고 박연세 국장을 초대 단장으로 임명하여 사업 추진의 계속성을 확보했다. 그러나 경기도 땅인 영종도와 용유도를 인천시에 편입하는 과제가 쉽지 않았다. 대통령의 결정과 당론에도 불구하고 국회 내무위 소위(小委)에서 편입안이 부결되고 만 것이다. 인천시는 1988년 4월 '인천발전시민협의회'를 구성하여 국회에 강력한 로비(데모를 포함)를 행했는데 다행히 내무위 본회의에서 소위의 결정을 뒤집고 편입안을 가결하였다.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1992년 인천국제공항 건설이 시작되었고, 1995~1996년에는 국토연구원 등 6개 전문기관 합동으로 '인천국제공항 주변 지역 개발 타당성 조사' 연구용역을 실시하였다.

  1992년부터 임명직과 선출직을 합하여 10여 년 동안 재직한 최기선 인천광역시장은 송도 정보화 신도시 개발 사업을 끈질기게 추진하였다. 또 신공항의 이름이 '서울공항'이나 '세종공항'이 아니라 '인천국제공항'으로 결정된 데에도 그의 공로가 컸다. 여담이지만 최기선 시장은 경기도 부천 출신 내무위 소속 국회의원으로 있을 때에는 영종도와 용유도의 인천시 편입을 반대하였다 한다. 국회의원으로서의 입장과 인천시장으로서 입장의 차이를 여실히 말해 준다.

  김대중 정부의 출범 이후 인천시는 대통령에게 보고할 기회를 얻고자 했으나 처음에는 여의치 않았다. 그러나 2001년 8월 28일 인천시의 사업 추진 현황이 대통령에게 보고되었다. 참고로 동북아 경제포럼 한국위원회가 김대중 대통령에게 동북아 물류 중심지 실현 방안과 동북아개발은행 설립안을 보고한 것은 그로부터 약 한 달 뒤인 9월 22일의 일이었다.

  인천시는 그 동안 미국의 게일 컴퍼니(The Gale Company)와 127억 달러의 국제 비즈니스 센터 조성을 위한 외자 유치를 교섭해 왔고 그것이 성공 단계에 이르렀을 무렵인 같은 해 11월 29일 대통령은 송도를 방문하여 인천시의 추진 사항을 보고받았다. 그 자리에는 인천시장, 도시개발부장, 게일과 모건 스탠리(Morgan Stanley) 대표 및 제이 킴(Jay Kim) 등이 참석하였다고 한다.

  그 후 2002년 4월 4일 재경부는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 실현 방안' 제1차 시안을 발표하였고 7월 29일에는 제2차 시안을 발표하였다.

 

  | 동북아 경제포럼

  우리 나라를 물류 중심지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인천시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제기됐다. '동원 참치'로 유명한 사업가로서 1999년 한국무역협회 회장의 공직을 맡은 김재철 씨는 그의 책 『지도를 거꾸로 보면 한국인의 미래가 보인다』(김영사)를 통해 한반도는 21세기에 동북아의 "물류 십자로"로서 국제 비즈니스 센터가 될 수 있으며, 서비스 무역과 관광 사업의 잠재력 또한 매우 크다는 것을 역설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잠재력을 실현하는 데에는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특히 소프트웨어의 개발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필자 또한 인천시가 추진하고 있는 일을 미처 알지 못할 때인 1996년 4월,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 조찬 강연에서 한국이 동북아의 지리적 이점을 활용하여 물류 산업을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한 일이 있다. 필자가 이러한 주장을 하게 된 것은 '동북아 경제포럼'과 관계가 있다. '동북아 경제포럼'은 1990년에 하와이 동서문화센터의 조이제(趙利濟) 박사와 일본의 외상을 지낸 오키다 사부로(大來左武郞) 씨가 비공식 논단으로 시작한 것인데, 당시로서는 동북아 유일의 국제 논단이었다. 필자는 1991년 동북아 경제포럼의 텐진 회의에 참석하여 동북아개발은행 설립안을 발표했고 이 제안이 동북아 경제포럼의 고정 의제로 채택됨에 따라 적극적으로 이 논단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 후 후원자 또는 이사(理事)로서 동북아 경제포럼 운영에 관여해 왔다. 동북아 경제포럼은 조이제 박사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공인된 국제기구로 발전하였고 해마다 지역 내의 운수, 통신, 에너지 분야의 지역 협력, 그리고 동북아개발은행 설립안을 논의해 왔다. 매년 회의에 참석하여 토론을 거듭함에 따라 한국이 동북아 물류 중심지로 발전할 수 있다는 생각은 더욱 굳어졌다.

  동북아 경제포럼은 한국의 물류 중심지 구상을 발전시키기 위해 수차례에 걸쳐 운수에 관한 지역 협력 방안을 논의했고, 그러는 사이 임창렬 경기도지사, 최기선 인천시장, 인천국제공항공사 강동석 사장 등이 포럼의 노력에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2001년 물류 중심지 구상을 추진하기 위해 필자를 포함한 몇몇 사람들이 주동이 되어 재계 지도자, 여야 국회의원, 국내 연구소 전문가, 학자들로 구성된 '동북아 경제포럼 한국위원회'를 결성하였다. 한국위원회는 재계의 출연으로 하와이의 동북아 경제포럼 본부의 조사 연구를 지원하는 한편, 한국위원회의 운영위원들은 유럽과 아시아의 물류 센터를 직접 답사하고 관계기관을 방문하여 물류 센터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였다. 2001년 8월 하와이의 포럼 본부에서 동북아 물류 중심지에 관한 세미나를 개최하였는데, 여기에는 외국의 물류학자와 한국의 전문가들(교통개발연구원, 해양수산개발연구원)과 함께 한국위원회 운영위원들이 참석하였다. 운영위원회는 세미나의 토론 내용과 물류 중심지 시찰 결과를 분석 정리하고 그로부터 물류 중심지의 성공 조건을 도출하여 우리의 현실과 비교해 보았다.

  이어서 한국위원회는 우리의 결론을 재확인하기 위해, 같은 해 9월에 싱가포르 및 암스테르담의 전문가와 국내 전문가 및 재계 인사들이 참가하는 가운데 ASEM(아시아유럽정상회의) 회의장에서 국제회의를 개최하였다. 곧 이어 청와대의 요청으로 우리의 견해를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고함과 동시에 추진 방안을 건의하였다. 그 후 정부 내에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 발전기획단'이 조직되었고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 실현 방안'이 발표되었다. 이제 정부가 명백한 정책 의지를 천명하였고 그 실현 방안이 공론화된 것이다.

  물론 더욱 정확하게 현실을 파악하고 앞으로 예상되는 문제들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는 일이 절실했다. 한국위원회 운영위원들은 2002년 5월 2일 인천시를 방문하여 인천시 물류 및 비즈니스 중심지 개발 현장을 시찰하였고 향후 추진 계획과 문제점들을 파악하였다. 우리는 인천시가 지난 15년 동안 이룩해 놓은 업적에 감명을 받았다. 중앙 정부가 좀더 일찍 관심을 갖고 지방 정부를 지원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았다.

  추진 방안을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중국 및 근린 국가들의 물류 중심지 개발 계획, 동북아시아 물류 거점의 경쟁력 비교, 우리의 계획에 대한 다국적 기업들의 반응, 경제특구의 바람직한 개념, 필요한 제도 개혁의 내용 등에 관한 조사 연구가 필요했다. 교통개발연구원은 동북아 경제포럼의 협조 아래 국제적 연구를 계속했고 한국위원회는 6월에 또다시 현지 조사를 위해 몇몇 위원들을 유럽에 파견하기로 했다. 금년(2002년) 8월 하와이에서 이들 조사 연구의 보고를 받고 토의를 계속하여 최종 결론을 도출하기로 했던 것이다.

  돌이켜 볼 때 인천시가 동북아 물류 중심지의 요람이라고 한다면 물류 중심지 구상에 이론적 기초를 부여하고 외국 사례를 광범하게 조사 분석하여 전국적인 차원의 실현 방안을 제시하는 동시에 국내의 여론을 환기하는 데에는 동북아 경제포럼과 국내 연구기관, 특히 교통개발연구원 및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의 노력이 있어야 했다.

 


02 물류 중심지의 개념

 

  물류 중심지(Logistic Center)란 과연 어떤 것인가? 세계의 유명한 물류 중심지로는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과 로테르담, 독일의 함부르크, 벨기에의 안트베르펜, 싱가포르, 중국의 홍콩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들 도시는 해운, 항공, 육운의 전부 혹은 일부의 중심지이다. 그래서 물류 중심지라 하면 단순히 사람과 물건의 집산지(集散地)처럼 생각하기 쉬운데 현대의 이른바 로지스틱 센터의 개념은 보다 포괄적이다. 해운, 항공, 육운의 중심지에는 정보통신 기술을 활용하여 통관, 하역, 보세 창고, 보험, 택배, 금융 등, 관련된 다양한 경제 활동이 전개되고 거기에서 막대한 부가가치와 고용이 창출된다.

  그뿐 아니다. 물류 중심지에는 세계 유수의 다국적 기업들이 상품의 생산, 유통, 재고, 정보 등을 총괄적으로 관리하는 지역 본부를 두고 있다. 예컨대 미국과 아시아계 기업들은 2000년 현재 유럽 각지에 955개의 지역 본부를 두고 있는데, 그 중 541개가 네덜란드에 집중되어 있다. 싱가포르에는 1,000개 이상의 다국적 기업들이 지역 본부 혹은 유통 센터(distribution center)를 두고 있고 통신 관리 센터(Calling Center)를 설치한 기업들도 있다. 유통 센터는 통신 기술을 활용하여 공급망 관리(Supply Chain Management), 실시간 배송 관리(Just in Time) 등 다양한 방법으로 경영 비용을 절감한다.

  우리 조사단은 로테르담에 있는 (주)한국타이어의 유통 센터를 방문하였다. 한국타이어는 종전에는 유럽 각지에 지점 혹은 대리점을 배치하여 그곳에 각종 타이어를 골고루 갖추고 재고를 유지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로테르담의 유통 센터로 재고를 통합하고 판매 단위로부터 주문이 있으면 24시간 혹은 48시간 내에 배달하는 시스템을 만든 결과 재고 비용을 30%나 절감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중앙 집중적 유통 본부(distribution center)를 설치하면 다음과 같은 이점이 있다고 한다.

  물류 산업에 나타난 또 하나의 경향은 다국적 기업들이 물류 업무를 전문 업체에 맡기는, 이른바 아웃소싱(outs ourcing) 현상이다.

  예컨대 미국의 내셔널 세미컨덕터(National Semiconductor)는 반도체 및 부품 생산 업체인데 페덱스(FedEx)사와 전략적 제휴를 통해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동시에 물류 기능을 전적으로 페덱스에 일임하였다. 대신 디자인, 연구개발(R&D), 글로벌 경영 전략 수립, 네트워크 관리 등 핵심 분야에 전념하고 있다. 페덱스사는 부품과 완제품의 운송뿐 아니라 내셔널사의 생산, 보관, 주문 상황에 관한 정보처리 시스템을 관리하는 업무를 대행하고 있다. 이러한 아웃소싱의 결과 내셔널사는 물류 비용을 매출액의 2.9%에서 1.2%로 절감하고 제품 배송 시간을 평균 4주에서 최대 7일로 단축했다고 한다.

  이처럼 물류 중심지에는 물류 대행업자[Logistic Service Provider(LSP) 또는 Third Party Logistics(3PL)라고 한다]가 모이게 마련이다. 네덜란드에는 미국과 아시아에서 진출한 유럽 유통 센터(EDC)의 66%가 현지 물류 전문업자에게 물류 업무를 맡기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우리가 동북아 물류 센터를 만들고자 한다면 먼저 세계의 유수한 물류 전문 업체를 유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류에는 단순히 상품을 운반하는 물류와 부가가치 창출을 수반하는 물류가 있다. 후자를 가리켜 가치 창조성 물류(Value Added Logistics)라고 한다. 가령 부산항에 들어오는 컨테이너가 다른 배에 실려 제3국으로 향하는 것을 환적(통과)이라고 하는데, 이 경우에는 부산에서 컨테이너를 열 필요가 없고 따라서 일거리도 별로 없다. 그러나 만약 컨테이너 안에 있는 상품을 여러 가지로 가공해서 제3국으로 보내게 되면 부산에는 일자리와 함께 소득(부가가치)이 창출된다. 조립, 혼합, 부품 추가, 상표 부착, 품질 검사, 재포장 등 가공할 일거리는 많이 있다.

  이러한 일은 상품 생산지에서보다 물건이 도착해야 할 시장에 근접한 물류 센터에서 하는 것이 유리한 경우가 많다. 가령 중국으로 보내는 컴퓨터에 부착할 중국어 자판은 미국에서보다 한국에서 만드는 것이 유리할 수도 있다. 또 하나의 예를 든다면 유럽의 양주업자가 원액을 영종도로 보내어 그곳에서 병입(bottling)과 상표 부착(labeling)을 해서 24시간 내에 아시아 전역의 양주 판매업소로 배달하는 체제를 만들 수 있고 실제로 인천국제공항 관리공사에 그에 관한 문의가 있었다고 한다. 요컨대 물류 센터에서 물류와 제조를 결합하면 단순 물류의 경우보다 수익성이 높아진다. 때문에 네덜란드 사람들은 외국에서 들어오는 컨테이너를 열게 하는 방법을 여러 모로 궁리했다. 학자들은 그것을 보고 '생산의 연장(Production Postponement)'이라는 어색한 용어를 만들어 냈다.

  학자들에 의하면 운송비가 톤당 16달러 이하의 화물은 항공편으로 운송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한다. 첨단기술의 발달에 따라 화물이 경량화하고 경량 제품일수록 항공편을 이용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에 공항 주변에 첨단기술 제품의 생산 기지가 발달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인천에 IT 생산 단지를 만들겠다는 발상에는 일리가 있다.

  요컨대 기업들이 물류 센터로 모여드는 이유는 첫째로 비용이 절감되어 경쟁력이 높아지고, 둘째로 사업하는 데에 모든 것이 편리하고, 셋째로 기분 좋게 살 수 있는 생활 환경이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네덜란드에 들어와 있는 다국적 기업들이 답한 진출 동기의 평균적인 순위이다. 이를 참고하면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 수 있다.

  1. 지역 주민의 복수 언어 사용 능력
  2. 중심적 전략적 위치에 있다.
  3. 양질의 노동력과 노동 윤리
  4. 우수한 기업 환경
  5. 정부의 적극적 행정 지원
  6. 우수한 정보 통신 시설
  7. 우수한 인프라
  8. 관련 업종이 모여 있다.
  9. 효율적 전문적 물류 산업이 있다.
  10. 교통 시설 편리성

   20세기에는 화물과 사람의 이동을 다루는 운송의 거점과 정보의 이동을 다루는 정보통신의 거점이 독립적으로 발달할 수 있었으나, 21세기에는 운송과 정보통신이 결합된 형태로 발달하고 있다. 때문에 우리는 인천의 항구와 국제공항, 부산, 광양의 무역항, 서울의 정보통신 기지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계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03 한국의 지리적 조건

 

  한 지역 혹은 한 나라가 물류 중심지로 되려면 우선 지리적 조건이 좋아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 나라의 지리적 조건은 어떠한가? 먼저 13억 인구의 중국 경제가 팽창함에 따라 중국과 아시아 국가 사이는 물론 세계 각 지역 사이의 사람과 물건의 유통량이 비약적으로 증가할 것은 틀림이 없다.

  해운 컨설팅 회사(Ocean Shipping Consultant)의 보고서(1999년)에 의하면 앞으로 10년 간 세계 경제 성장률은 2~3% 수준으로 전망되나 컨테이너 물동량은 6.7% 증가할 것이고, 특히 동북아의 경우는 연 평균 8.1% 증가할 전망이라고 한다. 중국 정부의 추정에 의하면 중국의 컨테이너 물동량은 연 평균 11.5%씩 증가하여 2011년경에는 6,700만TEU{註 : TEU Twenty feet Equivalent Unit의 약자로, 컨테이너 길이 20피트 단위로 선적 용적을 계산한다. 중량 단위가 아니다.}에 달하고 이는 동북아 물동량 전체의 2분의 1에 해당한다고 한다.

  문제는 이 엄청난 물류를 누가 어떻게 담당할 것이냐 하는 것인데, 다행히 우리 나라는 동북아 물류 중심지가 될 만한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즉, 한반도는 동북아의 중심에 위치해 있고 전 세계 및 동북아 지역 내의 모든 공항 및 항만과 효율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그러기에 우리 나라는 이미 동북아 물류의 큰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해양수산부 자료에 의하면 우리 나라 컨테이너 물동량은 1996년 이후 연 평균 14.2%의 높은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00년도의 항만 화물 처리 실적은 912만TEU인데, 앞으로 중국 환적 화물의 수요 증가를 감안한다면 2011년에는 약 3,000만TEU로 증가할 전망이라고 한다. 현재 부산항은 컨테이너 적재량에서 세계 3~4위를 다투고 있으며, 그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서울에서 3시간 비행거리에 인구 100만 이상 도시 43개가 위치하고 있음은 잠재적 항공 수요가 매우 크다는 것을 말해 준다. 이미 인천국제공항은 동북아 최대의 공항으로 자리잡았고 대한항공의 화물 수송량은 63억 5,700만FTK(=수송중량×수송거리)로서 세계 제2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 주요 원인은 현재의 항공기로는 동남아시아에서 북미 동부까지 논스톱으로 비행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 나라를 경유하는 경우가 많은 까닭이다. 우리 항공사의 통과 화물 비중(1997년)은 대한항공이 67%, 아시아나항공이 46.8%을 보이고 있다.

 

 

  비단 중국뿐만 아니라 시베리아의 잠재력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앞으로 경제대국 중국의 에너지 수요가 증가하면 중국, 한국과 일본은 석유 공급을 중동에만 의존할 수 없게 된다. 다행히 시베리아에는 풍부한 천연가스가 매장되어 있고 그것을 개발하여 파이프라인(pipeline)으로 중국, 한국, 일본에 공급하는 구상이 동북아 지역 협력의 현안으로 논의되고 있다. 그리고 남북철도와 시베리아 횡단철도(TSR), 중국횡단철도(TCR)가 연결되는 날이 오면, 인천이 해운, 항공, 육운이 연계되는 이상적 물류 중심지가 될 뿐 아니라 부산, 광양만은 물론 서해안의 평택, 군산, 목포 등의 항구들도 동북아 물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지리적 조건과 관련하여 생각해 볼 만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이것은 인천국제공항 공사 강동석 전 사장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인데, 미국의 어느 메디컬 센터의 이사가 찾아와서 영종도에 미국 병원과 합작으로 내장 이식 전문 병원을 지으면 크게 성공할 것이라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하필이면 왜 내장 이식 전문 병원이냐고 물었더니 앞으로 중국에 마이카 시대가 오면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람이 대단히 많을 터인데 영종도는 중국에 근접해 있어 내장을 운반해 오는 시간이 가장 짧고 한국의 의료 기술 수준이 중국보다 높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잠재 수요와 지리적 조건을 염두에 두고 본다면 웃어 넘길 수만은 없는 발상이다.

  돌이켜 보면 한반도는 그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19세기 말에는 세계 열강들의 각축장으로 침략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21세기에는 그것이 우리의 경제적 비교우위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지리적 조건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04 물류 산업의 경제적 효과

 

  A를 강조하면 B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냐 하고 반문하는 것이 우리 토론 문화의 특징이다. 우리가 물류 산업을 강조하면 제조업을 사양 산업으로 보느냐, 또는 물류 산업만으로 먹고 살 수 있느냐 하는 질문에 봉착한다. 이미 앞장에서 밝혔듯이 제조업은 계속 발전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시장의 개척, 기술 능력의 배양, 제품의 차별화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한 바 있다. 물류 산업이란 결국 제조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역할을 하고 동시에 항만, 공항 주변에 새로운 제조업(IT 산업과 같은)을 일으킨다. 따라서 물류 산업과 제조업은 보완적 관계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제 제조업에서도 서비스 콘텐츠의 중요성을 인식할 때이다. 상품을 만들어 내자면 공장, 자본설비, 노동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밖에 인사 관리, 재고 관리, 시장 관리, 홍보 등의 다양한 서비스 용역이 필요하고 무엇보다도 기술 개발 서비스가 결정적인 중요성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서비스 용역들은 다소의 전문 지식을 필요로 한다. 때문에 종전에는 생산의 3요소로 토지, 자본, 노동을 들었는데 지금은 지식을 제4의 생산 요소로 보는 학자도 있다. 노동과 지식은 자본가가 소유할 수 없고 관리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 두 가지 인적 요소를 잘 관리해야 제조업에서 성공할 수 있고 기타의 모든 경영에서 성공할 수가 있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자본주의는 인본주의로 변해 가지 않을까 하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물론 앞서 말한 질문, 물류 산업만으로 먹고 살 수 있느냐 하는 것에 대한 대답은 당연히 No이다. 네덜란드와 같은 물류 중심국가에서도 물류 산업이 직접적으로 창출하는 부가가치는 GDP의 약 16%에 불과하다. 그러나 간접 효과까지 따지면 그 비중은 더 커질 것이다. 로테르담 항만 당국의 자료에 의하면 이 항구에서 직접적으로 창출된 부가가치는 150억Dfl(Dutch Florin)인데 간접적인 효과는 380억Dfl로 추산된다. 이 점을 떠나 네덜란드의 2000년 기준 농업 비중이 1%, 제조업 비중이 15%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16%에 이르는 물류 산업 비중이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우리 나라의 경우 2001년 기준으로 제1차 산업이 4.4%, 제2차 산업이 30.3%, 제3차 산업이 65.3%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만일 우리 나라가 동북아 물류 센터로 발전한다면 직접 간접으로 창출되는 부가가치는 농업의 그것을 능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나라는 서비스 산업의 비중이 70~76%에 이르는 선진국 형태를 닮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비스 산업의 비중이 커진다는 것은 경영 전략에서 상품 대 인간의 관계보다 인간 대 인간의 관계가 더 중요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나라가 동북아 물류 중심지의 요건을 갖추게 되면 관광 산업 역시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여행과 관광은 세계 최대의 산업이 되고 있다. 국제항공여행협회의 예측에 따르면, 아시아의 항공로 이용량은 2010년까지 연 7%의 속도로 증가할 것이며 세계 항공량에서 차지하는 아시아의 비중은 2000년의 39.2%에서 2010년에는 50% 이상이 될 것이라고 한다.{註 : John Naisbitt, Megatrends Asia, Japanese Translation, Tokyo, 1996.} 특히 중국의 1인당 소득이 증가함에 따라 중산층의 관광객이 가까운 한국으로 대거 몰려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것 또한 한국을 물류 중심지로 만드는 요인이다.

  


  4. 주변 정세

 


 01 물류 시설의 대대적 확충

 

  앞장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세계 컨테이너 물동량은 1998년 이후 연간 6.7%씩 증가하여 2011년에는 4억 3,000만TEU에 이를 것으로 예측되지만 동북아 경제권의 컨테이너 물동량은 1998년 이후 연간 8.1%씩 증가하여 2011년에는 1억 3,700만TEU에 이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즉, 2010년대가 되면 동북아시아의 컨테이너 물동량은 1990년대의 전 세계 컨테이너 물동량과 같아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급속한 증가에 대비하여 우리의 경쟁 상대라고 볼 수 있는 주변국들은 공항과 항만 시설을 대대적으로 확장하여 저마다 동북아 물류 중심지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장에서는 주변국들의 물류 시설의 확장과 외국 투자 유치, 정책적 노력을 개관하고 우리 공항과 항만의 강점과 약점을 짚어 볼 것이다.

 

  | 공항

  먼저 동북아 주요 공항의 형세는 <표 2>와 같다.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일본의 간사이 공항을 제외하고 모든 공항의 여객 수송량이 처리 능력을 초과하고 있다. 화물 수송의 경우 아직 여력이 있으나 상하이의 푸동 공항은 그 능력을 초과하고 있고 확장이 시급한 상태에 있다. 홍콩 공항을 제외하고 모든 공항이 확장 공사를 추진 중에 있다.

  인천공항은 동북아 최대의 공항으로 동북아의 중심에 있고 역내 도시에 대한 접근성이 양호해서 동북아 종합 항공망을 구축하기에 유리하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2,000㎞ 이내에 동북아 주요 도시가 모두 이 권내에 들고 이 지역의 인구는 14억에 이른다. 싱가포르의 3억 5,000만, 네덜란드의 3억 7,000만에 비하면 약 4배의 잠재 시장 요인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인천공항은 역내 경쟁 공항에 비하여 시설 사용료가 낮고 환적 작업의 효율성이 높아 많은 항공사들이 선호하고 있다. 인천공항은 향후 10년 간 연 평균 8.8%의 수요 증가가 예상되므로 2008년에는 시설 용량이 포화 상태에 이르러 서비스 수준이 떨어질 우려가 있다. 때문에 지금부터 공항 설비 확장을 서둘러야 한다. 정부는 2008년까지 여객 수송 능력을 4,400만 명으로, 화물 수송 능력을 450만 톤으로 확장할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한편 인접 국가들이 새로운 공항을 건설하거나 확장하고 있고 일본과 중국이 거대 항공 시장을 발판으로 시장 지배력을 확대하고 있어 인천국제공항의 위협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 항만

  동아시아 주요 항만의 형세는 <표 3>과 같다. 특히 중국의 경우 10년 내 현 항만 시설의 2배 수준의 확충을 계획하고 있고 상하이항을 세계 최대 항만으로 건설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상하이뿐만 아니라 텐진, 칭다오, 다렌 등 여러 항만들을 확장하고 있고 이 지역으로 외국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부산항은 2001년 컨테이너 처리량에서 홍콩, 싱가포르에 이어 세계 제3위를 차지하였다. 부산ㆍ광양항은 우리의 수출 화물을 북미주로 직송할 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 오는 선박의 화물 일부 또는 전부를 넘겨받아 미국으로 운송하는 환적항의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북미주, 유럽에서 오는 선박의 화물을 일본이나 중국으로 가는 선박에 환적하기도 한다. 부산ㆍ광양항 화물 처리량의 약 36%가 환적 화물이다.

  항구의 수심은 입항할 수 있는 선박의 크기를 제약한다. 5,000TEU의 선박이 입항하자면 14m의 수심이 필요하고 1만TEU급 컨테이너선이 출입하자면 16m의 수심이 필요하다. 일본과 우리 나라의 조선 회사는 1만 2,000TEU급 선박의 설계를 끝마쳤다고 한다. 이러한 초대형 컨테이너선이 등장하면 항만 하역 시스템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적어도 18m의 수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중국 항만 당국들은 이러한 대형선 출현에 대비하여 수심을 깊게 하는 준설 계획을 추진 중에 있다.

  상하이항에는 양쯔강의 토사가 유입하므로 빈번한 준설이 필요하고 또 수심을 깊게 하자면 준설 비용이 많이 든다. 이에 반하여 부산ㆍ광양항은 낙동강 하구에서 떨어져 있어 토사의 유입이 없고 수심을 깊게 하는 준설이 비교적 용이하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항구 및 상하이 등의 항구에서는 항구 내의 교통량이 많고 장애물이 많기 때문에 배가 항구에 입항해서 파일럿의 안내를 받아 서서히 부두까지 접근하는 데 많은 시간(7~8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그러나 부산항에서는 약 1시간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부산 역시 천연의 양항(良港)이긴 하나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각종 시설이 불충분하고 유지 보수를 위한 투자를 소홀히 해 왔기 때문에 항만 기능이 완벽하다고 할 수 없는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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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ㆍ광양은 유럽-싱가포르-홍콩-카오슝-부산(광양)-고베-북미를 연결하는 세계 주요 간선 항로(Main Trunk Route)상에 위치하여 화물 환적에 유리하다. 이에 반해 상하이는 간선 항로에서 떨어져 있어 일본 지역 환적 화물 처리에는 불리하다. 또 고베는 간선 항로상에 있으나 중국 동북부 지역에 대한 환적에는 불리한 위치에 있다. 중국 화물의 환적은 부산ㆍ광양, 홍콩이 가장 유리하고 중국 동북부 화물의 환적은 부산ㆍ광양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실제로 한ㆍ중간 컨테이너 화물의 물동량을 중국 항만별로 살펴보면 상하이, 텐진, 칭다오, 다렌 등 동북아 지역 항구의 물동량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 중국 동북부의 항구들은 장차 부산을 거치지 않고 북미주와 유럽으로 직행하는 간선 항로에 참가할 것을 바라보고 항만의 수심을 깊게 하고 선석(船席) 수를 늘리는 중에 있다. 그러나 가까운 장래에 그들의 목적이 실현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막다른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이들 항구가 직행 항로를 열자면 항구 배후 지역의 물동량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들어오는 수입 물량이 비약적으로 증가해야 하는데 아직 그러한 가능성은 없다. 지금으로서는 간선 항로가 부산을 지나 그 오지까지 들어가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러므로 텐진, 칭하오, 다렌 항구는 주로 우리 나라와 일본을 왕래하는 선박의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인천은 간만의 차가 심하고 수심이 낮아 갑문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대형 선박이 들어오기 어렵다. 그러나 중국과 한국 사이의 물동량을 처리하는 주요 항구임에 틀림없다. 물론 현재 중국에서 한국으로 오는 컨테이너 화물의 45%는 환적 화물이고 대부분 부산ㆍ광양항에서 환적이 이루어진다. 지금은 한ㆍ중간 합의에 따라 인천을 출입하는 컨테이너 항로 수와 선박 수가 제한을 받고 있지만, WTO 가입에 따라 앞으로 컨테이너 수송이 개방되면 중국 동북부 항만과 인천 사이의 소ㆍ중형 컨테이너 수송량이 늘어나고, 인천의 항공편을 이용하는 경량 화물의 환적항으로서 인천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또 계획 단계에 있는 송도 외항의 수심은 15m이므로 이것이 완성되면 지금의 인천항의 역할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중국 동해안에는 수많은 작은 항구들이 있으므로 앞으로 한ㆍ중간 무역이 확대됨에 따라 이들 항구와 인천, 평택, 군산, 대불 등 서해안 항구 사이에 페리(Ferry)와 쾌속정 왕래가 급증하고 마침내 황해 물류권(圈)을 형성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현재 인천의 중국 항로에는 다소 문제가 있다. 한ㆍ중 양국은 1992년 12월 해운회담을 시작한 이래 2001년 9월까지 총 9차 해운회담을 가진 바 있다. 양국이 회담에서 합의한 바에 따라 현재 카페리 항로는 한ㆍ중 합작선사가 9개 항로에 9척을 운항하고 있고 컨테이너선 항로는 양국간 균등 배분 원칙에 따라 22개 정기 항로에 각각 29척, 합계 58척이 운항 중이다.

  이러한 정기 항로 수의 제한 때문에 경인 지역 화물 일부를 부산ㆍ광양항을 경유하여 중국으로 수송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이런 왜곡 현상을 시정하자면 인천-중국 간의 정기 항로가 개방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문제가 타결되지 않은 이유 중에는 우리측의 사정도 있다. 즉, 컨테이너 정기 항로를 개방하면 경쟁력이 약한 카페리 업자들이 항로를 유지하기 어렵게 되는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2000년 제8차 한ㆍ중 해운협의회에서 미국 등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의 반발로 제3국 선사에 대하여 컨테이너 항로가 개방된 바 있다. 한ㆍ중 항로를 제3국 선사에는 개방하고 양국 선사에는 개방하지 않는 것은 모순이므로 머지않아 한ㆍ중간 컨테이너선 항로는 완전히 개방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싱가포르, 홍콩, 카오슝항은 상하이 이남과 동남아 지역의 물동량 처리에 유리하고, 도쿄-요코하마는 일본과 유럽ㆍ북미주 간의 물류 처리에 유리하고, 부산은 북미주 및 동북아 물류 처리에 유리하고, 인천-평택은 황해권 물류 처리에 유리하다고 할 수 있다.

 


02 다국적 기업의 유치

 

  | 다국적 기업의 아시아 진출

  1998년 2월에 UNCTAD(유엔무역개발회의)와 ICC(국제상공회의소)가 공동으로 세계 500대 다국적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다국적 기업은 외환위기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지역을 여전히 주요 투자 대상 지역으로 인식하고 있다.

  세계 100대 다국적 기업의 동아시아 진출 현황을 살펴보면 동북아 지역에서는 중국의 비중이, 동남아 지역에서는 싱가포르의 비중이 계속 증대하고 있고, 한국 또한 최근 외국인 투자의 급격한 증가로 중국, 일본, 싱가포르, 홍콩 등과 함께 동아시아 지역의 중요한 투자 대상국이 되고 있다.

  미국의 경제잡지 『포천』지가 선정한 글로벌 500 기업 내 상위 100대 기업 중에서 아ㆍ태 지역 본부를 별도로 두고 있는 기업은 총 50개(일본에 본사를 두고 있는 일본 대기업 제외)이고, 이들 대부분은 홍콩(23개)과 싱가포르(16개)에 집중되어 있다.

 

  | 다국적 기업의 한국 진출 현황

  외환위기 이후 우리 나라의 3년 간(1998∼2000년) 외국인 투자액 합계(도착 기준)는 260억 달러이고, 지금까지의 총 투자 유입액 423억 달러의 61%를 차지하였다. 특히 외환위기에 처해 있었던 1998년, 우리 나라의 외국인 투자 유입액이 아시아 지역에서 중국 다음으로 제2위를 차지하였음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이것은 우리 나라가 아시아의 주요 투자 대상국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2000년 현재로 『인더스트리 위크(Industry Week)』가 선정한 세계 1,000대 제조업체 중 399개가 한국에 진출해 있다. 그러나 아시아 지역 본부를 두고 있는 다국적 기업은 하나(Prudential Insurance Company)에 불과하다. 포드 자동차의 경우 서울에 아ㆍ태 지역 본부를 두고 있으나 부품 서비스 부문에 국한되어 있고, 따로 판매 및 마케팅 사업 본부를 방콕에 두고 있다.

  『파 이스턴 이코노믹 리뷰(Far Eastern Economic Review)』(1997. 1. 2)의 조사 결과는 그 이유를 말해 준다. 이 잡지는 아래의 일곱 가지 항목을 기준으로 다국적 기업 CEO들에게 아시아에서 지역 본부를 두고 싶은 도시에 대해 설문했다.

  1. 노동력 가용성
  2. 시장 기회
  3. 비용
  4. 친 기업적 환경
  5. 통신
  6. 인프라스트럭처
  7. 삶의 질

   종합 평가 결과, 싱가포르가 절대적 우위를 차지했고 그 다음으로 홍콩, 시드니, 쿠알라룸푸르, 마닐라, 방콕, 자카르타, 타이페이의 순이었다. 그러나 한국은 대상에 들지 않았다.

  2000년 건설교통부가 이미 한국에 들어와 있는 외국 투자 기업, 투자할 가능성이 있는 기업, 수출자유지역의 기업들을 대상으로 투자 동기 또는 투자를 고려하는 이유에 대해 설문 조사를 했는데 그 결과 또한 시사(示唆)적이다. 조사 결과 가장 큰 유인은 한국의 시장 수요(35.5% )였고, 둘째는 양질의 노동력(25.8%), 셋째는 동북아 시장 거점 확보(16.1%), 넷째는 기존 한국 기업과의 연고 관계(8.1%), 그리고 마지막 순위에 있는 것이 외자 유치 제도의 양호(3.2%)였다. 주목할 점은 외국 기업들이 더러는 한국을 동북아 시장 진출의 거점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과 예상했던 대로 우리의 외자 유치 제도에 대한 평가가 매우 낮다는 것이다.

 

  | 한국 투자 유치의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

  우리 나라는 지리적으로 동북아의 중심에 있고 시장 경제의 발전도나 기술 수준면에서 일본과 중국의 중간적 위치에 있어 여러모로 양국 사이의 교량 역할을 할 수 있다.

  우리 나라는 반도체, 전자ㆍ전기, 자동차, 철강 등 제조업 분야에서 상당한 생산 기반을 갖추고 있고, 일본보다는 떨어지지만 동아시아에서는 상위에 속하는 연구 개발 능력과 지적 기반을 보유하고 있다. 때문에 선진국의 다국적 기업들은 우리 나라의 중급 기술과 일본에 비해 여전히 값싼 숙련 노동력을 이용하여 중국에 진출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외국 기업이 가장 중요시하는 광대한 시장과 값싼 노동력도 없고, 제조업의 기반이 되는 기초 기술, 연구 개발도 일본에 비해 낙후되어 있으며, 더군다나 앞에서 본 바와 같이 기업 환경도 그다지 좋지 않다. 일본만 하더라도 세계 100대 다국적 기업 중 17개, 1,000대 제조업 기업 중 236개의 외국 기업들이 들어와 있는 반면, 우리 나라에 다국적 기업의 지역 본부가 하나밖에 들어와 있지 않다는 것은 도저히 정상이라 할 수 없다.

  우리가 외국 투자와 다국적 기업을 유치할 수 있는 무기는 두 가지뿐이다. 첫째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의 이점을 충분히 활용하는 것이고, 둘째는 우리의 약점을 극복하여 저렴하고 쾌적한 기업 환경과 최상의 서비스 체제를 창출하는 것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결코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일단 후자의 조건을 실현하는 데에는 수많은 난관이 있을 터이고 그를 돌파하는 데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므로 첫째의 조건에 초점을 맞추어 동북아 물류 중심지를 만들고 그 주변에 전략적 산업을 일으키는 데에 우선 순위를 둘 수밖에 없다. 비즈니스 중심지나 금융 센터는 물류 기능과 생산 기능에서 파급되는 것이고, 그것을 독립적으로 만들어 내기에는 우리의 조건이 너무나 열악하기 때문이다.

 


03 개발 계획

 

  동아시아 국가들은 물류 및 비즈니스 중심지를 개발하기 위해 일찍부터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 왔다. 다음 장에서 보다 상세히 설명하겠지만 여기에서는 경쟁국들의 주요 개발 계획만을 열거하고자 한다.

  싱가포르는 1998년 'Industry 21'계획의 일부로서 물류산업발전계획(LEAP : Logistics Enhancement and Application Progra mme)을 추진해 왔다.

  대만은 아태지역 비즈니스 중심지(APROC : Asia-Pacific Reg ional Operations Center) 계획을 추진해 오다가 2000년에 세계물류중심지 발전계획(Global Logistics Development Plan)으로 전환하여 규제 완화를 통한 물류, 통신, 반도체 등 첨단 산업, 금융 등의 동북아 중심지 개발을 추진 중에 있다.

  일본은 2001년에 '신 종합물류시책대강'을 발표하고 물류 산업의 발전을 꾀하고 있으며, 물류 기본법의 제정을 논의하고 있다.

  중국은 2001년에 '물류현대화 발전계획'을 마련하여 물류 부문의 현대화를 시도하고 있으며, 경제특구 등을 중심으로 외국인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여 동북아 물류 및 비즈니스 중심지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민간 수요는 거의 모든 품목에 걸쳐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는 반면, 물품을 시장으로 운송해 주는 물류 시스템은 여전히 낙후되어 있고 IT 기술을 활용하는 EDI(Electronic Data Interchange : 전자문서교환) 시스템도 미약한 편이다.

  


5. 외국의 성공 사례와 우리의 현실


 

  앞장에서 주변 국가들의 동향을 살펴보았다. 이제 우리는 물류 중심지 개발에 성공한 나라들이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좀더 상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특히 자세히 살펴보아야 할 것은 각 나라의 (1) 역사적 배경과 정치적 리더십, (2) 지리적 조건, (3) 시설의 개요와 운영 주체, (4) 물류 센터 개발을 위한 정부 시책, (5) 노사 관계, (6) 정부와 민간의 협력 관계 등이다.

 


01 네덜란드

 

  | 역사적 배경과 리더십{註 : 이 글은 유럽에 다녀온 제2차 조사단 이종찬, 고병우 씨의 보고에 따라 기술한 것이다.}

  네덜란드는 면적 약 4만km², 인구 약 1,600만 명의 작은 나라이다. 국토의 4분의 1이 바다보다 낮은 간척지로 되어 있고 이 간척지를 폴더(Polder)라 한다. 따라서 침수를 막기 위해 제방을 쌓아야 했고 제방이 터지면 간척지가 바닷물에 잠겨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된다. 실제 1953년 남쪽 지방의 제방이 터져 2,000명 이상이 희생된 일이 있었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옛날부터 바다와 싸워야 했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온 국민이 힘을 합쳐야 했다. 나라가 어려울 때 양보하고 단결하는 네덜란드 사람들의 국민성이 여기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국민성은 네덜란드 역사에 잘 나타나 있다. 네덜란드는 해양국가로서 16세기에는 동인도회사(The United East Indian Company)를 설립하여 아시아 국가들(실론, 말라카, 인도네시아, 일본, 한국)과 교역을 했고 17세기부터 300년 넘게 인도네시아를 식민지로 지배하기도 했다. 오늘날의 미국 뉴욕도 원래는 네덜란드 땅이었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 국운이 기울고 20세기 초엽까지 산업화가 늦어졌다. 그에 더하여 제2차 대전시에는 전쟁에 참가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치 독일의 강점으로 국토는 폐허가 되어 버렸다.

  전후에 네덜란드 사람들은 그 특유의 국민성을 발휘하였다. 그들은 광범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여 노조는 스스로 임금을 삭감하고, 노조, 기업, 정부가 일체가 되어 국가를 재건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네덜란드는 가장 빨리 전재를 복구하였고 1970년대까지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룩했다. 그에 더해 광대한 가스 유전이 발견되어 네덜란드는 하루 아침에 벼락부자가 됐다. 그러나 벼락부자가 되면 살림살이가 방만해지는 것이 보통이다. 네덜란드도 예외는 아니었다.

  유전 개발에 고무된 정부는 유럽에서 가장 선진적인 복지 제도를 만들기 위해 재정 지출을 확대했다. 복지 관계 예산이 GDP의 20%(1982년)에 이르고 1983년까지의 재정 적자 누계가 GDP의 58%를 기록했다. 한편 1950~1975년 사이 로테르담 항구를 유럽 화물(광석, 석탄, 석유) 환적 기지로 만들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투자했다. 그러나 1973년 국제 석유파동이 일어나자, 산유국임에도 불구하고 세계적 불경기의 여파로 인해 로테르담의 물동량은 줄어들었고 화물 처리량은 절대적으로 감소하였다. 불경기가 계속되고 1981년부터 1983년 간 무려 30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소득이 줄자 임금 상승 압력은 더욱 강해졌고 근로자들은 열심히 일하기보다는 정부의 복지 지출 증가를 요구했다. 1981~1982년에는 연속 마이너스 성장과 함께 실업률 12%, 물가 상승률 6.2%를 기록했다. 마침내 네덜란드는 '일하지 않는 복지국가(Welfare Without Work)' 또는 '더치 병(Dutch Disease)'의 나라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네덜란드 사람들은 위기에 처하자 본래의 국민성을 발휘하였다. 과거를 돌이켜 보고 국민 각자가 고통을 분담하고 힘을 합쳐 생존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인식이 높아져 갔다. 당시 EC(European Community : 유럽공동체)는 경제적 통합을 추진하고 있었고, 세계화 추세에 따라 다국적 기업들은 경영 자원을 세계적으로 배치하는 경영 전략을 전개하고 있었으며, 교통기술 발달에 따라 컨테이너 수송과 항공 수송이 새로운 운송 시대를 예고하고 있었다. 네덜란드의 지도자들은 이러한 정세 변화에 대응하여 자국을 물류 중심 국가로 만드는 것만이 살 길이라 생각하였다. 그리고 이 목적을 위하여 국민들의 협조와 단합을 이끌어 냈다. 흔히 이 과정을 폴더 모델(Polder Model)이라고 한다.

  1982년 중도 우파의 루드 루버스(Ruud Lubbers)가 집권하자 먼저 예산 동결 조치를 단행했다. 물론 노조는 반대했고 노사 분규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해결책을 찾기 위해 기업계 대표와 노조 대표가 서로 만났다. 당시 네덜란드 산업 고용주 연합회(Netherlands Industry and Employers Association) 회장 찰스 반 빈(Charles van Veen)은 헤이그 근처 바세나르라는 곳에 살고 있었는데, 그는 자택으로 노조 총연맹 대표인 빔 코크(Wim Kok)를 초청하여 협의를 시작했다. 장시간 난상토론 끝에 그들은 마침내 합의점에 도달했다.

  합의 내용의 골자는, 노조는 임금을 삭감하고 기업은 노동 시간을 주 40시간에서 38시간으로(그 후 다시 36시간으로) 줄이는 대신 더 많은 사람을 고용하며(work sharing), 정부는 세금을 대폭 내려서 국민의 부담을 줄이고 정부 지출을 삭감한다는 것이었다. 이 협약이 알려지자 정부는 즉각 동의를 표시했다. 이것이 폴더 모델의 기초가 되는 유명한 바세나르 협약(Wassenaar Pact)이다.

  폴더 모델은 노조, 기업, 정부 사이의 토론과 의견 조정을 통해 합의점을 도출하는 메커니즘이다. 공식적으로는 사회경제회의(Social and Economic Council, 약칭 네덜란드 말로 SER)라고 하는 것인데 1년에 봄 가을로 2회 개최된다. 기업 대표, 노조 대표 그리고 정부가 지명한 대표 각각 11명씩, 합계 33명이 참석한다. 수상실 대회의실에서 수상 비서실장이 안건을 보고하고 수상이 회의를 주재하며 서로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장시간 대화하여 합의를 도출한다. 정부에 대한 하나의 자문 기구에 불과하지만 합의된 사항은 그대로 시행되는 것이 관례이다. 최고 책임자의 지시나 독단으로 처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끝까지 민주주의 방식으로 합의를 이끌어 낸다.

  우리 조사단이 만나 본 두르스먼(Steven Duursman) 사무차장의 말에 의하면 네덜란드에서 폴더 모델이 성공할 수 있었던 원인은 첫째로 중도 노선을 견지할 수 있는 연립 내각 체제가 지속되고, 둘째로 종교가 국민을 하나로 묶는 데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근저에는 화합하지 못하면 둑이 터져 모두 죽게 된다는 폴더 의식이 깔려 있다.

  앞에서 말한 루버스 총리는 1994년까지 12년 동안 집권했는데, 폴더 모델을 일관적으로 추진하여 '더치 병'을 치유하는 동시에 로테르담항을 유럽 최대의 항만으로 만들고 해운, 항공, 육운과의 복합 운송 체제를 확립하여 유럽 제1위의 물류 중심지를 만드는 데에 진력했다.

  루버스의 뒤를 이어 총리에 오른 사람은 다름 아닌 바세나르 협약을 이끌어 낸 당시의 노조 연맹 대표 빔 코크였다. 그는 그 후 재무부 장관을 거쳐 노동당의 당수가 되어 1994년 총선에서 승리했던 것이다.

  그는 영국의 토니 블레어 수상과 같이 '제3의 길'을 택했고, 루버스 전 정권의 중도 우파 정책을 그대로 계승하여 노조의 희망과는 반대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했다. 루버스 정권은 임금 인상률을 4.6%에서 2.2%로 낮추었는데, 빔 코크 정부는 이를 1.1%로 억제했다가 총체적 협상안에서는 이를 다시 0.5%로 낮추었다. 그는 정부 지출을 억제하고 세율을 낮추고 규제를 완화하고 사회 복지 제도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을 단행하여 정부 의존율을 줄이는 대신 일자리를 만들어 근로자들을 다시 생산라인으로 복귀시켰다.
  이러한 개혁의 결과 1997부터 2000년까지 매년 평균 약 4%의 높은 경제 성장을 유지했고 실업률은 2000년에 2.6%대로 하락했다. 그리고 세계에서 제일가는 물류 중심 국가를 만들었다. 네덜란드는 한때 '더치 병'의 나라라는 오명에 시달렸으나 1994년 이후 빔 코크 치하에서는 '더치의 기적(Dutch Miracle)'이라는 찬사를 받게 되었다.

 

  | 지리적 조건

  스키폴 공항과 로테르담 항만은 유럽 물류의 관문이다. 로테르담은 유럽 최대의 내륙수로인 라인(Rhine) 강과 마스(Mass) 강 하구가 형성하는 삼각주에 위치하고 있고, 수심이 16~23m에 이른다.

  로테르담은 도로, 철도, 운하 등을 통하여 유럽 각지의 항구, 주요 도시와 거미줄같이 연계되어 있을 뿐더러 간만의 차이가 없고 교량과 운하 갑문을 거치지 않고 북해 해안 지대와 유럽 중심부로 항해할 수 있는 천연 조건을 갖추고 있다. 네덜란드는 자체적으로 5,200km에 달하는 내륙 수로를 건설 중인데, 그것이 완공되면 발칸 국가들까지도 연계가 가능하다고 한다.

 

  | 시설과 운영 주체

  로테르담 항구는 13개의 컨테이너 터미널을 운영하고 있으며 13개의 선석을 보유하고 있다. 연간 3억 2,200만 톤의 화물을 처리하며 이 항구만으로 네덜란드 GDP의 10%를 창출한다고 한다. 우리 나라 부산 다음가는 세계 제5위 컨테이너 항구인데 놀랍게도 민간 회사인 ECT(Europe Combined Terminals)가 항만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를 안내한 사람은 이 항만을 Main Port에서 Brain Port로 만들고 있다고 하였는데, 컨테이너 야드의 관리탑에 올라가 보니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내려다보이는 광장에는 수많은 컨테이너가 산처럼 쌓였는데 사람은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총 인원 33명이 3교대로 근무하는 관리탑에서 모든 작업을 컴퓨터로 원격 조정하는 것이었다. 즉, 컨테이너를 선박에서 들어 내려서 지상에 깔린 레일로 지정된 곳에 운반하고, 다시 운반 차량에 싣는 일을 모두 리모컨으로 처리하고 있었다. 이 시스템은 AGV (Automated Guided Vehicle)라고 불린다.

  항만정보 시스템(INTIS)을 통하여 세관, 기업, 공공기관이 컴퓨터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고 터미널의 모든 정보는 EDI 시스템을 통해 순간적으로 교환된다.

  로테르담 항만 주변에는 물류 창고 시설을 비롯하여 물류 기지(Distirpark), 물류 산업 기지(Industripark), 물류 업무 기지(Businesspark)가 형성되어 물류 산업을 지원하고 있다.

  암스테르담에 위치한 스키폴 공항은 2000년 현재 세계 제4위의 대공항으로 38개국의 218개 도시와 연결되어 3,960만 명의 인원과 120만 톤의 물자를 운송하고 있다. 이 공항은 유럽에서 가장 훌륭한 공항으로 알려져 있는데, 공항 운영자는 '최대의 공항'이 아니라 '최고의 공항'을 지향한다고 밝혔다. 공항 주변에는 Eurotrade Park가 있고 대규모 국제 유통 센터가 자리하고 있어 물류 산업을 지원하고 있다.

  스키폴 공항은 관민 합작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National Investment Bank가 주식의 50%를 가지고 있고 나머지 50%는 암스테르담 시 정부, 중앙 정부 경제부 및 지방 정부에 배분되어 있다. 그러나 2002년에는 완전 민영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추진 기구

  우리 나라의 KOTRA(대한무역진흥공사)와 같은 NFIA(Net her-lands Foreign Investment Agency : 네덜란드 투자진흥청)가 있어서 외국 기업 유치를 위한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고 외국 기업들에게 원스톱(one-stop) 서비스를 제공한다. 물류 인프라의 건설과 단지 계획, 그리고 물류에 관한 모든 정책은 중앙 정부 및 지방 정부와 기업 간의 긴밀한 협조 아래 이루어지고 있다. SADC (Schiphol Area Development Company)는 1987년에 정부와 민간의 합작 회사로 설립되었는데, 비즈니스 파크를 운영하고, 단지 내 도로건설, 조경 사업의 설계와 관리를 담당하며, 국제 유통 센터에 외국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해외 각국(한국 포함)에 지부를 설치, 운영하고 있다.

  물류 센터를 지원하는 민간 기구로 HIDC(Holland Interna tional Distribution Council)가 있다. 이 기구도 650개 민간 기업과 함께 정부의 출연으로 설립되었는데, 관계 부처가 주주로 되어 있다. 불과 20명 내외의 인력으로 방대한 업무를 처리하는데, 그 비밀은 외국 기업이 찾아오면 그들의 문의와 요구를 들은 다음 즉각적으로 전문 회사(회원사)와 연결시켜 주는 데에 있다. 관민이 일체가 되어 전문적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투자에 관심 있는 외국 기업들은 제일 먼저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 정부 정책

  네덜란드는 유럽에서 가장 기업하기 편리한 나라로 평가되고 있다. 과감한 대외 개방 정책을 추진한 결과, 전국이 자유경제지대로 경제특구가 따로 없다. 네덜란드에는 외국인이기 때문에 정부의 허가를 별도로 받아야 할 업종이 거의 없다. 정부 차원의 내국인과 외국인의 차별도 없고 법적 지위도 동등하다. 모든 투자에 대해 법적 제한이 없으므로 외국인 투자를 허가하거나 감독하는 기관도 없다. 외환 거래는 완전히 자유롭고 우리 나라의 외환관리법 같은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농수산물 등 일부를 제외하고 수입 역시 완전히 개방되어 있다.

  외국 기업에 대한 세금은 'world wide tax'라 하여 자국에서 내던 세금과 같거나 보다 유리하다. 이익 배당에는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다. 외국 기업들의 조세에 관한 정보 센터를 운영하고 있고 과세 방법은 철저하게 투명하다. 조세 정책은 EU(Euro-pean Union : 유럽연합)의 규정을 따르는데, 관계 당국은 비즈니스 센터에 입주한 기업들에게 여러 가지 편법으로 최대한의 혜택을 주려고 노력한다.

  일례를 들면, 감가상각을 최대한으로 인정하고 각종 세액 공제 제도를 활용하며 납세 기간을 여러 방법으로 최대한 연장해 준다고 한다. 한국타이어 현지 회사의 말에 의하면 관세를 징수할 때는 등록 기간 1개월, 관세 당국의 검토 기간 1개월, 납세 기한 1개월을 합해서 3개월의 납세 유예 기간을 허여(許與)한다고 한다. 화물이 항구에 입항할 때는 관세가 없고 최종 구매자에게 화물이 전달되는 시점에서 관세가 부과된다. 공유 용지는 25년 기한으로 임대를 하고 임대료 역시 비싸지 않다고 한다.

  특기할 것은 정부가 외국어 교육에 역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전체 인구의 73%가 1개 이상, 44%가 2개 이상의 외국어를 구사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대학과 기타 교육기관이 물류 전문가를 양성하고 있음도 주목할 점이다.

 

  | 노사 관계

  네덜란드의 노사 관계가 폴더 모델에 바탕을 두고 있음은 앞에서 본 바와 같다. 전 산업의 노동조합 가입률은 약 30%인데, 운수 산업의 가입률은 약 78%에 이른다. 그러나 지난 7년 동안 노사 분규로 일을 못한 손실 일수는 2일에 불과하다. 다만 LG전자 현지 사장의 말에 의하면 결근자가 많기 때문에 약 10% 정도의 예비 인력을 보유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네덜란드의 노조는 산업 단위의 산별 노조와 Council 형태의 전국 연합이 있다. 그러나 회사별 노조(company union)는 1945년 이후 사라졌다.

  우리 조사단이 만나 본 네덜란드 최대 노조인 FNV(Federa tie Nederlandse Vakbeweging)의 현직 위원장인 더 발(de Waal) 씨의 말에 의하면 네덜란드에는 개별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노동법이 있지만 단체 행동을 규정하는 노동조합법(Union law)은 없다고 한다.

  기업은 개별 노동자와 임금 협상을 하지만 회사별 노조가 없기 때문에 노조와는 협상을 하지 않는다. 대신 산별 노조는 기업 단체 대표와 협상하여 임금 인상 수준을 결정하고 개별 회사는 그 결정을 따라야 한다. 다만 산별 노조가 협상에 서명한 임금 인상 수준은 최소한의 인상폭(minimum level)이며 개별 회사는 영업 실적에 따라 그 이상의 임금을 줄 수도 있다. 네덜란드의 노조원 수는 계속 감소하는 추세에 있는데, 외국 투자 기업에는 노조원이 없으며 있어도 특별한 역할을 할 수 없다고 한다.

 

  | 물류 산업의 성과

  정부와 민간 기업의 적극적인 협력과 노력의 결과 네덜란드는 명실상부한 '유럽의 관문(Gateway to Europe)'이 되고 있다. 현재 네덜란드는 유럽 수입 물량의 30%, 수출 물량의 65%를 처리한다. 또 다국적 기업이 유럽에 설치한 유통 센터 중 대략 그 반을 유치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미국 기업이 유럽에 설치한 유통 센터 611개 중 344개, 아시아 기업의 경우 344개 중 193개가 네덜란드에 위치하고 있다. 네덜란드가 1인당 GDP 2만 5,169달러의 부유한 나라가 된 이면에는 수출 2,000억 달러, 수입 1,920억 달러(2000년)를 헤아리는 무역과 물류 산업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물류 산업이 창출하는 직접적인 부가가치가 GDP의 약 16%라 하지만 그 막대한 간접 효과는 추정하기 어렵다. 로테르담 항만 당국 자료에 의하면 로테르담 항의 하역이 직접적으로 창출하는 고용이 6만 1,000명인데 비해 간접적으로 창출하는 고용은 25만 2,000명에 달한다.

 

  | 성공 요인

  네덜란드의 물류학자 루이지그로크(Ruijgrok)는 네덜란드가 EDC(European Distribution Center : 유럽유통센터) 유치에 성공한 이유로 네 가지를 꼽는다.

  한편 NFIA의 서울사무소장 라머스(Lamers) 씨는 자신의 논문에서 네덜란드의 물류 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요인으로 일곱 가지를 들고 있다.

  1. 유리한 지리적 조건
  2. 훌륭한 물적 시설
  3. 물류 서비스 체제의 완비
  4. 세관의 친 기업적 태도
  5. 노사 관계의 신축성
  6. 외국어 구사 능력
  7. 상대적으로 저렴한 투자 및 운영 비용

  그러나 우리 조사단은 몇 가지를 더 추가했다.

  1. NFIA와 HIDC의 효과적 투자 유치 활동
  2. 친 기업적 행정과 투명하고 낮은 세금
  3. 폴더 모델에 의한 사회적 연대
  4. 정치 지도자와 노동 지도자의 높은 경륜과 지도력
  5. 정부의 생존 전략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와 협조

  우리 조사단이 특히 감명받은 것은 지도자의 역할이었다. 기업, 노조, 정부 지도자가 대화를 통해 국가 전략에 합의한다는 것은 보통의 일이 아니다. 그리고 정치 지도자가 반대당의 정책을 계승하여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한다는 것 역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으로 인상 깊었다. 고병우 조사위원은 다음과 같은 말로 보고서를 맺었다. "네덜란드가 만든 폴더 모델처럼 우리도 정부와 기업과 노조가 서로 솔직하게 자기 입장을 설명하고 나라의 둑이 무너지지 않도록 협력하는 한국적 모델을 만들어 내야 한다. 월드컵 때 붉은 악마 응원단의 단합된 함성을 듣고 필자는 우리도 지도자의 옳은 정책, 옳은 자세, 애국적 호소가 있으면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02 아일랜드

 

  | 역사적 배경

  영국 서북부, 유럽 서단(西端)에 있는 섬나라 아일랜드는 면적 7만 km²(한국의 70% 정도), 인구 380만 명의 작은 나라이다. 영어로 Irish라 하면 누구나 빈곤과 이민과 가톨릭을 연상한다. 그 옛날 천연 자원이 없고 박토(薄土)를 갈아 보리와 감자로 끼니를 이어 가던 아일랜드 사람들은 굶주림을 참다 못해 외국으로 흩어져 갔다. 1845년부터 1855년까지 10년 동안 아일랜드를 등지고 미국, 영국, 호주로 이민을 간 사람들의 수는 무려 250만 명에 달한다. 1922년 영국의 지배로부터 독립하였으나 독립 투쟁의 여파와 좌우 대립으로 나라는 혼란에 빠졌고 그 후 10년 동안 빈곤의 악순환이 계속되어 1950년대 말까지 또다시 약 100만 명이 외국으로 빠져 나갔다.

  아일랜드는 인구의 90%가 가톨릭 신자로 매우 보수적인 나라이다. 임신 중절이나 이혼 같은 것은 말조차 꺼낼 수 없는 금기였고 1997년에 와서야 비로소 법적으로 이혼이 허용됐다.

  이러한 진보적 변화를 가져온 데에는 전 대통령 매리 로빈슨(Mary Robinson) 여사의 지도력이 큰 몫을 했다. 그녀는 아일랜드 최초의 여자 대통령으로 당선되기까지 나라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며 국민들과 대화를 나누고 변화의 필요성을 설득했다. 그녀의 도덕 관념과 높은 윤리 수준 때문에 설득이 먹혀들었다는 이야기다. 그녀가 대통령으로 성공한 덕택으로 후속 대통령 후보자 네 사람이 모두 여성이었고 현재(1997년 11월부터)의 대통령 매리 매컬리스(Mary Mcaleese)도 여성이다.

  1932년 총리가 된 더 발레라(de Valera)가 16년 간의 장기 집권으로 국가 혼란을 수습하고 제2차 세계 대전 때에는 중립국을 선포하여 전쟁을 회피함으로써 국부(Father of the nation)로 추앙받았다. 하지만 그의 경제 정책은 독립 운동의 영향을 받아 국내 산업 보호와 수입 대체 산업 육성을 강조하는 것이었고, 그 결과 종전 후 경제 부흥과 개발에 매진한 서방 각국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958년에 새로운 전기가 찾아왔다. 재경부의 사무차관이었던 위타커(T. K. Whitaker)가 250쪽에 달하는 장문의 아일랜드 경제 발전 구상을 발표했던 것이다. 그는 자유 무역과 문호 개방이 아니고서는 아일랜드가 살 길이 없음을 역설했다. 당시 진보당 총리인 코스텔러(Costelloe)는 그의 주장을 받아들여 경제 개혁의 시동을 걸려 했으나, 바로 다음 해 선거에서 패하고 물러났다. 다행히 새로 집권한 보수당의 션 레마스(Sean Lemass)는 위타커를 기용하고 진보당이 시작한 국가 발전 전략을 그대로 계승했다. 션 레마스와 위타커는 먼저 외국의 투자를 끌어들이기 위하여 외국인 투자 전담 기구인 IDA(Industrial Development Authority : 아일랜드 산업개발청)를 설립했고 이때부터 아일랜드는 경제 발전의 새로운 행보를 시작했다.

  1973년 EC 가입 후 석유파동으로 아일랜드 경제는 또다시 어려워지고 따라서 정치도 혼란에 빠지게 된다. 정권이 일곱 번이나 바뀌는 사이 물가는 오르고 실업은 늘어났으며 재정 적자가 누증했다. 하지만 다행히 또 하나의 전기가 마련되었다. 1987년 찰스 호치(Charles Hochey)가 집권하면서 사회적 연대(Social Partnership)를 제창하여, 농민, 기업, 노조, 정부 간의 화합과 협력을 이끌어 냈던 것이다. 즉, 사회의 구성원들이 서로 자제하고 협조할 것을 요청하는 동시에 정부가 솔선수범하여 대대적인 지출 억제책을 시행하여 재정 적자를 감축해 나갔다.

 

  | 지리적 조건

  유럽 서단에 위치하고 공항과 항구의 규모가 작은 아일랜드가 물류 중심지가 될 수는 없다. 아일랜드는 세계 도처에서 IT 산업과 제약 등의 첨단 산업을 유치하고 그를 통하여 그야말로 비즈니스 중심 국가가 된 것이다.

 

  | 추진 기구

  아일랜드의 중심적인 투자 유치 기관은 IDA인데, 이 기관은 1958년 창설 이후 수차의 개편을 거쳐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IDA는 모든 투자 유치와 산업 정책의 책임을 지는 강력한 기관이다. IDA는 (1) 산업 정책 입안, (2) 투자 유치, (3) 투자 조건 협상, (4) 인센티브 지원 수준 결정, (5) 산업 공단의 개발과 운영, (6) 투자 업체의 사후 관리에 관한 모든 업무를 관장하는 동시에 예산과 인사 운영에서는 고도의 자율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 조사단이 아일랜드에 진출한 한국 기업인 새한미디어의 사장으로부터 들은 바에 따르면 계약 단계부터 공장이 완전 가동될 때까지 IDA의 담당관(Project Office)이 마치 자기 사업처럼 뛰어다녔다고 한다. 또 공장을 세우는 데도 상당한 자금 지원을 받아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IDA는 외자가 들어올 때만 친절한 것이 아니라 사후 관리도 철저히 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래서인지 새한미디어의 이창희 회장이 작고했을 때 IDA 대표가 직접 서울까지 와서 문상을 했다고 한다.

 

  | 주요 정책

  앞서 말한 션 레마스는 8년 간 집권했는데, 이때에 개방 정책의 근간이 대부분 이루어졌다. 1961년에 EEC(European Economic Community : 유럽경제공동체)에 가입하였고 1973년에는 EU에 제일 먼저 가입하였다.

  또한 국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식민지 종주국이었던 영국과 화해하고 1965년에 영국-아일랜드 자유무역협정(Anglo -Irish Free Trade Area Agreement)을 체결했다.

  그 후 역대 정권이 채택한 투자 유치 정책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포함된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으로 재정 적자가 누적되고 1980년대 중반에는 국가 채무가 GDP의 130%를 기록하였다. 특히 1973년과 1979년의 석유파동 때에는 인플레, 실업 증가(18%), 성장 둔화 등의 고난을 겪기도 했다.

 

  | 노사 관계

  아일랜드에도 노사 갈등이 심했던 때가 있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중반까지 금융기관, 철도, 항만, 교원 노조 등이 거센 투쟁을 일삼았다. 그러나 1985~1986년경 경제가 극도로 어려워지자 '사회적 연대'가 이루어졌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아일랜드의 정치가 언제나 중도 좌파, 또는 우파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반복되는 연립 내각 하에서 협의와 타협을 체질화했기 때문이다.

   사회적 연대 계약을 이루는 데에는 노조 대표인 피터 카셀(Peter Cassells)이 주도적 역할을 했다. 그는 빈농의 아들로서 고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했다. 학교 졸업 후 사회보장부에 취직하여 1973년 공무원 노조에 가입했다. 그리고 노조 활동을 하면서 야간에 대학을 다녔다. 그는 공무원 노조에서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일꾼으로 활약하다가 드디어 ICTU(Ireland Congress of Trade Union : 아일랜드 노조총연맹)의 사무총장이 되었고 지금은 노조위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우리 조사단은 카셀 씨에게 많은 질문을 했다. 이종찬 위원의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대화록이 실려 있다.

 - 이 : 왜 노조 운동에 투신하였습니까?

 - 카셀 : 나는 야간에 대학에서 공부를 하면서 점차 경제 발전과 사회 발전이 서로 융합되어야 한다고 굳게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독일식 사회주의 시장 경제에 대하여 심취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투자가 아일랜드 경제의 근간이 되고 있는 특수한 사정을 보면서 시장의 다이내믹에서 나오는 이득을 모두가 나누어야 하는 측면에 대하여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미국의 시장 경제의 효율성과 유럽의 사회적 가치가 공존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의 현 위치는 보스턴과 베를린의 중간쯤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의 총리인 버티 아헌(Bertie Ahern)이 당시 노동부 장관이었고 그 역시 빈농 출신으로 신뢰가 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협의가 잘된 측면도 있다고 카셀 씨는 귀띔했다.

  1987년에 형성된 '사회적 연대'는 정부, 기업, 노조, 농민 등 각계 대표로 구성되어 있고, 3~4년에 한 번씩 대토론회를 개최하여 조세, 임금, 실업 대책, 농업 대책 등 주요 문제를 토의한다. 각 파트너의 의견을 수렴한 다음 각 부문의 소득 정책과 근로 조건에 관해 합의를 도출하고 그에 서명을 하게 된다. 서명한 합의서에 따라 기업은 임금과 근로 조건을 제시하고 노조는 노사간 협의 절차에 동의하고 정부는 이를 지원하기 위한 정책을 입안한다. 3개월 간 공개적으로 토론하고 최후에는 투표로 결정하는데,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합의된 사항은 그대로 이행된다고 한다.

  현재 FDI(Foreign Direct Investment : 외국인직접투자)의 임금 수준, 공공 부문의 임금 인상 요인 등 어려운 문제들이 있기는 하나 경쟁국보다 임금을 더 올리지 말아야 하고, 과거의 어려움을 잊지 말아야 하며 어떤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고 한다.

  1987년 경제가 위기에 직면했을 때 사회적 연대의 덕택으로 노조에서는 임금을 깎고 그 후 매년 4.5% 이내에서 그 해의 여건에 따라 임금을 조정하고, 기업은 노동 시간을 주 40시간에서 38시간으로 단축(현재는 36시간)하는 동시에, 정부는 기업과 노동자 소득에 대한 세율을 낮추기로 3자가 합의하였다. 그러나 기업이 많아지고 고용이 증가함에 따라 세수도 증가하고, 기업은 파업이 없고 임금 상승률이 낮아 활기를 띠게 되고, 노조는 고용이 증가하고 소득이 늘어나서, 그야말로 WIN-WIN의 협력 관계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2003년부터 시작되는 연대 협약에서는 주로 생산성 향상, 지식 기반 사회 건설, 그리고 복지 향상에 주력하겠다고 집권 공화당이 공약하고 있다.

 

  | 주요 성과

  아일랜드 경제는 1990년대 후반에 이르러 급속히 발전하였다. 최근 5년 간 8~10% 성장률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성장을 기록했다. 또한 2001년의 개인당 국민소득은 2만 5,343달러로 영국의 2만 3,792달러보다 높다. 가장 가난한 나라였던 아일랜드가 이제 중ㆍ상위권 부유국 반열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1993년에는 실업률이 무려 15.5%였으나 2001년 말에는 4.9%로 떨어졌고, 1993년 한 해 동안 5,000명의 노동력이 해외로 유출되었으나 1998년에는 오히려 2만 2,800명이 유입되었다. 물가는 연간 상승률 3% 이내에서 안정되었고, 인구가 적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수출 756억 달러, 수입 495억 달러를 달성하여 261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또한 세계적인 IT 업체가 모두 아일랜드에 투자했으며 미국 IT분야의 대유럽 투자의 43%가 아일랜드에 몰려 있다. 유명한 다국적 기업들이 포진해 있는데, IBM, 애플, 델(Dell) 등 하드웨어 컴퓨터 회사는 물론,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 시만텍, 넷스케이프 등 소프트웨어 업체들도 들어와 있다. 반도체 회사인 NEC, 인텔 등이 자리잡고 있고 제약 회사로는 파이자(Pfizer)를 필두로 여러 회사가 있다. 이러한 외국 기업의 총수는 약 1,200여 개에 이른다.

 

  | 성공 요인

  이상의 관찰에서 아일랜드가 투자 유치에 성공한 요인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1. 산업 보호주의에서 개방주의로 정책을 전환했다.
  2. 사회 간접 시설에 과감한 투자를 했다.
  3. 강력한 기구 IDA가 과감하고 능률적인 외국 투자 유치 정책을 시행해 왔다.
  4. 교육을 무료화하고 산업과 기술 개발에 연계시켰다.
  5. '사회적 연대'를 창출하고 그를 통하여 산업 평화와 사회적 안정을 실현했다.
  6. 중도 좌파와 중도 우파 사이의 세력 균형이 존재하는 가운데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했다.
  7. 국가 경제 전략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가 두터웠다.

  이종찬 위원은 다음과 같은 말로 보고서를 맺었다. "노조를 국가 발전에 파트너로 삼고 함께 국가 발전 전략을 추진해 나가지 못하고 포퓰리즘(Populism)에 빠진다면 이는 나라도 망치고 노조 운동도 망치는 결과가 된다는 것이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배운 중요한 교훈이었다."

 


03 싱가포르

   

| 역사적 배경

  싱가포르는 서울특별시 정도의 국토 면적( 660km²)에 인구 약 402만 명의 아주 작은 도시 국가이다. 1965년 독립 당시 인구는 190만이었고 실업률은 10%를 넘었다. 중계 무역과 영국군 기지에 물품과 서비스를 납품하여 연명하는 상태에서 제조업 기반이 없고 기술과 자본이 부족하여 자생적 성장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리콴유(李光耀) 수상이 이끄는 정부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싱가포르의 지정학적 위치를 이용하여 다국적 기업 및 외국 투자 유치를 위한 국제화 정책을 과감히 추진하였다.

  현재 싱가포르는 협소한 국토, 빈약한 자원, 적은 인구 등 도시 국가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1인당 GDP 2만 4,000달러 이상, 무역 규모 2,700억 달러 이상, 수출 1,300억 달러 이상을 자랑하는 선진국이 되었다. 무역이 GDP의 3배에 달하고 수입은 4개 품목(자동차, 주류, 유류, 담배)을 제외하고는 무관세이며 완전 개방되어 있다. 또 외국인 투자가 총 국내 투자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 지리적 조건

  이 부강의 원천이 지정학적 위치를 최대한 활용한 물류 산업에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싱가포르는 아시아와 중동, 대양주, 아프리카, 유럽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에 위치하여 전통적으로 자유무역항으로 발전해 왔다. 따라서 항구와 공항이 생명선이 될 수밖에 없었다. 리콴유 수상은 31년 간의 장기 집권을 통해 싱가포르를 완전히 개방된 아시아의 물류-비즈니스 중심지로 만들기 위해 만반의 시설과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고 그것을 운영할 수 있는 관리 능력을 길러 냈다.

 

  | 시설과 운영 주체

  싱가포르항은 연간 3억 2,600만 톤(1999년)의 화물을 처리하고 있고 컨테이너 화물 처리량은 1,700만 톤으로 세계 제1위를 차지하고 있다. GDP 900억 달러의 왜소 국가가 37선석(부산은 21선석)의 컨테이너 터미널을 자랑하는 항구를 건설하였고, 지체 없이 새로운 기술과 기법을 도입하여 항구의 하역 능력을 최고 수준으로 유지해 왔다.

  예컨대 파시르 판중(Passir Panjung) 컨테이너 터미널의 경우를 보면 컨테이너 처리를 완전 자동화하여 크레인 기사가 사무실에서 리모컨으로 6개의 크레인을 동시에 조작하는 모습이 로테르담의 Brain Port를 연상케 한다. 현재 컨테이너 화물의 비중이 커지는 추세를 감안하여 2020년까지 총 3,600만TEU의 컨테이너를 처리할 수 있는 하역장 49개를 파시르 판중 지역에 건설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정부 기관인 MPA(Maritime and Port Authority : 해운항만청)가 항만에 관한 모든 업무를 관장하고 있다.

  창이(Changi) 국제공항은 여객 2,380만 명, 화물 133만 톤(1998년)을 운송하고 있고 서비스면에서 세계 제1의 공항으로 평가된다. 이 공항에 취항하고 있는 항공사는 69개이며 세계 50여 개국 130여 개 도시와 연결되어 있다. 네덜란드의 경우와는 달리 정부 기관인 CAAS(Civil Aviation Authority of Singapore : 싱가포르 민간항공국)가 항공 관련 모든 업무를 장악하고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항만을 중심으로 공항, 물류 단지 등을 배치하여 각 시설의 기능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하고 7개의 자유무역 지역을 배치하여 항만과 공항과의 연계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정보화 시대에 대응하여 1991년에는 EDI 시스템 사용을 의무화하고 TradeNet(무역망) PortNet(항만망) 등을 설치하여 무역 관련 서류 및 통관 절차를 전산화했다. 그 결과 항공 화물 통관 시간이 2~3일에서 15분으로 단축되었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필자는 싱가포르의 이러한 전산화에 자극을 받아 1993년부터 무역협회 주관으로 KTNet를 개발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를 위해 직원을 싱가포르에 파견한 일이 있다. KTNet는 주로 통관, 금융 업무를 전산화한 것인데, 그 결과 복잡한 관세 환급 절차가 자동화되고 통관과 무역 금융 절차가 간소화되어 무역 업계에 막대한 비용과 시간의 절감을 가져왔다.

  싱가포르는 1992년에 'IT 2000 프로젝트'를 실시하여 정보망의 기초 인프라를 구축하고 Intelligent Island를 만든다는 계획 아래 국가정보망을 구축하였다. 1996년에는 'Singapore One'이라는 기획으로 전국의 가정, 학교, 기업, 정부를 초고속 광대역 통신망으로 연결하였고, 2000년에는 'Infocomm 21'이라는 기획으로 도로, 해운, 항만, 공항 등 모든 물류 인프라의 정보화를 완성하였다.

  싱가포르에는 현재 6,000개 외국 기업들이 활동 중이고, 연간 총 투자의 70%가 외국인 투자이다. 싱가포르의 지리적 위치와 함께 정부가 아시아 최고 수준의 투자 여건을 조성하고 적극적으로 투자 유치 노력을 경주한 결과이다. 네덜란드와는 달리 이곳에서는 정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해 오고 있다.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싱가포르의 역사적 배경을 볼 때 당연한 일일 테지만 영어 공용화로 대다수 국민이 영어에 능통한데, 총 인구의 45%가 영어로 생활하고 90%가 영어 소통이 가능하다고 한다. 또 국민의 77%가 화교이므로 중국어와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것이 직업상의 필수 조건이 되고 있다고 한다.

 

  | 정부 시책

  싱가포르 정부는 1998년에 'Industry 21'이라는 국가 발전 전략을 수립하였다. 이 계획은 향후 10년 동안에 10개 분야 핵심 산업을 발전시킨다는 것인데, 이 중에 LEAP (Logistics Enhancement and Application Programme : 물류산업발전계획)가 포함되어 있다. 14개 정부기관 및 민간이 함께 참여하여 'Logistics Master Plan'을 작성하고 아래와 같은 6개의 핵심 전략 과제를 선정하였다.

  1. 통합되고 전 지구적으로 연결된 인프라 개발
  2. 정보기술(IT)에 기초한 물류 활동 및 경쟁력 있는 정보기술 능력 개발
  3. 통합 물류 활동 강화
  4. 국제 물류 중심지 및 서비스(logistic hub) 유치
  5. 세계적 수준의 물류 전문가 양성 및 기술 개발
  6. 국제 네트워크 확장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시장 접근성 향상

   LEAP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추진 기구

  위에서 본 LEAP를 추진하는 기구로는 두 기관을 들 수 있다. 그 하나는 EDB(Economic Development Board : 경제개발위원회)로 1961년에 설립되었으며 싱가포르의 비즈니스와 투자의 글로벌 허브(Hub)를 위한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한다. 기술 혁신과 인적 자원, 재정, 문화 자산의 개발을 증진시키기 위해 다른 기관과 밀접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TDB(Trade Development Board : 무역개발위원회)로 최근 국제 기업에 초점을 맞추어 조직 개편이 있었고 그 명칭이 IES(International Enterprise Singapore)로 변경될 예정이다. 주요 업무는 국내 기업의 국제화를 돕기 위해 시장 정보를 제공하고 타당성 조사 및 해외 파트너 검색을 도와주는 것이다. 생산성 및 표준위원회(Productivity and Standards Board)와 함께 중소 기업의 해외 확장을 지원하기도 한다.

  외국인 투자에 관련된 행정 기관으로는 EDB 산하의 경제개발청, TDB 산하의 무역개발청, 및 주롱도시개발공사 등이 있다. 경제개발청은 제조업 및 서비스 분야의 산업 발전을 기획 촉진하기 위한 기관으로, 현재 산업개발국 등 6개국 및 16개 해외사무소로 조직되어 있다. 또 무역개발청은 싱가포르의 국제 무역을 촉진하기 위하여 1983년에 설립되었고, 싱가포르 무역 제도의 관리 및 시행, 수출 촉진 및 신시장 개척, 무역 확대 등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주롱도시개발공사는 공업 단지의 개발 및 공급을 총괄하는 기관으로서 1968년에 설립되었고, 2001년 현재 공업 단지에 7,000여 업체가 입주해 있다. 싱가포르 내 35곳의 공업 지역을 관할하기도 한다.

 

  | 투자 유치 정책

  싱가포르는 홍콩이나 네덜란드와는 달리 정부가 주도하는 나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 원리가 존중되고 자유 무역과 외국 투자 유치를 국시로 하고 있다.

  외국 투자 유치를 위해서는 다양한 인센티브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복잡하고 신축적이다. 법인세율은 24. 5%이나 주요 산업에 대하여는 5~10년 간 면제된다. 그 밖에 10만 달러 이상의 신규 투자, 20만 달러 이상의 외국 차관, 생산액의 20% 이상의 수출, 자본액 50만 달러 이상의 외국 기업의 지역 본부, 기술과 경영 혁신을 실현한 모든 제조업과 서비스업, 기술 개발 투자, 외국으로부터의 기술 이전 등, 요컨대 무엇이든 국가에 이익이 된다고 인정되는 사업과 행위에 대하여는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것이 싱가포르의 방식이다. 중요한 일은 정부의 통제 아래 두되 국익에 이바지하는 사업은 경쟁국 기업에 못지 않게, 혹은 그 이상으로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 준다는 방식이다.

  그리고 지원 대상에는 내국인과 외국인의 차별이 없다. 이러한 방식이 성공하려면 (1) 변전하는 국제 환경에 대응하여 적절한 국가 정책을 입안하는 정치 지도자의 식견, (2) 간섭과 통제에 따르는 부정부패를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3) 공무원들의 높은 윤리 의식이 있어야 한다. 싱가포르는 이 세 가지 조건이 겸비되어 있는 나라이다.

 

  | 주요 성과와 성공 요인

  싱가포르는 정부 주도 방식으로 세계 정기 항로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을 살려 동남아의 물류 중심 국가로 크게 성공하였다. 1999년 기준으로 물류 산업이 싱가포르 GDP의 7%, 총 고용 근로자의 5%의 비중(직접 효과)을 차지하고 있다.

  성공의 주요 요인으로는 첫째로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 유치 정책을 들어야 한다. 투명한 투자 관계 법규와 적용, 공무원 재량에 따라 신축적으로 운용되는 치밀한 인센티브 제도, 외국 자본과 국내 자본의 무차별, 청렴하고 능률적인 공무원 조직, 그리고 기업 친화적인 정책 스타일이 정부의 투자 유치 정책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둘째로 정부 주도 체제에도 불구하고 1978년부터 자본 및 외환 시장을 완전 자유화한 것을 꼽아야 한다. 자본 이동에 대한 제한이 없고 외국인 투자가의 과실 송금은 물론 배당금, 이자, 로열티, 서비스 수수료도 자유롭게 송금할 수 있다.

  셋째로 최고 수준의 인프라를 구축했다는 점을 들어야 한다. 세계 수준의 항만ㆍ공항 시설, 통신 시설의 하드웨어는 물론, 운영 체계와 서비스 등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이다. 주변의 전문 단지를 조성하여 편리한 경영 환경을 제공하고 열대 지방의 열악한 기후 조건에도 불구하고 외국인들에게 편리한 생활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넷째로 정치ㆍ사회적 안정을 들어야 한다. 정치가 안정되어 있어서 일관적 정책 추진이 가능하고 노사 분규가 거의 없다. 1987년 이후 파업 또는 폐업 건수는 단 하나도 없다. 현지 주민들의 국제화 의식이 높고 대부분의 국민이 영어를 상용하며 외국인 투자가 고용을 창출하고 생활수준 향상에 기여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04 홍콩

 

  | 역사적 배경

  홍콩의 면적은 제주도의 60%( 1,095km²)에 해당한다. 1842년 영국에 의해 자유항으로 지정되었고, 1997년 7월 1일 중국으로 반환된 후에도 앞으로 50년 간 자유항의 지위를 유지하게 된다.

 

  | 지리적 조건

  홍콩은 지리적으로 아시아의 교통 중심지가 될 수 있는 천혜의 양항(良港)이다. 중국의 남쪽 문호로서 동남아시아와 인적ㆍ경제적 교류의 관문이고, 동남아시아와 유럽 및 남북아메리카를 연결하는 해운과 공운의 중심지이다.

 

  | 시설과 운영 주체

  최상급의 홍콩 첵랍콕 국제공항과 항만을 중심으로 고속경전철(Mass Transit Railway) 시스템, 컨벤션 센터, 높은 수준의 주택, 교육, 의료 기반 시설을 구비하고 있으며, 민간이 공항 및 항만을 운영하고 있다.

 

  | 주요 시책

  홍콩은 자유방임주의를 존중하는 고전적인 자유 경제 체제의 항구 도시이다. 저세율과 '작은 정부'를 표방해 온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특징적인 정책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포함된다.

 

  | 추진 기구

  홍콩무역개발위원회(Hong Kong Trade Development Council)가 홍콩의 무역 진흥 업무를 담당한다. 주요 업무는 국제간 무역 문제를 관장하고, 민간에게 산업, 서비스, 시장 등에 관한 비즈니스 정보를 제공하며, 중소 기업에게 기술 지원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역 촉진 행사를 통하여 중국 본토 및 해외 시장에서의 마케팅을 지원한다.

 

  | 주요 성과

  홍콩은 무역 마찰이 없는 아시아 최대의 시장이며, 총 수출 중 재수출 비중이 85%를 차지하는 세계 최대의 중개 무역항이다. 중국 시장 진출의 교두보로서 다국적 기업의 지역 본부가 무려 3,237개나 설치돼 있다(2001년 5월 말). 또한 국제 금융 센터로서 세계 40개국의 은행(사무소 포함) 400여 개, 증권사 321개가 진출해 있다. 한마디로 홍콩은 자유방임주의의 메카라 할 수 있다.

 


05 대만

 

  | 역사적 배경

  대만의 경제는 우리 나라와 마찬가지로 부존 자원이 부족하여 초기에는 가공 무역에 의존하는 경제 구조에서 출발하였다. 점진적으로 무역 자유화 및 수출 시장의 다변화를 추구하고 1980년대 후반부터 비관세 장벽의 점진적 철폐와 수입 관세의 단계적 인하를 추진하는 한편 노동 집약적 산업 구조에서 자본ㆍ기술 집약적 산업 구조로의 전환을 추진해 왔다. 그리고 외국 자본의 유치에 정책의 역점을 두고 외국인 투자조례, 투자장려조례, 산업고도화 촉진조례 등 법적 장치를 마련하였으며, 일부 업종을 제외하고 모든 외국인 투자를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전환하였다.

 

  | 지리적 조건

  대만 북부의 카오슝항은 수심 15m의 양항으로 현재 부산(21개)보다 많은 27개의 선석을 가지고 있는데, 2011년까지 23개를 더 추가할 예정이다. 유럽-싱가포르-홍콩-카오슝-부산(광양)-고베-북미를 연결하는 세계 주요 간선 항로 상에 위치해 있고 유럽, 동남아와 동북아를 연결하는 항로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북미 항로에 있어서는 미국에서 중국으로 가는 화물 환적의 경우(2000년 기준) 대부분 부산에서 이루어지고(총 환적 화물의 45%), 그 다음은 요코하마(26%), 고베(16%) 순으로, 카오슝은 불과 6%를 차지하고 있다. 1998년의 12%에 비하여 반감된 수준인데, 그것은 주로 부산ㆍ광양항의 시설 확장에 기인한다. 타이페이의 공항도 지리적으로는 좋은 위치에 있으나 국제 정치적 제약으로 항로 확대에 어려움이 있다.

 

  | 주요 시책

  대만 정부는 일찍이 1995년 1월부터 동아시아 시장과 장차 중국시장으로 진출하려는 세계 기업들에게 지역 거점을 제공하기 위해 APROC(Asia-Pacific Regional Operations Center : 아태지역비즈니스중심지)의 장기 계획을 추진해 왔다. 이 계획은 총통부 직속의 CEPD(The Council for Economic Planning and Development : 경제개발위원회)에서 작성했고 계획 주기는 10년이다. 계획안의 내용은 아래의 6개 주요 센터를 건설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1. 제조 센터(Manufacturing Center)
  2. 해상 운송 센터(Sea Transportation Center)
  3. 항공 운송 센터(Air Transportation Center)
  4. 금융 센터(Financial Center)
  5. 정보통신 센터(Telecommunication Center)
  6. 미디어 센터(Media Center)

  계획 추진 제1단계(1995~1997년)에는 경제 구조의 개선과 소규모 중심 기지 개발에 역점을 두고, 제2단계(199 8~2000년)에는 소규모로 개발된 중심 기지를 발전시켜 확실한 경제 구조 조정을 실행하며, 제3단계(2001~2005년)에는 경제의 자율화 작업을 완료하고, 대만이 지역 경제의 중심 기지로 인정받게 된다는 것이다.

  대만 정부는 APROC의 미완의 성과를 바탕으로 2000년에 세계물류중심지 발전계획(Global Logistics Development Plan)으로 전환하였다. 역시 CEPD가 수립한 이 계획의 목적은 과거 APROC 계획 아래 이룩한 성과를 토대로 하여, 해운과 항공 운송 부문의 뛰어난 입지 조건과 제조업 관련 기반을 활용하여 세계 물류 센터(global logistics center)를 만드는 것이다. 그를 위하여 기업들이 global logistics base를 대만에 설립하도록 지원하고 19개의 지능형 공단(정부 12개, 민간 7개)을 조성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창고 시설과 환적 시설을 확장하고 인터넷 시대에 부응하기 위하여 정보화시설개발계획(NII : National Information Infrastructure Development Plan)을 실행 중에 있다. 한편 정보법, 통신법, 은행법, 소비자보호법 등 22개 법안과 11개 행정령의 개정을 이미 완료하였다.

 

  | 추진 기구

  총통부 직속으로 행정원 CEPD가 조직되었고, 이 기관이 이행 수단과 법규를 평가, 분석하며 홍보와 사업 촉진 활동을 전개한다. CEPD 내에는 경제 규제 완화 및 혁신 센터(Center for Economic Deregulation and Innovation)가 가동하고 있고 과거에는 Coordi-nation and Service Office for APROC이 같은 기능을 했다. CEPD는 부처간의 정책을 조정하고 매 3개월마다 조정 통제와 평가 회의를 연다.

 


06 중국 푸동신구

 

   | 역사적 배경

  상하이는 중국 내륙 지역의 관문으로서 내륙 지역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끼쳐 왔다. 상하이 경제가 쇠퇴하면 중국 경제 발전에 부정적 결과를 초래한다고 생각한 중국 정부는 1980년대 중반부터 상하이의 경제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모색하다가 드디어 1990년 4월 18일에 '푸동(浦東)개발계획'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 계획의 구상은 상하이 푸동신구(Pudong New Area)를 대외 개방형 경제의 거점으로 삼아 중국 경제의 중심지로 만드는 동시에 태평양 연안의 국제적인 금융, 무역, 정보 중심지로 만든다는 것이다. 나아가 상하이 시의 경제 발전을 견인차로 하여 연해의 산업과 기술을 내륙의 자원과 시장에 연계시킴으로써 지역간 격차 해소와 국민 경제의 균형적 발전을 도모한다는 목적도 겨냥하고 있다.

 

  | 지리적 조건

  용의 머리(Dragon Head)라 불리는 상하이 시의 푸동신구는 용의 머리 중에서 눈에 해당한다. 황푸강(黃浦江)의 동쪽, 양쯔강 입구의 남서쪽, 촨양허(川楊河) 북쪽의 삼각형 지대로서 대부분의 지역이 상하이 시의 도심과 근접해 있다. 푸동은 과거에는 강을 건너는 다리와 육지의 터널이 부족하여 상하이 시의 중심부보다 경제적으로 낙후되어 있었다. 그러나 2000년 현재, 푸동신구는 총 533.44km²의 면적에 163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발전된 지역으로 탈바꿈하였다.

 

  | 물류 시설

  푸동신구에는 세계 수준의 국제공항과 항구가 있고 5개의 경제특구가 있다.

  - 푸동 국제공항(Pudong International Airport)

  푸동 국제공항 건설의 제1단계는 4,000m 활주로와 바닥 면적   25만k㎡의 승객 터미널을 건설하는 것이다. 푸동 국제공항은 1999년 10월에 연간 2,000만 승객과 75만 톤의 화물을 처리할 수 있는 용량을 가지고 개항하였다. 그리고 2000년에는 2,079만 명의 여객과 약 100만 톤의 화물을 처리하였다(인천공항은 같은 해 약 3,644만 명의 승객과 179만 톤의 화물을 처리하였다). 최종 계획상으로는 4개의 활주로와 연간 7,000만 승객을 처리할 것이라 한다. 2000년 현재, 상하이 시는 중국에서 유일하게 2개의 국제공항, 즉 푸동 국제공항과 홍차우(虹橋) 국제공항을 가지고 있다.

  - 푸동 국제 심수항(Pudong International Deep Water Harbor)

  푸동신구에 건설 중인 와이까우차우(外高橋) 신항만은 앞으로 상하이항의 새로운 중심점이 될 것이다. 개발은 4단계로 나뉘어 2020년까지 완료될 예정인데, 제1단계에서는 1만 톤급 선석 49개와 수많은 중소 규모 선석을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상하이의 2001년도 컨테이너 처리량은 633만TEU로 부산의 790만TEU와 비슷하다.

  와이까우차우 심수항은 까우차우쭈이(高橋嘴)와 우하오꺼우(五號溝)의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우하오꺼우 컨네이너 터미널은 양쯔강 하구에서 준설을 통해 단계적으로 개발되는데, 약 10년 동안 110억 위엔을 투자하여 수심을 현재의 7m에서 12.5m로 깊게 할 예정이다.

  또 하나는 푸동 정보항(Pudong International Info-Port)인데, 루자쭈이(陸家嘴) 금융무역구에 위치하여 정보 수집, 가공, 저장, 교환, 송신 등의 기능을 담당하는 중심(hub)이 될 것이라고 한다. 멀티미디어, 광섬유 통신, 컴퓨터 기술, 원격 통신 위성 등을 사용하여 정보 처리 기능과 24시간 국제 통신 및 기업 정보 서비스 기능을 제공할 계획이다. 진행 중인 제1단계 사업은 종합 정보항(Info-Port Complex)이다. 이 건물은 높이 180m, 총 바닥 면적 2만 4,000평인데, 이 건물 안에 최신 정보 시설을 설치함으로써 상하이 정보고속도로의 토대를 만든다는 것이다.

  도로, 철도, 용수 배수 시설, 발전소 등 지난 10년 동안 푸동은 인프라 구축에 매진하였고 총 연장 1,000㎞의 도로를 건설하였다. 상하이와 푸동을 연결하는 4개의 교각, Yan'an East Road 터널, 제2기 지하철도 건설되었다. 97.37㎞의 외곽순환 도시고속도로가 상하이 서부와 푸동을 연결하고, 25.4㎞의 푸동 경전철(Pudong Light Railway Transit)이 운행 중이다. 그 밖에 공공 시설이 완비되고, 법률 서비스, 고급 인력, 쾌적한 자연 환경 등을 제공하게 될 것이라 한다.

 

  | 5개 경제특구

  푸동신구에는 다음과 같은 5개의 핵심 개발 지역(key develop-ment zone)이 있다.

  - 와이까우차우(外高橋) 보세구 : Waigaoqiao Free Trade Zone

  국제 무역, 보세 창고, 수출 가공의 다기능 종합 자유무역 지대이다. 2,000여 개의 무역 회사와 60개 이상의 다국적 기업 지사가 진입해 있다. 와이까우차우 항구의 화물 처리량은 2000년 현재, 964만 화물톤(tons of freight), 121만TEU이다.

  - 진차(金橋) 수출가공구 : Jinqiao Export Processing Zone

  푸동의 중간에 위치하여 상하이에서 가장 큰 제조 중심지이다. 2000년 현재 370개 이상의 외국인 회사가 들어와 있다. 자동차, 정보통신, 극소 전자 공학 등을 포함한 150개의 제조 시설이 완전 가동 중이며 이들 중 약 80개 회사는 1억 달러 규모 이상의 투자 사업이다. 2000년 현재 푸동 지역 산업 생산액은 457억 위엔이며, 이 중 65.4%는 신 첨단 부문이 차지하고 매년 50%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 루자쭈이(陸家嘴) 금융무역구 : Lujiazui Finance and Trade Zone

  푸동의 중심에 위치하여 중국에서 '금융ㆍ무역 지대'라 불리는 유일의 단지이다. 180개의 다양한 유형의 업무 빌딩이 이미 운용 중이거나 건설 중에 있다. 이 중 18개의 건물을 은행ㆍ보험ㆍ주식 등의 금융기관이 사용 중이다. 84개의 국내외 금융기관이 자리잡고 있고, 28개의 다국적 기업 지역 본부가 들어와 있다.

  - 짱장 고과기원구(張江高科技園區) : Zhangjiang Hi-Tech Park

  푸동의 중간에 위치하여 상하이의 기술 혁신의 산실로 알려져 있다. 주요 초점은 생약 산업과 극소 전자 산업이다. 2000년 현재 국외에서 39억 달러 이상의 투자를 유치하였으며, 반도체를 제조하는 국제 회사와 상하이 그레이스반도체를 포함하여 총 229개 회사가 입주해 있다.

  이상과 같이 푸동 지역에 대대적인 부동산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으나 현재 건물의 입주율은 70% 이하이고 아직까지는 상당한 유휴 시설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일은 사회주의 경제에서만 가능한 일이데, 중국 정부는 장기적 안목에서 선행 투자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 투자 유치책

  1998년 3월 현재 중국의 총 외국 투자 유치액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241억 달러가 푸동신구에 유입되었고 70여 개의 저명한 외국 기업이 들어와 있다. 외국 기업들이 몰려드는 것에는 중국의 광대한 시장과 값싼 노동력이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으나 정부의 과감한 유인책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먼저 중국 정부는 다른 지역에 비해 보다 과감한 세제 혜택을 주고 있는데,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과거에는 외국인 투자 기업이 유통업에 진출하는 데에 많은 제약 조건이 있었으나 푸동신구의 투자 기업에 대해서는 백화점, 슈퍼마켓 등의 경영을 허가했다. 뿐만 아니라 외국인 투자 기업에 대해서는 소매, 백화점 상품 수입, 외환 거래 및 수입 일용품의 국내 판매에 대해 관세와 소득세를 감면하는 등의 우대 조치도 시행하였다.

  푸동신구에는 매년 토지 사용료를 지불하는 단기 임대와 장기 임대의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상하이 다른 지역의 토지 가격에 비해 푸동의 토지 가격은 평균 30%나 저렴하다. 푸동에서는 토지를 임대해서 사용하다가 임대 기간 중 임대권을 양도할 수 있기 때문에 토지 가격이 오를 경우 거래 차익도 얻을 수 있다.

  푸동신구에서는 투자 환경을 개선하고 투자 사업의 검토와 승인 절차를 간소화하기 위해 원스톱(one-stop)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투자 사업 검토와 승인 및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관련 정부기관들이 원스톱 서비스 센터(one-stop service center)에 모여 있고 투자자들에게 종합적인 정보와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 푸동신구 행정청(The Authority of the Pudong New Area Administration)은 총 투자 3억 달러 미만의 외국인 국내 투자와 내국인 국외 투자의 경우 10일 이내에 처리하도록 시한을 정해 놓고 있다. 실제로 그러한지는 알 수 없으나 그만큼 투자 승인 절차가 촉진될 것임은 틀림없다.
  이상에서 중국 정부의 투자 유치책을 개관하였는데, 흔히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사업하기가 한국에서보다 오히려 쉽다는 말도 들린다. 그것은 결국 정부의 적극성에 차이가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일 것이다.

 

  | 추진 기구

  푸동신구 개발은 제8차 5개년 계획(1991∼1995년)에서 중점 프로젝트로 선정되었으며, 1990년 5월에 상하이시푸동개발지도소조(上海市浦東開發指導小組)가 구성되었고, 그 밑에 상하이시푸동개발병공실(上海市浦東開發倂工室)이 있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07 외국의 성공 요인

 

  지금까지 살펴본 외국의 물류 중심지의 사례를 통해 물류 센터의 성공 요인을 도출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08 우리의 강점과 약점

 

  각 나라는 저마다 강점이 있고 약점이 있게 마련이다. 때문에 우리 나라의 잠재적 경쟁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볼 필요가 있다. 이 목적과 관련하여 2002년 8월 7일부터 18일까지 하와이에서 4개의 국제회의가 연속적으로 개최되었다.

  교통개발연구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동북아 경제포럼이 공동으로 마련한 이 자리에는 (1) 동북아의 투자 협력과 동북아개발은행 설립 방안, (2) 한ㆍ중ㆍ일 3국간의 국제 교통 체계, (3) 동북아 물류 및 비즈니스 중심지 개발 등 3개 분야의 회의가 있었고, 마지막 네째로 동북아 경제포럼 한국위원회가 주최한 회의가 있었다.

  이 회의에는 15인의 한국위원회 위원 외에 앞서 3개 회의에 참석한 연구자들, 그리고 인천시 기획관리실장,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재경부 경제정책국장, 국무조정실 제주 자유도시 추진 기획단 제1팀장, 그리고 몇몇 언론인들이 초청을 받아 참석했다. 이번 회의의 목적은 먼저 유럽으로 파견된 제2차 조사단의 보고를 듣고 나서 우리의 가능성을 최종적으로 평가하고, 7월 29일 정부가 발표한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 실현 방안'에 관해 토론하고 의견을 종합하는 것이었다.

  제2차 조사단은 먼저 한국에 물류 중심지를 만든다는 구상에 관한 구미의 다국적 기업들의 반응을 조사하고 동북아에서 우리의 위치가 어떠한 것인가를 확인하고자 했다. 다국적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조사는 샘플 추출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는데, 캐나다의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엄태훈 박사(국제항공교통연구학회 ATRG 회장)가 주도하는 연구팀이 조사 방법을 설계했다. 전체 응답 기업 수는 60개이고, 그에 더하여 유럽과 북미의 30개 기업과 직접 면담하였다 한다. 그 조사 결과는 <표 4>에 요약되어 있다.

  엄태훈 교수가 응답자들이 제시한 동북아 비즈니스 거점의 위치 선택 순위를 종합 평가한 바에 따르면, 제1위는 상하이이고, 제2위는 홍콩 및 서울-인천, 제3위는 도쿄-요코하마 및 베이징-텐진, 제4위는 오사카-고베, 제5위는 중국 남부와 부산-광양, 제6위는 타이페이이다. 상하이를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광대한 시장 잠재력과 푸동신구의 개발 때문이었다.

  이러한 엄태훈 교수의 조사 결과를 참고로 하여 필자는 나름대로 우리 나라의 강점과 약점을 요약해 보고자 한다.

  먼저 강점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열거할 수 있다.

 

 

약점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열거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는 강점보다 약점을 더 많이 가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의 약점은 거의 모두가 인위적인 것이고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물론 그 중에는 하면 되는 것도 있고 하려고 해도 매우 어려운 것도 있다. 그러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비단 물류 중심지의 건설뿐만 아니라, 21세기 일류 국가가 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하다. 요컨대 우리가 열심히 노력하면 부산ㆍ광양을 국제 물류 중심지로, 인천 지역을 물류-비즈니스 중심지로 개발하여 우리 나라를 동북아 물류 중심지로 만드는 동시에 살기 좋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만들 수 있는 반면, 어렵다 하여 문제 해결을 기피하면 우리 나라는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어 전전긍긍하는 2류 국가의 신세가 될 것이다.

  우리의 경쟁 상대인 싱가포르, 중국, 대만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물류 중심지 개발 전략을 추진해 오고 있는데, 우리는 이제서야 물류 중심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여기에서 더 멈칫거린다면 우리는 기회를 잃고 말 것이다. 다행히 늦게나마 정부가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 실현 방안'을 발표하였다. 정부의 시안이 앞서 본 외국의 성공 요인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우리의 약점을 어떻게 극복하겠다는 것인지 다음 장에서 그 주요 내용을 살펴보게 될 것이다.

 


 6. 정부 시안 개요

 


  

 

 2001년 9월 동북아 경제포럼 한국위원회의 청와대 보고가 있은 후, 2002년 2월 23일 기획예산처는 '외국의 물류 중심국가 성공 사례와 시사점'이라는 보도 자료를 발표하였다. 그리고 나서 3월 29일에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 발전 기획단'의 이름으로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 실현 방안'이 발표되었는데, 곧 이어 4월 4일에는 재정경제부에서 같은 내용이 발표되었다. 이는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를 만들겠다는 정부의 정책 의지는 분명하나 아직 그 추진 체제가 명확히 결정되지 않았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7월 29일 경제부총리가 정부 시안을 확정 발표하였는데, 이는 지난 4월 4일 발표한 기본 계획(Master Plan)을 기초로 하여 21개 정부 부처가 소관별로 세부 실행 계획을 마련한 것이라 한다. 이번에는 경제특구에 관한 정책을 총괄ㆍ조정하는 행정기관으로 재경부 장관을 위원장, 관련부처 장관 및 민간 전문가들을 위원으로 하는 비상설 협의체 형태의 '경제특별구역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하고, 이를 '경제특별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가칭)에 반영해 나갈 계획이라고 천명하였다.

  그리고 경제특별구역위원회를 실무적으로 보좌하는 기구로서 재경부 장관 산하에 '경제특별구역 추진 기획단'을 설치하고 상근 공무원 외에 관련부처 공무원 또는 민간 전문가를 파견받아 운영하되, 상근 공무원은 내ㆍ외국인을 불문하고 국제 비즈니스 경험과 지식이 풍부한 자를 공개 채용하는 방안도 검토한다고 했다.

  수차례에 걸쳐 정부 내에 강력한 추진 체제를 구성해야 한다고 권고한 우리로서는 추진 기구가 좀더 구체화된 것에 대해서는 환영하나, 이번에 구성된 기구가 '경제특별구역위원회'이고 동북아 물류-비즈니스 중심국가 실현 방안 전체를 통괄 조정하는 기구가 아님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바이다. 앞으로 이야기되겠지만 경제특구는 전체 계획의 일부에 불과하고 그 개념 자체도 검토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이번에 발표된 정부 시안은 2002년 12월 말까지 세미나, 공청회 등 관계 전문가의 의견 수렴을 거쳐 최종 확정될 계획이라고 하므로 정부 정책 담당자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우리의 검토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먼저 정부 시안의 내용부터 파악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시안의 논리적 체계가 명확하지 않은 듯하기에 그 내용을 이하의 절, 항의 순서로 재구성하기로 하였다.

 


01 기본 구상

 

  먼저 정부의 기본 구상을 보면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를 실현한다는 목표 아래 동북아 물류 중심지와 동북아 기업, 금융 등의 동북아 비즈니스 거점을 만들기 위한 2대 사업을 전개한다는 것이다.

  우선 물류 중심지 건설을 위해서는 (1) 인천공항을 동북아 중심 공항으로 개발하고, (2) 부산항ㆍ광양만을 동북아 초대형 중심 항만(Mega Hub Port)으로 개발하며, (3) 장기적으로는 남북철도와 시베리아 횡단철도(TSR), 중국횡단철도(TCR)와의 연결을 추진하여 아시아 고속도로망을 구축하고, (4) 국내의 효율적인 물류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5) 이 목적 달성을 위해 물류 관계법과 관련 제도를 정비한다는 것이다.

  또 기업, 금융의 동북아 거점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인천, 부산, 광양을 경제특구로 지정해, 특구에 입주하는 기업들을 지원하고 외국 물류 중심지에 못지 않는 기업 환경을 조성하여 비즈니스 중심지로 만든다는 것이다. 동시에 IT 인프라 확장을 통하여 IT 중심지가 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02 교통 인프라의 구축

 

  물류 중심지를 만들자면 먼저 항공, 해운, 육운의 인프라 구축이 가장 시급하다. 정부 시안에 포함된 운송에 관한 계획을 한데 모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항공 운송

 

  | 해상 운송

  - 부산항


 

 - 광양항

  - 송도 신외항

  - 평택

  - 목포

 

  | 육상 운송

 

  - 내외 물류 네트워크 구축

  - 유라시아 실크로드 구축

 


03 통신-정보 인프라의 구축

 

  물류 중심지를 만드는 데에 필수적인 또 하나의 요건은 현대적 통신-정보 인프라의 구축이다. 정부의 계획을 정리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 인프라의 확충

 

  | IT 능력의 개발

 

  | 행정 지원

 


04 비즈니스 중심지 개발

 

  운송 시설과 통신 시설이 완비되고 물류 서비스가 완벽하면 항만, 공항, 육운 거점 주변에 관련 기업들이 모여들어 비즈니스 중심지를 형성하게 된다. 비즈니스 중심지를 개발하는 것은 주로 민간 기업이 담당하지만 지방 정부 또는 중앙 정부가 필요한 공공 시설을 마련해 주고 매력적인 기업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인천광역시는 1980년대 중반부터 인천 지역의 비즈니스 중심지를 개발해 왔고 괄목할 만한 실적을 보이고 있다. 주요 개발 사업의 현항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영종ㆍ용유ㆍ무의 지역

 

  | 송도 신도시

 

 

 

  | 김포 매립지

 

  | 고양 관광ㆍ숙박ㆍ전시 단지

  - 관광ㆍ숙박 단지

 

  - 국제전시 단지

 

  | 자유무역지역

 


05 산업의 지역적 특화

 

  정부가 7월에 발표한 시안이 지난 4월에 발표한 시안과 다른 점은 전략 산업의 지방별 특화 계획을 구체화했다는 점이다. 그것에는 아마도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의 구상은 "한국 경제의 생존 전략이자 번영을 위한 필수 전략"이므로 산업 정책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관점과 각 지방의 '균형적 발전'을 보여 주려는 의도가 있는 듯하다.

  여하튼 목적만 있고 수단이 명시되지 않은 이 계획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권역별 지역 산업 진흥 계획

 

  | 지방 첨단 문화 산업 단지

 

  | 지역별 특화

  정부 시안은 "권역별 개발 축을 통한 경제특구 개발 효과의 전국적 확산"과 지역적 균형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산업의 지방 특화를 추진한다고 되어 있다.

 


06 제도적 개혁

 

  앞에서 제시한 목적과 방법을 실현하자면 새로운 제도와 정책, 또는 기존의 제도와 정책의 개혁이 있어야 한다. 정부 시안이 나열한 개혁 항목은 다음과 같다.

 

  | 물류 관련법ㆍ제도 정비

 

  | 교육 환경 개선

 

  | 노사 환경 개선

 

  | 외국 투자 유치를 위한 조세 특혜

 

 

  | 금융 환경 개선

 

  | 외국인 출입국 및 이민 제도 개선

 

  | 경제특구

  ① 공항ㆍ항만, 광역 교통망, 용수, 전력 등 기반 시설 공급 수준

  ② 충분한 규모의 부지 확보 가능성 및 개발 비용 수준

  ③ 전문 인력 확보 용이성

  ④ 경영 환경, 생활 여건 등 배후 도시의 서비스 수준

  ⑤ 당해 지자체의 지원 방식 및 지원 계획

  ⑥ 지역 경제에 대한 파급 효과

  ⑦ 외국인의 투자 수요

 

  ① 영어 서비스의 강화

  ② 주요 외국 통화의 통용

  ③ 경영ㆍ생활 애로 사항 해소 기구 설치

  ④ 외국 병원 및 약국 진출 허용

  ⑤ 외국인 주거 단지 조성

  ⑥ 외국 방송의 개방

  ⑦ 의료ㆍ교육 시설 설치 지원

  ⑧ 특별행정기구 설치

  ⑨ 경제특구 내에 '외국인 투자 옴부즈맨 사무소' 설치

  ⑩ 대한상사중재원 지부 설치

 

  | 추진 기구

    ② 각종 부담금 면제 등 특례 제도 시행에 따른 지원

    ③ 국가 지원 지방도 등 국가 지원이 필요한 인프라 시설 건설 지원

    ④ 전문 인력 양성을 위한 산학연계 사업 시행

    ⑤ 외국인 투자 유치에 필요한 정보 수집 및 제공

    ⑥ 경제특구별 개발 사업에 관한 정보 수집 및 관리ㆍ감독

    ⑦ 영어 서비스 제공 및 홍보 등

    ① 경제특구 내 외국인 투자 유치

    ② 경제특구 내 도시 계획 결정 및 세부 계획 수립

    ③ 도로, 공원, 상하수도 등 기본 인프라 시설의 설치ㆍ관리

    ④ 난개발 방지를 위한 무허가 건축물 단속 및 지적 관리

    ⑤ 교통 노선 및 택시ㆍ버스ㆍ화물차량 등의 안정적 관리

    ⑥ 소음ㆍ대기 관련 업무 및 청소 행정ㆍ보건 위생 업무

    ⑦ 외국인 전용 음식점, 휴양ㆍ오락 시설 등의 개발ㆍ지원

    ⑧ 노사 화합을 위한 지원 업무 및 외국인 등록

    ⑨ 외국인 투자 지원 사업비 등 지방비 지원

    ⑩ 우수 사업체 및 벤처업체 육성 관리

    ⑪ 내국인 주민등록ㆍ인감ㆍ민방위, 소방관리 업무 등

 


07 국제 협력

 

 


   7. 정부 시안의 검토

 


 

 앞장에서 본 정부 시안은 우리 나라에 물류 중심지를 건설하려는 획기적인 것이라 하겠는데, 정부는 관계자들의 토론과 의견을 수렴하여 2002년 12월 말까지 최종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을 가지고 있다. 이 장에서는 지난번 하와이 국제회의의 토론을 참작하여 필자 나름의 사견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01 전략개념의 정리

 

  우리 나라를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로 만들어야 한다는 정부의 문제 의식은 이 책 제2장에서 설명한 바와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중국의 발전 속도를 감안할 때 향후 5~10년 내에 우리 나라가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로서의 위상을 확보하지 못하면, 1997년에 부즈-앨런 & 해밀턴(Booz-Allen & Hamilton)보고서가 지적했듯이 일본과 중국 사이에 끼어 마치 호두 까기의 경우처럼 양방으로부터 압박을 받아 경제 생존의 구속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 전략의 초점

  정부 시안을 보면 세 가지 관점, 즉 지역적으로 물류-비즈니스 중심지를 만든다, 나라 전체를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로 만든다, 물류 산업을 중심으로 21세기 경제 전략을 수립한다는 관점이 교차하고 있는 것 같고 따라서 목적과 수단의 연계가 분명치 않다. 예컨대 물류 산업을 중심으로 21세기 경제 전반의 전략을 수립하기로 하였다면 과거의 5개년 경제개발계획과 같은 방대한 계획을 편성해야 할 것이다. 정부 시안은 물론 그런 것도 아니다. 결과적으로 계획의 초점이 흐려진 감이 있다.

  앞장에서 필자는 정부 시안을 물류-비즈니스 중심지 건설의 논리적 순서에 따라 임의적으로 재구성하였는데, 그것은 대만의 APROC(아태지역 비즈니스중심지) 계획과 문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우리의 과제를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누가 보더라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교통(항공, 해운, 육운) 및 통신-정보 인프라를 구축하는 동시에 최고의 물류 서비스 체제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 조건이 구비되면 먼저 운송ㆍ통신과 관련이 있는 기업들이 항만과 공항 주변으로 모여들고 그에 따라 금융, IT, 유락 등의 연관 업종이 파생하여 마침내 비즈니스 중심지가 형성될 것이다. 그러므로 물류 중심지를 건설하는 것이 당면 과제가 된다. 그런데 정부 시안은 물류 중심지와 비즈니스 중심지가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으로 가정하고 있다.

  물론 물류와 관계없이 비즈니스 중심지가 형성되는 경우를 생각할 수는 있다. 아일랜드가 그러한 경우이다. 아일랜드는 항구와 공항 시설이 보잘것없고 지리적으로도 물류 중심지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아일랜드는 물류가 아니라 IT 산업을 유치하는 데에 전력을 경주하였고, 그 결과 그에 관련된 외국의 기업들이 공장을 세우고 또 그에 관련된 회사들이 모여들어 비즈니스 중심지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비즈니스 중심지는 단지를 만들고 건물을 세운다고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해야 할 비즈니스가 있어야 한다. 홍콩에는 금융업이 있고, 네덜란드와 싱가포르에는 정유업의 생산 기지가 있어 그에 관련된 기업들이 물류 관계의 기업들과 함께 비즈니스 중심지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인천 지역이 비즈니스 중심지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물류와 함께 무엇인가의 생산 기지가 있어야 한다. 다행히 인천시는 송도 신도시에 IT 생산 기지를 만든다고 한다. 그러므로 인천시가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내외의 물류 전문 업체와 IT 산업의 외국 기업을 유치하는 것이다. 인천은 거대한 생산 및 소비 기지인 서울에 근접해 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비즈니스 중심지가 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내국 기업 위주의 비즈니스 중심지가 되기 쉽다.

  어쨌든 물류 산업이 남다른 경쟁력을 가지든가 혹은 남다른 생산 기지가 없는 한 이미 중국에 지역 본부를 둔 외국 기업들이 한국으로 지역 본부를 이전하거나 또는 새로운 다국적 기업들이 지역 본부의 위치를 인천으로 택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특히 시장을 중요시하는 외국 기업들은 중국 푸동에 지역 본부를 두려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경쟁력과 주변국의 경쟁력을 비교 분석해서 비교우위가 있는 사업부터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만약 별다른 비교우위가 없거나 크지 않다면 인천이나 부산보다 서울이 계속해서 비즈니스 중심지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비교우위로 보거나 또는 물류-비즈니스 중심지 건설의 논리적 순서로 보거나 먼저 물류 중심지 개발에 우선 순위를 두는 것이 타당하다. 이미 많은 외국 기업들이 부산ㆍ광양항, 그리고 인천항과 인천공항을 이용하고 있고 또 앞으로도 이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이들 물류 기지의 시설과 서비스 및 기업 환경이 싱가포르를 능가할 만큼 좋아진다면 새로운 기업들이 몰려올 것이고, 물류와 관계없는 기업들도 점차로 모여들게 될 것이다. 암스테르담의 경우를 보더라도 스키폴 공항 주변에 5개의 단지가 있는데, 업종별로는 창고업, 유통업, 교통 관련업, 일반 업무, 조립 및 제조업으로 구분되고 제조업은 전자, 영상기기, 사진 및 필름, 의학용 기기 등 주로 항공 운송에 적합한 경량 제품으로 특화되어 있는 등 모두가 물류와 관계가 있다.

  부언하건대 비즈니스 중심지의 개발이 중요치 않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다만 비즈니스 중심지를 만들자면 비즈니스 자체를 창출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을 따름이다. 비즈니스 중심지의 건설은 주로 민간이 사업성을 판단하여 시행하게 될 것인데 여러 가지 정부 규제나 공공 시설의 미비로 착수하지 못하거나 늦어지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1) 토지 사용의 기본 계획을 만들어 주고, (2) 비즈니스 중심지 건설에 필요한 공공 시설 건설에 선행 투자를 하는 동시에, (3) 지역 내의 건설 활동을 제한하고 있는 각종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 시안은 비즈니스 중심지 개발을 위해 국내 기업의 개발 투자를 유치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제시하지 않고 있다.

  한편 시설 확장이나 비즈니스 중심 단지를 건설하는 것만으로 우리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시설을 운영하는 서비스 체제의 질적 수준이 성패를 좌우하는 열쇠가 된다. 가령 부산ㆍ광양항, 인천항과 인천공항의 서비스 체제를 싱가포르와 비교할 때 과연 우리에게 허점이 없는가? 우리는 그 허점을 찾아내고 개선책을 강구하여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그러나 정부 시 안에서는 서비스 체제의 현황을 분석하고 대책을 강구하는 계획을 볼 수 없다.

  다음에 시설과 서비스를 개선하여 동북아 역내에서 물류 및 비즈니스의 중심지가 되려면 제1장과 제5장에서 열거한 우리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현존 제도와 관행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 이것이 우리 문제 의식의 종착점인데, 실행에서는 제일 먼저 착수해야 할 과제이다. 이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 태반이 해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집행상의 우선 순위는 제도 개혁이며, 그 다음이 시설 확충, 서비스 개선, 비즈니스 단지 개발의 순서가 되는 것이다.

  요컨대 어떻게 하면 중국과 세계의 기업들이 홍콩, 싱가포르, 상하이 대신에, 혹은 다렌, 칭하오, 뤼순, 텐진과 연계하여 부산ㆍ광양과 함께 인천의 항만과 공항을 이용하고 그 주변에 사업 거점을 두도록 만드느냐 하는 것이 전략 개념의 초점이 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 시안의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라는 과장된 개념보다는 KOTI(교통개발연구원)의 '동북아 물류-비즈니스 중심지'의 개념이 보다 현실적인 것으로 생각된다.

 


02 투자 계획과 자원 조달

 

  지방 정부와 중앙 정부가 계획하거나 추진 중에 있는 투자 사업은 매우 다양하다. 물류에 관한 투자 사업을 요악한 것이 <표 6>인데 몇 가지 지적할 사항이 있다.

  먼저 확장 사업의 완공 시기를 살펴보면, 인천공항 제2차 확장 사업은 2008년에 완료되는데 부산항과 광양항 확장 사업은 2011년에 가서야 완공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우리의 계획이 늦어지면 기회를 놓칠 우려가 있고, 수송 수요의 증가 추세로 보나 물류의 3대 중심지가 동시에 기능을 발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지에서 보나 부산, 광양항 확장 사업을 2008년으로 앞당겨 완공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인천이 물류 중심지로 자리 잡을 때까지 전략적으로 공항 사용료의 현실화를 연기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재정 부담의 한계를 고려해야 한다는 반론이 있겠지만 그것은 재정 운영 전체의 우선 순위 문제이다.

 

  둘째로 투자 계획뿐만 아니라 모든 계획을 단계별 또는 장단기 계획으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우선 순위를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5장에서 본 바와 같이 싱가포르의 'Industry 21'이라는 국가 발전 전략은 10년 동안 10개 분야 핵심 산업을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고, 대만의 APROC 역시 계획 기간 10년에 3단계 추진 계획을 실행하는 것이다.

  셋째로 정부가 부담할 자금 계획이 불안한 상태에 있다. <표 6>에 기재한 사업 중에 자금 계획이 공백으로 되어 있는 사업들이 많다. 이 밖에도 표면화되지 않은 사업과 정부 부담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미 나타나 있는 자금 수요만도 20조 원 이상인데, 국가 재정의 테두리 안에서 이것을 어떻게 소화할 것인지 총체적 자금 계획을 편성하는 일이 남아 있다. 자금 계획의 뒷받침이 없으면 계획의 실현은 보장되지 않는다. 자금 계획을 짜는 과정에서 사업의 우선 순위가 결정될 것이다.

  비즈니스 단지의 개발에서는 민자 유치와 개발 이익으로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고, 연계 교통망 등 기본 인프라 구축은 정부 재정으로 부담한다는 원칙을 세워 놓고 있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 송도 신도시 건설의 경우 인천시가 127억 달러의 외자 유치 계약을 체결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그 계약 조건을 알 수 없으나 부동산 업자는 토지 선점권을 확보하기 위하여 흔히 여러 가지 조건을 달아 계약부터 하는 경향이 있다. 합의한 조건에 대해서는 조속히 이행해야 할 것이다.

  넷째로 정부 시안은 선택과 집중을 강조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 지역적 균형 발전이라는 정치적 압력 때문에 그것이 희석되지나 않을까 우려된다. 현재 동북아 물류 센터의 후보지로 부산, 광양, 인천은 물론 제주도, 목포, 군산, 평택, 서울 상암동 등이 거론되고 있는데, 우리 의견으로는 부산, 광양만을 해운 물류 기지로, 그리고 인천을 공운과 해운을 연계하는 황해권 물류 중심지로 개발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며 지금은 그것에 총력을 기울일 때라고 생각된다. 부산, 광양만의 경우 시설뿐만 아니라 싱가포르나 홍콩에 버금가는 서비스 체제를 갖추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인천항과 인천공항을 최첨단 물류 기지로 개발하면 부산, 광양만과 인천 사이에는 저절로 연계 수송망이 형성되고 평택, 군산, 목포항도 활기를 띠게 될 것이다. 한ㆍ중 양국간에 교역이 증가하면 우리 나라 서해안의 항구와 중국 동해안의 많은 항구 사이의 물류가 증가하고 '황해 물류권'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

  다섯째로 물류-비즈니스 중심지에 대한 민간 투자를 촉진하자면 산업 지원 정책에서 물류 산업에 대한 차별적인 대우를 없애야 한다. 우리 나라는 전통적으로 서비스 산업을 경시하는 정책을 시행해 왔으나 이제는 서비스 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할 때이다. 필자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물류업은 제조업에 비하여 다음과 같은 차별적 대우를 받고 있다.

  정부의 산업 지원 정책 자체가 문제시될 수 있으나 어쨌든 제조업과 물류 산업을 차별하는 정책은 지양되어야 한다.

 


03 서비스 체제의 개선

 

  정부 시안에서는 물류 시설을 운영하는 서비스 체제의 개선 방안에 대한 언급이 없는데,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이 시설 확충보다 시급한 과제라 할 수 있다. 물류 서비스를 개선하자면 첫째로 물류에 관한 정부의 규제 완화가 필수적이다. 우리 정부가 OECD와 WTO에 가입함에 따라 어느 정도 물류 관계의 규제를 완화해 온 것이 사실이나 물류 중심지를 개발하자면 보다 적극적으로 제도적 장벽을 제거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경쟁국들이 규제 완화를 하지 않는데 우리만 모든 것을 자유화하면 국익이 되지 않는다는 관점도 있겠지만, 국제적 규제 완화를 촉진하는 외교를 강화하는 한편, 국제적 배려가 필요 없는 규제만이라도 과감히 제거해야 한다.

  예컨대 항공 분야에서는 2사 경쟁 체제로 전환한 결과 여객 서비스는 어느 정도 개선된 반면 양사간 출혈 경쟁을 촉진시켰고, 항공 운송 산업의 규제 완화는 오히려 규제 강화로 일관되어 왔다는 평이 있다. 일례로 국적 항공사 육성 지침을 폐지하고 양 항공사별로 육성 규모를 설정하는가 하면, 노선권 분배 기준을 폐지하고, 일방적으로 노선권을 배분하는 등 시장 원리를 무시한 항공 운송 정책을 시행해 왔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WTO의 뉴라운드가 2005년에 타결되면 항공 서비스의 개방과 자유화로 국제 경쟁이 격화될 것이다. 따라서 지금부터 시장 원리에 입각한 국적 항공사간의 공정 경쟁을 유도하고 나아가 글로벌 경쟁에 대응할 수 있는 강력한 태세를 갖추지 않으면 세계 항공 판도에서 밀려날 가능성이 있고, 앞으로 중국과 아시아에서 팽창하는 물류와 승객을 인천으로 유도하는 데에 한계가 있을 것이다.

  또 해운에서는 다음과 같은 규제가 문제시되고 있다.

  둘째로 국제 물류 과정에 제출 서류가 많은 것 역시 또 하나의 제도적 장벽이다. 수출입 승인과 허가, 동물 검역, 식물 검역, 수출입 신고, 입출항계, 승원 명부, 승무원 상륙 허가, 관세 부과 절차 등 수십 가지의 서류 준비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들 서류의 대부분은 컴퓨터를 이용한 EDI에 의한 처리가 가능하고 그를 통하여 시간과 비용을 크게 절약할 수 있다. 유럽의 물류 중심지와 싱가포르에는 모든 관련 기업과 기관을 연계하는 종합적 EDI 시스템이 운영되고 있다. 참고로 싱가포르의 EDI를 개발한 사람은 일본인이다. 그런데 일본의 경우는 통관업자, 선박 회사, 입국관리국, 항만청이 제각기 독립적으로 EDI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는데, 현재 종합적 정보 시스템의 개편이 추진되고 있다. 우리 나라에는 하주(荷主), 관세청, 금융기관을 연결하는 무역협회의 KTNet이 있고, 그 밖에 KLNet(무역 정보), KROIS(철도운영정보시스템) 등이 운영되고 있으나 업무 범위가 한정되어 있고 다른 EDI와의 연계가 미약하다. 따라서 아직은 제출 서류의 30% 정도가 전산화된 상태에 그치고 있다. 여하튼 각종 유관기관과의 정보망의 연계가 없으면 원스톱 서비스란 말뿐인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물류 부문의 종합적 정보 교환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안이 정부 계획에 포함되어야 한다.

  셋째로 물류 산업의 능률과 서비스를 개선하자면 외국의 물류 전문 업체를 유치하는 한편, 국내 물류 전문 업체를 육성해야 한다. 제5장에서 본 바와 같이 네덜란드에서는 미국과 아시아에서 진출한 EDC(유럽유통센터)의 66%가 현지 물류 전문 업자를 사용하고 있고 중국 상하이에는 Maersk, Sealand, APC, Danzas/ AEL, DHL, FedEx, UPS 등 저명한 물류 전문 회사들이 진출해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물류 중심지의 개발을 위해 제일 먼저 유치해야 할 외국 기업은 물류 전문 업체와 외국 선사(船社)이다. 심지어 항만과 공항의 운영을 외국 전문 회사에 맡기는 예도 있다.

  그리고 해운, 공운, 육운을 연계하는 복합 운송업체를 육성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가로막고 있는 것도 큰 문제이다. 요컨대 물류산업육성법(가칭)을 제정하여 제조업 지원책에 준하는 물류 산업 지원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복합 운송 인프라를 완비하고 정보 인프라 및 시스템을 첨단화하는 것이 시급하다.

 


04 근본적인 제도 개혁

 

  정부 시안 작성자가 옳게 말한 바와 같이 인프라의 건설은 동북아 물류 중심지 혹은 비즈니스 중심지 건설의 필요 조건이나 충분 조건은 아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제도와 관행의 개혁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정부 시안은 세부적인 개선 사항을 열거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 운영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추구하는 근본적인 개혁이기보다는 현 체제의 틀 속에서 지엽적 수정을 가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최고 지도층의 확고한 지침이 없는 한,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 교육 문제

  먼저 교육 문제만 하더라도 그러하다. 정부안은 교육의 국제화에 상당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그 세부적인 개선안에 대하여 별달리 할말은 없지만 언어 교육에서 '한글 전용에 관한 법률' 때문에 저해되고 있는 한자 교육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은 유감스럽다. 동북아가 한자 문화권임을 감안할 때 초등학교부터 한자를 가르쳐야 한다는 여론에도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국가 생존 전략을 다시 짜는 마당에 반드시 교육의 근본 문제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과 같은 교육 제도와 관행으로는 21세기의 일류 국가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식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2002년 6월 21일 한국무역협회가 개최한 물류 산업에 관한 세미나에서 이 문제가 심각하게 논의된 일이 있는데, 논자들의 다수 의견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우리 나라 교육의 근본 문제는 교육기관의 경영과 교학의 기능을 혼동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교원 노조가 경영과 학사를 지배하려 하고 있고, 학교 경영을 재단의 이사회가 아니라 교수들 자신이 해야 한다고 나서는 경우가 있다. 대학의 이사회가 아니라 교수들이 총장을 선출하고 그 때문에 학원 내에 상호 비방과 정치 싸움이 벌어지는 사태는 선진국에서는 볼 수가 없다.

  미국의 명문 대학의 총장은 학자가 아니라 경영자인 경우가 많고 그의 주요 임무는 대학 행정과 기부금을 모금하는 것이다. 물론 그 동안의 일부 대학 재단의 부실과 부정이 문제되어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문제는 그것대로 해결할 일이지 그렇다고 경영-교학 분리의 원칙을 유린해야 할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교육을 담당하는 교원과 교수측에 문제가 많다고 해서 경영진이 학사에 함부로 관여할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정부가 원칙을 무시하고 민주화를 가장한 포퓰리스트들의 주장에 야합한 결과가 오늘의 현상인데, 지금과 같은 무질서 속에서는 합리적인 정책을 시행하기 힘들다.

  초등교육은 인간의 덕성과 창조력을 기르는 기본 과정인데, 지금과 같은 과밀 교실과 교사의 질적 수준 및 처우를 가지고서는 제대로 된 교육이 불가능하다. 차라리 외국과 같이 초등교육을 자유화하여 사립초등학교를 허가해서 질적 경쟁의 환경을 만들고, 그것을 통해 절약되는 재정을 공립초등학교의 질적 개선으로 돌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향 평준화는 향상과 개선의 길을 막을 뿐이다.

  중등교육을 입시교육에서 해방하자면 대학의 자유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대학 등록금을 포함한 경영을 자유화하여 대학간의 경쟁을 유도하면 대학마다 특성과 강점이 있는 대학으로 발전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학생과 학부모가 맹목적으로 명문 대학에 가기 위한 입시 경쟁에 매몰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외국 대학의 분교를 유치할 필요가 있다. 학생들의 외국 유학 때문에 막대한 외화가 소요되는데, 외국 대학을 국내로 유치하면 보다 적은 외화 비용으로 외국 대학의 학위를 취득할 수 있게 되고, 국내 대학의 경쟁적 개선을 유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이미 실리를 추구하는 기업들은 직원을 채용할 때 대학 간판보다 실력을 중시하는 경향으로 돌아서고 있다. 참고로 일본의 소니(Sony)사는 직원을 채용할 때에는 이력서를 보지만 일단 채용한 후에는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모든 이력서를 불태워 버린다고 한다. 현재 대학 정원은 약 60만 명인데 고교 졸업생들은 약 45만 명으로 감소하였다. 이제 대학(특히 지방 대학)도 경쟁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게 되었다. 이러한 추세에 부응하여 자유로운 경쟁을 할 수 있도록 대학을 자율화하는 것이 근본 문제 해결의 열쇠가 될 것이다.

  학교교육과 함께 사회교육의 역할도 중요하다. 국가 생존 전략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가 없으면 필요한 변화를 실현할 수 없다. 따라서 사회교육이 필요한데, 정보화 시대에는 매스컴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정보화 시대의 매스컴의 기능에 대해서는 논란(論難)의 소리가 높다. 서로우(Lester C. Thurow)가 『자본주의의 미래(The Future of Capitalism)』에서 지적한 대로 상업 방송은 사회의 규범을 파괴하는 흥분을 팔아서 돈을 벌고, 생산을 싫어하는 소비주의 가치관을 기르고 있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반대로 매스 미디어의 위력을 이용하여 정보화의 역작용을 제거하는 방법도 있다. 우리 나라의 공영 방송(KBS)이 사회교육과 함께 각종 사회악을 고발하고 시민의 각성을 촉구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도 주지의 사실이다.

  만약 모든 상업 방송이 단 몇 분이라도 시간을 할애해서 사회교육에 바친다면, 우리 민족성의 단점(비협력, 부정직, 상호 불신, 배타성 등)을 고칠 수도 있고, 교육, 의료, 과학 등의 분야에서 선진국을 따라잡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요컨대 정보화는 우리가 어떻게 활용하고 관리하느냐에 따라 이익이 될 수도 있고 해악이 될 수도 있다. 정보 자체가 선악과 진부를 가려 주는 것이 아닌 이상 우리 문화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정보 매체에 대한 어떠한 사회적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동북아 물류 중심지 실현 방안의 성패 여부도 많은 부분 홍보 매체의 역할에 달려 있다.

 

  | 노사 문제

  정부안이 노사 문제에 법치주의를 관철해야 한다고 한 것은 매우 당연한 지적이다. 그러나 정부 시안의 대책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유럽을 다녀온 조사단은 네덜란드와 아일랜드의 노사 관계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노조위원장이 국가 경제의 형편을 생각하여 임금 삭감을 선도하고 조합원을 설득하는가 하면, 기업은 일자리를 늘리는 데에 최선을 다하고, 정부는 노동자와 기업의 어려움을 덜어 주기 위해 세금 부담을 줄이는 상부상조의 사회적 연대가 그들 나라의 특징이다. 우리 나라와 같이 노사정위원회가 법제화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자발적 참여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있음도 주목할 만한 일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노사정위원회를 법제화한 결과 정부는 국가 경제 전체의 이익을 수호하는 조정자가 아니라 노조의 교섭 상대로 전락하여 합리적인 해결이 어렵게 되었다. 네덜란드의 폴더 모델의 모방이 어렵다면 차라리 우리 현실에 맞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

  조사단이 방문한 두 나라(네덜란드와 아일랜드)에는 산별 노조만 있고 기업 노조가 없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는 기업 노조와 산별 노조가 공존하고 있는데, 산별 노조에 대응하는 산업별 기업주 연합회가 없거나 미약하고, 노사간에 분쟁이 있을 시에 제3자 개입이 법의 규제를 받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개별 기업 내에 노사 분쟁이 발생하면 산별 노조가 뛰어들어 분쟁과 교섭을 대행하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개별 노조의 경우 우리 나라 노동법은 2인 이상의 합의가 있으면 노조를 결성할 수 있고 조합원의 과반수의 찬성투표가 있으면 파업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가령 조합에 가입한 노동자가 전체 종업원의 반수가 되지 않더라도 노조의 과반수 찬성이 있으면 파업을 할 수 있다. 이것은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다. 우리 나라 기업에서는 근로자 전원이 노조에 가입하고 있는 것이 상례이므로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할지 모르나 선진국에서는 노조에 가입하면 회비를 내야 하는 등의 이유로 점차 노조에 가입하지 않는 노동자가 늘어나고 있다. 때문에 미국에서는 노조원뿐만 아니라 비노조원을 포함한 전체 종업원 과반수의 찬성투표가 있어야 파업을 결정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가 있으므로 우리 나라의 노동관계법을 민주화, 세계화의 추세에 따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 나라에서는 주5일 근무제 법률안을 놓고 노동계와 기업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주5일 근무제가 세계적 추세이지만 정부안의 평균 연간 휴일수가 일본의 129~139일, 대만의 107~130일, 홍콩의 102~109일보다 많은 136~146일인 것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어찌하여 소득 수준이 이들 국가보다 뒤떨어지는 우리 나라의 휴일수가 더 많을 수 있단 말인가.

 

  | 경제특구의 개념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시안에는 경제특구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의 특구를 모방한 인상을 준다. 우리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 국가이자 OECD 회원국으로서 그에 적합한 특구의 개념을 찾아야 한다. 우리 나라에는 이미 관세자유지역, 자유무역지역, 외국인 투자 지역, 국제자유도시 등 네 가지 유형의 경제특구가 있는데 정부 시안은 또 하나의 '경제특구'를 만들려 하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특구를 설치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 생각해 볼 문제이다.

  경제특구의 개념은 네 가지로 분류할 수가 있다. 첫째는 관세자유지역인데, 이 지역에서는 잠시 들러 가는 외국 화물이나, 들어와서 상표 부착, 혼합, 재포장, 조립 등의 가공을 거쳐 외국으로 다시 내보내지는 화물에 대해서는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싱가포르에서는 이러한 화물의 보관까지도 무료이다. 다만 화물이 관세자유지역에서 국내 시장으로 반출될 때 관세가 부과된다. 세계적으로 Free-Trade-Zone 등 관세자유지역과 유사한 개념으로 운영되는 지역이 미국, 유럽, 싱가포르 등 선진국은 물론 중국을 비롯한 개도국 등에 약 800여 개나 설치되어 있다. 그러나 실효를 거두고 있는 것은 앞서 나열한 선진국들뿐이다.

  이 제도를 실시하자면 해당 지역에 울타리를 쳐야 하고 사람과 물자의 이동을 통제할 필요가 있게 된다. 제주도는 섬이고 영종도는 육지와의 통로가 하나밖에 없으므로 관세자유지역을 설정하는 것이 비교적 용이하다. 그러나 그 외의 지역에서는 그리 수월한 문제가 아니다. 암스테르담의 경우는 관세자유지역을 설정하지 않고 대신 보세 창고 제도를 활용하여 관세자유지역 이상의 성과를 올리고 있다. 관세 면세 지역은 보세 창고, 보세 구역, 관세 자유 지대로 확대될 수 있는데, 면세 해당 기업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보세 창고 또는 보세 구역을 설정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경제특구의 둘째 개념은 자유지역에 입주하는 기업에 대하여 조세 또는 금융상의 특전을 부여하는 것이다. 정부안은 OECD 규범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외국 기업에 대하여 최대한의 세제상의 지원 방안을 강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세 가지 고려할 점이 있다.

  1. 특구에 입주하는 모든 외국 기업에게 무차별로 조세 감면을 할 것인가, 혹은 특정 업종에 국한하여 감면할 것인가? 만약 후자의 경우라면 업종 선정의 기준과 복잡한 절차를 규정해야 한다. 이른바 관료적 형식주의(red tape)의 폐단이 불가피하게 된다.
  2. 조세 감면에 있어서 외국 기업과 국내 기업에 대하여 차별을 둘 것인가? 제5장에서 본 바와 같이 싱가포르와 유럽의 물류 중심국가에는 국내 기업과 외국 기업에 대한 차별이 없다.
  3. 정부 시안은 경제특구의 종류에 따라 조세상의 지원과 지원 대상의 선정 기준을 달리하고 있다. 2001년 6월 말 현재로 우리 나라에는 총 1만 702개의 외국 기업이 들어와 있는데, 이들을 세분하여 차별화하는 것이 과연 세계화의 추세에 걸맞는 일인지 의심스럽다. 게다가 OECD는 투자 유치를 위한 조세 감면을 보다 엄격히 제한하거나 철폐할 기세를 보이고 있다. 특구의 종류를 다양화할수록, 특혜의 대상과 기준을 세분화할수록, 그리고 내국인과 외국인을 차별할수록 정부 간섭과 규제는 많아지고, 부패의 온상이 되기 쉽다. 또한 특혜를 받는 기업들조차 한국은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싱가포르에도 다양한 조세 금융상의 지원 제도가 있으나 관세자유지역을 제외하고 모든 지원책은 전국적으로 시행된다. 아마도 관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외국 투자를 유치하면 어디에서나 특구와 같은 세제 특전을 누릴 수 있다면 지방 정부가 경쟁적으로 투자 유치에 나설 것이다.

  경제특구의 셋째 개념은 일반법으로 금지 또는 제한하고 있는 행위를 자유지역 내에서는 허용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특구 내에 외국의 학교나 병원의 진입을 자유화한다는 따위이다. 여기에도 검토할 여지가 있다.

  1. 특구에 울타리를 쳐야 하느냐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가령 외국의 학교나 병원의 진입을 자유화하는 것은 좋으나 비특구의 주민들이 이를 이용하려고 몰려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용을 개방할 바에야 처음부터 특구 외에도 그러한 진입을 허용하여 국내 학교와 병원들의 경쟁적 개선을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예로 정부 시안은 특구 내에서 주요국 통화의 사용을 자유화한다고 하였는데, 주요 통화의 사용이 비특구로 번지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으며 또 막을 필요가 있느냐 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보다는 외환관리법을 폐지하면 외국 통화 사용뿐만 아니라 모든 외환 거래가 자유화될 수 있다.
  2. 정부 시안에서 열거한 특례사항에는 전국적으로 허용하더라도 큰 문제가 없는 것이 있는 반면에 가장 어렵고 핵심적인 문제가 빠져 있다. 설사 정부가 열거한 모든 자유화 조치를 취한다 하더라도 특구 내에서 빈번히 노사 분규가 발생하고 노조가 종래와 같은 강성 투쟁을 벌인다면 외국 기업들은 특구를 떠나고 말 것이다. 정부 시안에는 '외국인 투자 옴부즈맨 사무소'를 설치하여 외국 기업의 노무 관련 고충을 처리한다고 되어 있으나 이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다. 노사 문제는 비단 외국 투자자뿐만 아니라 국내 기업에게도 해당되는 심각한 문제인 만큼 이 역시 전국적인 차원의 해결이 불가결하다. 이미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노동관련법을 수정할 수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관세자유지역을 제외하면 또 다른 형태의 경제특구를 설정해야 할 이유가 분명치 않다. 우리는 중국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며, 자유 경제 체제의 국가로서 21세기 세계화 시대에 일류 국가가 되기 위해 국가 운영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고 있는 중이다. 때문에 보다 전국적인 차원의 개혁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경제특구의 설정이 불가피한 이유가 하나 있다. 그것은 정치적 혹은 행정적 편의를 위한 것이다. 전국적인 개혁에는 정치 사회적 저항이 따르게 마련인데 우리의 정치적 현실에서는 그것을 극복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므로 우선 특구를 설정하여 그 안에서 필요한 개혁의 효과를 테스트한 다음 그 긍정적 효과가 나타나면 개혁을 전국화하기가 쉬워진다는 논리이다. 뿐만 아니라 행정부 내에서도 전국적인 개혁을 꺼리는 부처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특구의 명분을 내세워야 동의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이 실무자의 고백이다. 이는 결국 우리 나라 국가 경영 전략에 대한 정부 지도층의 인식 부족과 리더십의 부재를 의미하는데 이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바와 같은 문제점이 있는 만큼 정부가 열거하는 특례조치의 하나하나가 과연 경제특구를 설정해야 실현 가능한 것인지 재검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한편 경제특구 특례에 포함될 수 있는 것 중에 빠진 내용도 있다. 예컨대 대외무역법에 의한 수출입 제한 철폐, 입주 기업간의 거래에 대한 부가가치세 면세, 배당 소득에 대한 비과세 등이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정치 사회적 저항을 돌파하는 한 가지 방법으로 영종도와 같은 소지역에 완전 자유도시를 건설하자는 제안도 있다. 이것이 경제특구의 넷째 개념이다. 이 제안에 따르면 정치, 즉 시범적으로 행정면에서 완전 독립된 치외법권 지대, 다시 말해 홍콩과 같은 완전 자유도시를 만들어, 살기 좋고 기업하기 좋은 사회의 축도(縮圖)를 보여 주자는 것이다. 심지어 3무(無)의 기업 자유 지역을 만들자는 제안도 나오고 있다. 3무란 세금도 없고, 규제도 없고, 노조도 없는 기업 천국을 가리킨다. 이만한 열정적인 개혁의 시도가 없으면 이 나라의 장래를 어어 갈 수 없다는 것이 제안자들의 생각이다. 그러나 이러한 유토피아의 건설이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인지 보다 깊은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 국제 협력

  유럽에 물류 중심지가 발달한 원인 중의 하나는 EU의 광대한 자유무역지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동북아에서도 자유 무역의 범위가 넓어질수록 물류 중심지의 성공 가능성은 커진다. 정부는 이 목표를 위해 외교적으로 한ㆍ일 자유무역지대를 추진하는 한편, 중국과는 우선 경제특구 사이의 무역만이라도 자유화하는 방안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우리 나라를 동북아 물류-비즈니스 중심지로 만들자면 국제 협력이 필수적이다. 유럽을 다녀온 조사단의 보고에 의하면 우리 나라의 이기적 그림만을 내세우고 지역 국가들의 상호 이익의 그림을 제시하지 않으면 실패할 것이라는 충고를 들었다 한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잠언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동북아 물류 중심국가' 운운하는 것은 적당치 않으며 앞으로 국제 협력 방안을 연구해야 할 것이다.

 


05 추진 기구의 강화

 

  정부가 발표한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 실현 방안'은 방대하고 다양한 투자 계획과 과감한 제도 개혁을 내용으로 하는 것이다. 방대한 인프라 구축에는 치밀한 사전 계획과 자원 동원이 필요하고, 더욱이 광범한 제도 개혁에는 강력한 조정 능력을 필요로 한다. 정부안 기안자가 말한 대로 동북아 비즈니스 혹은 물류 중심지를 만든다는 전략이 "한국 경제의 생존 전략이자 번영을 위한 필수 전략"이라고 한다면 새로운 국가 전략을 강구하는 최고의 두뇌 집단이 필요하고 동시에 개혁에 따르는 정치적, 사회적 저항을 극복하고 국민을 설득하여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 열정적인 리더십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이번에 발표된 정부 시안을 보면 경제특구를 만들기 위한 기구 신설이 추진 기구의 전부이다. 즉, 경제부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경제특별구역위원회'가 신설되고 그 밑에 '경제특별구역 추진 기획단'이 있고, 경제특구별로 '사무소'가 있으며 그에 더하여 '지방 통합행정기구'를 설치ㆍ운영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의외의 발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동북아 물류-비즈니스 중심지를 만들자면 비단 경제특구뿐만 아니라 모든 문제에 대한 기획 조정과 의사 결정 과정이 정비되어야 한다. 이전의 EPB(경제기획원)가 없어진 이후 기획 조정 기능은 기획예산처, 청와대, 국무총리실, 재경부 등에 분산되어 있어 우리 나라에는 국가 전략의 수립과 계획을 담당하는 부서가 없는 셈이다. 이것은 매우 불행한 변화이다.

  제5장에서 본 바와 같이 아일랜드에는 강력한 IDA가 있고, 네덜란드에는 NFIA와 HIDC가 주동적 역할을 했다. 싱가포르에는 EDB, TDB가 있고, 대만에는 CEPD가 있어서 정부 주도로 물류 산업 정책을 추진해 왔다.

  정부 주도가 아닌 네덜란드에서는 중앙 정부, 지방 정부, 민간이 출자한 법인체의 이사회가 공항과 항만, 비즈니스 단지의 운영을 맡고 있다. 그리고 정부 차원의 의사 결정 과정이 필요한 물류 센터에 관한 정책은 사회 간접 시설, 환경 보호, 경제 운영을 관장하는 3부 장관 합의에 의하여 결정되고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내각회의 결정에 따르는 것으로 되어 있다. 우리 나라에는 이러한 투명한 의사 결정 절차가 확립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사정을 감안하여 동북아 경제포럼 한국위원회는 대통령 직속으로 물류 산업 기획단을 조직하고 장관급 기획단장 아래 각 부처에서 파견된 인원과 민간 고급 두뇌로 구성되는 실무진을 구성할 것을 건의한 바 있다. 기획단장은 수시로 대통령에게 보고할 수 있는 경로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대통령은 항상 보고를 기다리는 관심과 열의를 가지고 있어야 이 국가 사업이 수행될 수 있다. 보다 적극적인 건의를 하라고 한다면 종래의 EPB의 기능을 부활하고 그곳에 통괄 조정의 임무를 맡기라고 말하고 싶다. 그만한 기구 없이 우리의 경제적 과업을 달성할 수 있을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KOTRA가 우리 나라 물류 중심지의 이점을 선전하고 투자 유치 마케팅의 선봉을 맡는 동시에 민간 단체로서는 한국무역협회가 네덜란드의 HIDC의 역할을 맡는 것이 좋을 것이다. 특히 한국무역협회를 추천하는 이유는 이 단체가 원래 물류와 관계가 깊은 '한국하주협회'의 사무국 역할을 해 왔을 뿐만 아니라 KOTIS(종합무역정보서비스)와 KTnet라는 첨단적 통신망을 운영하고 있고 전문 인력과 재원도 겸비하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1993년에 시작한 KTnet는 통관 업무와 무역 금융을 자동화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는데, 이것을 관련 업체와 관련 기관을 연결하는 종합적 통신망으로 확장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 사업의 성공 여부는 정치권의 협력에도 달려 있다. 앞으로 5년 내에 궤도에 올려 놓지 못하면 실기할 우려가 있으므로 사업을 신속히 추진해야 하고 , 그러자면 정치권의 초당적 협조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여야 영수회담의 합의를 거쳐 국회 내에 '제도 개혁 특별위원회'(가칭)를 조직하여 수시로 정부 기획단의 작업 결과를 넘겨받아 국민과 국회의 의견을 수렴하고 필요한 입법 조치를 취할 것을 건의한 바 있다. 그리고 수많은 법률을 고쳐야 하는데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모든 관련법의 수정 부분을 '제도 개혁에 관한 임시조치법'(가칭)에 열기하여 단일법으로 처리하는 이른바 Omnibus Bill(일괄법안)의 방법을 채용함도 고려해 볼 만하다. 최근에 일본에서 구조조정을 신속화하기 위해 이 방법을 사용한 선례가 있다.

  끝으로 다시 한 번 강조하거니와 매스컴의 협력 없이는 성공하기가 어렵다. 21세기를 살아가자면 세계화가 불가피하고 경제 성장 기조를 유지하자면 우리 나라를 동북아 물류 중심지로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자면 필요한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설득시켜야 하고 그것의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매스컴이다. 요컨대 경제계, 정치권, 매스컴이 삼위일체가 되어 이 사업을 추진해야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06 우리의 제언

 

  이상의 검토 의견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1.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의 전략 개념을 보다 명료하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 요컨대 어떻게 하면 부산, 광양을 해운 물류 및 환적 중심지로 개발하는 동시에 영종도와 인천을 공운과 해운을 연계한 황해권 물류-비즈니스 중심지로 만들고, 각 항만과 공항 배후지에 첨단 산업과 외국 기업을 최대한 유치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 시안의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라는 과장된 개념보다는 '동북아 물류-비즈니스 중심지'의 개념이 보다 현실적인 것으로 생각된다.
  2. 비즈니스 중심지는 주로 민간이 할 일이고 정부가 할 일은 (1) 토지 사용의 마스터 플랜(Master Plan)을 만들고, (2) 비즈니스 중심지 건설에 필요한 공공 시설 건설에 선행 투자를 하는 동시에, (3) 지역 내의 건설 활동을 제한하고 있는 각종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다. 또 국내 기업의 개발 투자를 유치하는 방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3. 가용 자원의 한계가 있으므로 다양한 사업 계획의 우선 순위를 정하고 장단기 계획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단기적으로는 부산, 광양만을 해운 물류 중심지로, 인천을 황해권 물류 중심지로 개발하는 데에 총력을 기울일 때라고 생각된다. 인천을 최첨단 물류 기지로 개발하면 부산, 광양만과 인천 사이에는 저절로 연계 수송 체계가 형성되고 평택, 군산항도 활기를 띠게 될 것이다.
  4. 중앙 정부, 지방 정부, 민간의 자금 조달을 종합한 투자 사업의 총체적 자금 계획을 편성해야 한다. 자금 계획을 편성하는 과정에서 서로 경쟁하는 각 사업의 우선 순위와 연차 계획을 확정할 수 있을 것이다. 중장기 자금 계획이 없는 사업은 집행이 보장되지 않는다. 공적 소유의 매립지는 매각보다 장기 임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5. 물류 중심지 개발을 위해서는 세계 유수의 물류 전문 업체와 첨단 산업의 생산 활동을 유치하는 것이 시급하다.
  6. 기존 물류 중심지의 서비스 체제를 최적하기 위한 계획이 있어야 한다. 물류 산업 육성법(가칭)을 제정하여 제조업 지원책에 준하는 물류 산업 지원책을 강구해야 한다. 아울러 복합운송 인프라의 완비와 정보 인프라 및 시스템의 첨단화가 시급하다.
  7. 새로운 국가 발전 전략을 다시 짜는 견지에서 보다 근본적인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 특히 교육, 노사 문제, 세제, 외환 거래, 경영과 회계의 투명화, 규제 철폐 등에서 더욱 그러하다.
  8. 필요한 개혁은 가급적 전국적으로 실시하고 경제특구의 개념과 종류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외국 물류 중심지에서는 기업 활동을 할 때 국내와 국외의 차별이 없다는 것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동일한 업종에서 국내 기업을 역차별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9. 관세 면세 장소를 보세 창고 < 보세 지역 < 관세자유지역 단위로 지정하듯이 외국 투자 지원책(조세 감면)을 적용하는 장소도 사업장 < 사업지구 < 경제자유지역 단위로 지정하는 방법이 바람직하다. 이렇게 하면 지방 정부가 앞다투어 외자 유치에 나설 것이다.
  10. 전항에 따르면 정부 시안의 경제특구 지정 요건을 대폭 단순화할 수 있다. 면적이나 인프라 등을 따져 경제특구의 지정 요건으로 정하기보다는, 일례로 신청 지역의 노동 문제에 관한 노사정 간의 확실한 합의와 서약을 지정 요건으로 함도 고려할 수 있다. 그렇게 하면 노사 분규를 예방할 수 있고 중앙 정부의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이다. 산업 평화가 보장되지 않는 곳에 경제특구를 설정할 필요는 없다.
  11. 교육 제도 개혁에서는 사립초등학교의 설립을 허용하고, 교원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여 공립초등학교 교육의 질적 수준을 항상시켜야 한다. 또 대학에 자율성과 경쟁을 도입하여 각 대학이 제각기 전문적 강점을 개발하면 그 결과 중등교육을 입시교육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다. 한편 외국 대학의 분교를 유치하면 외국 유학으로 인한 외화 소비를 줄이고 국내 대학의 경쟁적 개선을 유도할 수 있다.
  12. 외국어 교육에서는 영어뿐만 아니라 일본어, 중국어 교육에도 중점을 두고 초등학교에서부터 한자를 가르쳐야 한다.
  13. 각급 대학에 물류 전문가 양성을 위한 학과의 도입이 필요하다.
  14. 노사 문제에서는 '노사정위원회'의 성격을 재검토하고, 노동관계법을 민주화, 세계화의 추세에 따라 수정할 필요가 있다. 기업은 투명한 경영과 회계 공개를 통해 근로자의 신뢰를 얻도록 해야 한다.
  15. 세제를 국제화하고 장기적 재정 수요를 감안하여 세제 개혁이 불가피하다. 외국 물류 중심 국가에서는 공통적으로 법인세율이 낮고, 배당 소득에 과세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16. 외환거래법을 폐지해야 한다.
  17. 본 사업의 효과적인 추진을 위하여 강력한 기획ㆍ조정 기능을 가진 행정 기구가 필요하다. 대통령 직속으로 '국제 물류 산업 개발 기획단'(가칭)을 설치하든가 아니면 종전의 EPB와 같은 기능을 부활할 필요가 있다.
  18. 여야의 합의로 국회 내에 '제도 개혁 특별위원회'(가칭)를 설치하고 정쟁을 초월하여 행정부가 제출하는 법안을 수시로 심의 의결하도록 한다. 일본의 Omnibus Bill 입법 방법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8. 동북아개발은행을 설립하자

 


 

 우리나라가 동북아 물류 중심지로 발전하자면 동북아 지역의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해야 한다. 동북아에는 거대한 중국 경제와 러시아 시베리아 대륙이 있고 몽골이나 북한과 같은 비교적 작은 규모의 경제도 있다. 그러나 이들 국가는 저개발 단계에 있고 저개발 국가의 공통점은 경제 개발을 위한 내자가 부족하여 외자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는 데에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 나라는 사회주의 계획 경제 체제에서 자본주의 시장 경제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고, 일본, 한국 등 시장 경제 체제의 경제 운영 방식에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동북아의 특수 사정에 대응하여 지역 개발은행을 세우자는 것이 우리의 제안인데, 그 동안의 경과와 제기된 문제에 대한 우리의 견해를 밝히는 것이 이 장의 목적이다.

 


01 동북아의 어제와 오늘

 

  동북아라 하면 지리적으로는 보통 중국의 동북 3성(지린성, 랴오닝성, 헤이룽장성)과 러시아의 시베리아 일부[연해주(Primorskii Krai), 하바로프스크(Khabarovsk), 아무르(Amur), 사할린(Sakhalin), 마가단(Magadan), 캄차카(Kamchaka), 야쿠티아(Yakutia)], 그리고 일본, 한국, 북한, 몽고를 포함하는 지대로 알려져 있고, 때로는 대만을 포함해서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이 지역 안에 위치하거나 영토 일부가 이 지역에 걸쳐 있는 모든 나라를 동북아 국가로 볼 수 있다.

  동북아는 불행한 과거를 가지고 있다. 19세기 말 이후부터 청일전쟁(1894~1895), 러일전쟁(1904), 중일전쟁(1937)이 있었고 중국, 러시아, 미국이 연합하여 일본을 패배시킨 태평양 전쟁(1941~1945)이 있었다. 이러한 일본의 제국주의적 모험의 와중에서 우리 나라는 1910년에 국권을 잃고 말았고, 제2차 세계 대전 후 국권을 회복하기는 했지만 영토는 4강 사이의 흥정의 대상이 되어 국토 분단이라는 비운을 맞게 되었다. 1980년대의 소련 공산 체제의 붕괴, 동서 냉전의 종식을 계기로 동북아 지역에서도 새로운 세력 균형과 평화 구도가 모색되고 있기는 하나 아직은 불투명하다.

  이와 같이 복잡한 지정학적 관계가 동북아 지역의 경제 발전에 걸림돌이 되어 온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점차 그러한 정치적 장벽은 낮아지고 있다. 여전히 정치적 장벽이 존재하고 있지만 정ㆍ경분리의 입장에서 경제 관계를 확대해 나가는 현실주의가 세계적 추세이고, 남북한 사이의 경제 협력이나 중국과 대만 사이의 경제 교류 확대가 그것을 말해 준다.

  경제 관계의 확대에 따라 정치적 대립 관계가 상호 의존의 관계로 바뀌기도 한다. 한ㆍ일 관계가 말해 주듯이 경제 협력을 통하여 정치적 대립 관계가 완화 내지 해소되는 경향이 있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동북아 각국은 이제 불행한 과거를 역사 속에 묻고 새로운 시각으로 동북아의 미래를 생각하여야 한다.

  동북아는 무한한 경제 발전의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먼저 중국 동해안, 일본 및 한국으로 구성되는 지역은 고도의 산업화를 이루었고, 북미주, EU와 함께 세계 경제의 3대 축의 하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나머지 지역, 즉 중국의 서부 오지(奧地), 몽골, 북한 및 극동 러시아는 아직 경제적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아시아의 경제적 변경(邊境, frontier)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남북 격차는 상호 보완 관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즉, 일본, 대만, 한국의 자본 및 기술과 여타 지역의 풍부한 인력, 자연 자원을 결합하여 생산으로 연결하면 이 지역은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 동북아 지역은 자연 자원의 보고로 알려져 있다. 시베리아에는 유전과 천연 가스, 석탄 등 거의 무한량(無限量)의 에너지 자원이 매장되어 있고, 머지않아 일본과 한국은 석유의 중동 의존을 줄이고 파이프라인을 통하여 시베리아 에너지 자원을 이용하는 때가 올 것이다. 이 밖에 동북아 지역에는 주석, 텅스텐, 연, 금, 은, 백금, 다이아몬드, 철광석, 마그네슘 등 무려 70여 종류의 광물이 매장되어 있고, 풍부한 초원과 삼림, 그리고 맑고 풍부한 수자원이 있으며, 베링 해와 오호츠크 해는 세계 최대의 어장이다.

  1989년에 발족한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20개국 및 대만을 포용하는 국제적 협력 기구로 등장했지만, 경제 규모, 경제 발전 단계, 역사와 문화적 배경이 다른 나라들의 협의체이기 때문에 지역 문제 해결의 실적이 거의 없다. 반면에 APEC 역내에는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 ANZCER(Australia-New Zealand Closer Economic Relations Trade Agreement), 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등의 하위 지역 협력체가 보다 활발하게 기능하고 있다. 그러나 유독 동북아에는 지역 협력 체제를 찾아볼 수 없다. 그렇게 된 데에는 주로 정치적 장벽과 국제적 협력에 익숙지 못한 경험 부족이 작용하고 있는데, 이제 이러한 상태를 체념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지역적 협력을 모색할 때이다.

 


02 동북아개발은행의 구상

 

  최초로 '동북아개발은행' 설립을 제안한 사람이 필자이므로 그 경위를 밝혀 두는 것이 좋을 듯하다. 1990년 2월 1~3일, 동아일보는 창간 70주년 기념 행사로서 캘리포니아 대학교, Institute of East Asian Studies와의 공동 주최로 산타 바바라(Santa Barbara)에서 '동아(東亞) 지역의 새로운 질서'라는 주제의 세미나를 개최한 일이 있다. 이 회의의 토론 분야는 정치, 경제, 군사, 한반도의 4개 부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제2부의 '아태 지역의 경제 관계'에서는 미국 하버드 대학교의 퍼킨스(Dwight H. Perkins), 일본의 오키다 사부로(Okita Saburo), 러시아의 마티노프(Vladlen A. Martynov) 그리고 한국의 필자가 각각 논문을 발표하였다. 필자는 "Changing Pattern of Economic Interaction in East Asia"라는 논문을 통해 동북아에서 다자간 협력의 노력이 매우 중요함을 강조하고 그 방법의 하나로 동북아 지역에 개발은행을 설립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결론지었다.

  그 이듬해 1991년 8월 필자는 중국 텐진에서 개최된 동북아 경제포럼에 참석하여 동북아개발은행의 구상을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지역 국가들의 관심과 협력을 이끌어 내려 했다. 동북아 경제포럼의 조이제 의장은 이 제안을 포럼의 고정 의제로 채택할 것을 제의하여 첨석자들의 동의를 얻었고, 그 후 오늘까지 10여 년 동안 포럼의 연차 총회 또는 워크숍 등을 통하여 제안의 내용을 구체화하고 역내국 참가자들과 의견을 교환해 왔다.

  조이제 박사와 필자는 이 제안을 연구 검토케 하기 위하여 ADB(Asian Development Bank : 아시아개발은행)의 Chief Economist로 근무했던 경력이 있는 하와이 대학교의 번햄 캠벨(Burnham O. Campbell) 교수와 일본 국제대학 히로시 카카추(Hiroshi Kakazu) 교수에게 연구 용역을 위촉하기로 하고 한국의 산학협동재단과 용역 계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두 교수는 1993년 9월 한국 용평에서 개최된 동북아 경제포럼 제3차 회의에서 연구 결과를 중간 보고했는데 대체로 동북아개발은행의 설립이 필요하다는 결론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캠벨 교수가 급환으로 작고하여 연구가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다행히도 ADB의 부총재를 지낸 스탠리 캐츠(Stanley Katz) 씨가 East West Center의 객원 연구원으로 오게 되었고, 그와 상의한 결과 그는 흔쾌히 우리 운동에 참여하기로 하였다. 그는 ADB의 부총재 경험과 EDB(European Development Bank : 유럽개발은행, 1991년 창립) 창설에 조력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개발금융의 권위자라 할 수 있는데, 그 후 포럼의 회의가 있을 때마다 동북아개발은행의 필요성과 문제점에 대하여 명쾌히 설명함으로써 반대자들을 설득하는 데에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예상했던 대로 중국을 비롯한 동북아 국가들은 모두가 동북아개발은행 창립에 찬성하지만 유독 일본은 주저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역외 국가로서는 미국의 참여가 필수적인데 아직은 태도를 밝히지 않고 있고, EU의 참석자들은 개인적이지만 호의적인 반응을 보여 왔다. 그러나 조이제 박사와 스탠리 캐츠 씨, 그리고 필자의 끈질긴 노력으로 일본에서도 점차 지지자가 늘어나고 있다. 동북아 경제포럼 일본위원회 격인 가나모리 위원회[회장 가나모리(金森久雄)]가 지지운동을 벌이고 있고, 일본의 연구기관 INAS(Institute for Northeast Asia Study, 環日本海總合硏究機構) 또한 지지 여론 환기에 주력하고 있다. 동북아 에너지공동체를 제창하고 있는 현 중의원 의원이자 전 외상인 나카야마(中山太郞) 씨도 우리 제안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나섰다. 2001년 6월 오사카 시장 주최로 개최된 세미나에서 동북아개발은행 제안에 대한 토론이 있었다. 여기에는 나카야마, 가나모리 씨를 비롯하여, 금융 경험자, 외무성 관료들이 참석하였는데, 반대의 소리가 종전보다 누그러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도 우리는 계속 일본 정치 지도자들을 설득할 예정이다.

 


03 제안의 개요

 

  먼저 동북아개발은행의 제안의 개요는 아래와 같다.

 


04 왜 동북아개발은행이 필요한가

 

  먼저 왜 동북아개발은행이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대략 아래와 같이 다섯 가지로 그 이유를 들 수 있다.

  첫째로 전술한 바와 같이 동북아 지역의 경제 발전의 전제 조건은 도로, 항만, 공항 등의 교통 시설, 전신, 전화 등의 통신 시설, 교육, 문화, 복지 등에 관한 사회 시설을 건설하는 것인데, 이에는 막대한 내자와 외자가 필요하다. 그런데 세계은행과 ADB가 동북아 국가(중국, 몽골, 러시아, 북한)에 제공한 차관은 1999년에 1억 3,500만 달러, 2000년에 2억 9,500만 달러, 2001년에는 1억 7,000만 달러에 불과하다. 이는 동북아 지역의 사회 간접 자본 구축에 필요한 자금의 극소 부분에 불과하다. 따라서 새로운 자금원을 찾아야 동북아의 사회 자본 구축과 경제 발전이 촉진될 수 있음은 명백하다. 그런데 국제 금융 시장에는 풍부한 자금이 투자할 곳을 찾고 있다. 다만 그 자금을 동북아로 유치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미약하다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제도적 장치의 하나로 동북아개발은행을 설립하고자 하는 것이다.

  둘째로 동북아 국가간의 경제적 통합은 시대적 요청인데, 이를 위해서는 교통(육운, 해운, 항공) 및 통신 수단의 네트워킹(networking)과 같은 다국간 협력이 필요한 사업들이 추진되어야 한다. 이러한 다국간 협력 사업은 다국간 지역 개발은행을 매개로 할 때 보다 효율적으로 추진될 수 있다. UNDP(U.N.Develo-pment Program : 유엔개발계획)가 중국, 러시아, 북한을 포함하는 국제 협력 사업으로 시작한 두만강 유역 개발 사업이 지지부진한 이유는 이 사업을 자금면에서 통괄 조정하는 주체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동북아개발은행이 있었다면 이 사업은 벌써 완료되었을 것이다.

  셋째로 동북아개발은행은 비단 금융 기능을 수행할 뿐 아니라, 역내 국가들의 경제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개별 국가의 경제 문제와 경제 정책을 분석하여 지역 국가간의 상호 이해와 협력 관계를 증진하는 데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가 동북아에는 시장 경제 체제로 전환 중에 있는 중국, 러시아, 몽골과 북한이 있으므로 개발은행은 각종 연수 프로그램을 통하여 시장 경제의 운용 원리, 경영 방식, 제도, 관행 등을 이들 국가에게 전수(傳授)할 수 있고, 다른 한편 이들 국가가 당면한 문제들을 연구, 검토하여 선진국들의 이해와 지원을 유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들 사회주의 국가들이 조속한 시일 내에 세계 경제 질서에 통합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동북아 OECD 국가들의 책무라 할 수 있다.

  넷째로 지금은 양국간 협의(bilateral)의 시대가 아니라 다국간 협의(Multilateral)의 시대이다. 선진국이 역내 개도국의 경제 개발에 참여할 때 쌍무적 접근보다 다자간 접근이 바람직하다. 앞으로 국제 거래에 투명성이 요구되는데, 선진국이 쌍무적인 방법으로 이권을 추구하면 경제적 침략 또는 지배라는 오해를 받기가 쉽고 국제 관계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다. 동북아개발은행은 참가국간의 정보 교환과 다자간 협의를 통해 그러한 위험성을 덜어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끝으로 일본과 한국에게는 북한과 관련하여 동북아개발은행을 필요로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먼저 일본은 언젠가는 북한과 국교정상화를 실현해야 할 처지에 있다(얼마 전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가 북한을 방문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럴 경우 북한에 대한 무상 및 유상 원조가 필요하게 될 것인데, 일본은 유상 원조의 경우 북한에 직접 공여하는 것보다 동북아개발은행을 통해서 제공하는 편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렇게 하면 원조 자금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을 뿐 아니라 북한에 대해 다국적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북한의 개혁 개방을 촉진하게 될 것이다. 한국의 경우에는 앞으로 남북간의 경제 협력 내지 경제적 통합이 진전되면 북한의 개발 비용의 큰 부분을 부담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데, 만약 동북아개발은행이 창설된다면 어느 정도 그 부담을 덜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북한에 대한 다국적 접근을 통해 개혁 개방을 촉진할 수 있다.

 


05 제기된 문제

 

 지금까지의 논의 과정에서 제기된 주요 문제점은 다음의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이제 각 문제를 차례로 검토해 보자.

 

  | 출자 부담이 문제되지 않는가?

  ADB의 선례를 따른다면 출자 부담이 의외로 크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참고로 ADB의 2001년 말 현재의 자본 구성을 보면 <표 7>과 같다.

  <표 7>에서 (1) 수권자본은 주주총회에서 결의한 금액이고, (2) 청약자본은 실제로 참가국이 주식을 인수하기로 결정한 금액이다. (3) 불입자본은 참가국이 현금으로 주식을 매수한 금액(현금 출자액)이고 5년 분할로 납부하게 된다. 청약자본에서 불입자본을 제외한 나머지가 대기자본(Callable Capital)인데, 이것은 주식대금을 현금으로 납입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은행이 채무이행상 불가피하여 요구가 있을 때 주식대금을 납부하기로 약정하는 금액이다. 그것은 일종의 지급보증과 같은 것이고 현금 지급을 수반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현존 개발은행들이 대기자본금의 불입을 요구한 일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ADB 주주국(株主國)이 지금까지 부담한 현금 출자는 30억 달러, 즉 청약자본금의 7%에 불과하다. 설립 당시의 청약자본금은 10억 달러이고 현금 출자와 대기자본의 비율을 50대 50으로 하였으나 그 후 수차의 증자에서는 현금 출자 비율을 대폭 축소해 왔기 때문에 현재의 7%라는 저율에 이르게 된 것이다(어떤 경우에는 증자 전액을 대기자본으로 한 예도 있었다).

  ADB는 청약자금의 범위 내에서 국제 금융 시장에서 기채(起債)할 수 있는데, 현금 출자가 소액임에도 불구하고 ADB가 발행하는 공채가 AAA의 평가를 받는 이유는 ADB의 주주가 선진국을 포함한 주권 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동북아개발은행을 설립할 경우 역내 참가국의 출자 부담은 얼마나 될까? 이에 대한 대답은 (1) 자본금의 규모, (2) 역내 및 역외 참가국에 대한 자본 배분 비율, (3) 현금 납입자본과 대기자본의 구성 비율, (4) 그리고 각국에 대한 배정 기준(1인당 국민소득, 외환보유고 등)에 달려 있다. 이 요인들이 주어지지 않는 이상 각국의 출자 부담을 확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위에 제시한 ADB의 선례를 따른다면 현금 출자 부담이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필자가 몇 가지 가정을 두고 대략적으로 일본, 미국, 중국, 한국 등의 출자 부담의 범위를 추정해 본 적이 있다. 여기에서는 그 결과를 자세히 설명할 수가 없지만,{註 : 자세한 설명은 필자의 홈페이지(www.dwnam.pe.kr)의 "Why is a NEADB needed?"를 참조} 다만 자본금을 400억 달러로 할 경우 일본의 출자 부담은 대략 12~30억 달러, 중국, 한국, 러시아의 부담은 대략 4~10억 달러 범위 내에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물론 이 출자액은 5년 간 분할로 납입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출자 부담 때문에 동북아개발은행 설립이 어렵다고 판단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ADB는 1966년부터 1999년까지 30억 달러의 불입자본금을 기초로 하여 국제 자본 시장에서 594억 달러를 조달, 역내국에 공급하였다. 불입자본금의 18배에 이르는 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 것은 주권 국가가 주주이므로 공신력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이 참가하지 않으면 그러한 공신력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다.

 

  | 기존 개발금융기관(ADB 등)과 중복되지 않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는 세계은행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중남미개발은행, 아프리카개발은행, 유럽개발은행, 아시아개발은행이 설립되었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유인즉, 지역적 특수성에 적합한 개발은행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동북아의 특수성은 너무나 뚜렷하다. 동북아 경제 발전을 위해 광대한 지역에 분포된 자원을 생산으로 연결하는 인프라 구축이 급선무인데, 중국과 러시아가 너무나 넓기 때문에 기존 개발금융기관의 재력만으로는 방대한 자금 수요를 감당할 수가 없다.

  동북아에는 선진국, 중진국, 후진 지역이 공존한다. 뿐더러 사회주의 국가는 체제 전환의 난제를 안고 있다. 앞으로 중국을 비롯한 동북아 지역에 진출하는 강대국들의 상호 이해와 협조의 필요성이 증대할 것이다. 요컨대 한자 문화권이라 할 수 있는 이 지역이 불행한 현대사를 청산하고 지역 협력을 통하여 지역 전반의 경제 발전을 촉진하자면 이 지역의 특수성에 적합한 개발은행이 필요하다.

 

  | ADB에 동북아 개발을 위한 특별기금을 설치하면 되지 않는가?

  이 질문에 답하자면 특별기금과 자본출자 사이의 차이를 식별할 필요가 있다. 앞에서 본 것처럼 ADB는 창설 이후 1999년 말까지 불과 30억 달러의 불입자본으로 그 18배에 달하는 594억 달러의 융자를 회원국에게 실시하였다. 조금 다른 각도에서 2001년 현재의 ADB 재무제표를 보면 미상환 채무액은 248억 달러인데, 이것은 불입자본금 30억 달러의 8배이고 국제결재은행이 설정한 자본-부채 비율과 일치한다. 다시 말하면 자본금의 경우에는 그 8배의 자금을 조달하여 회원국에 대출할 수 있다. 그러나 특별기금의 경우에는 한 나라에서 받아서 다른 나라로 이전하면 그뿐이고 자본의 경우와 같은 승수 효과가 없다. 참고로 ADB는 1999년까지 회원국으로부터 특별기금 227억 달러를 출연받아 개도국에 전달하였다. 여기에는 아무런 승수 효과가 없다. 뿐만 아니라 ADB가 한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기금을 설립한다는 것은 정치적으로도 쉽지 않을 것이다. 동북아개발은행은 다른 개발은행과 마찬가지로 원조 자금의 기탁을 환영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은행의 본령이 될 수는 없다. 동북아개발은행은 어디까지나 공채 발행을 통한 민간 자금 조달을 본업으로 해야 할 것이다.

 

  | 일본과 미국이 참가하겠는가?

  일본의 회의 참가자들은 당초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지금은 다소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찬성자가 늘어가고 있다. 미국의 경우 ADB, EDB를 설립할 때에도 당초에는 부정적 반응을 보이다가 나중에 찬성으로 돌아서는 패턴을 보여 왔다. 이번에도 만약 일본이 Initiative를 취한다면 미국은 참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반대로 만약 미국이 긍정적 반응을 보인다면 일본은 적극적으로 나올 것이다. 그러므로 이 제안의 성패 여부는 일본과 미국 양국의 태도에 달려 있다는 것이 회의 참가자들의 일반적 관측이다.

  생각건대 일본과 미국은 중국의 광대한 시장과 다양한 투자 기회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일본은 해마다 미국 및 근린 국가와의 교역에서 무역 흑자를 축적해 왔고 세계 최대의 외화 자산국이 된 지금, 과거 역사를 생각해서라도 외화 자산의 '九牛의 一毛'를 동북아 발전을 위해 출자할 명분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미국은 동북아개발은행에 참여함으로써 중국 진출의 제도적 거점을 얻게 되지 얼마 되지 않는 출자 부담 때문에 참가를 거절할 것 같지는 않다. 요컨대 일본, 미국, EU 등이 동북아에 진출할 경우 다자간 협력과 조정의 필요가 커질 것이므로 동북아개발은행과 같은 다자간 협력 기구가 생기는 것을 마다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동북아 경제포럼 참가자들의 절대 다수는 동북아개발은행 설립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일본이 과연 이 제안을 받아들이고 정치적 리더십을 행사하겠느냐에 대해서는 모두가 의문을 던지고 있다. 그것은 결국 경제대국 일본이 앞으로 동북아에서 어떤 역할을 하느냐의 문제와 관련된다. 일본은 과거와 같이 해마다 국제수지 흑자를 내어 미국의 채권을 사고, 동북아에 대해서는 중국 시장과 투자의 선점(先占) 외에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을 수도 있고, 아니면 동북아에서 자국 이익을 추구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 동북아 전체의 경제 발전을 지원하고 역내 국가간의 이해 관계 조절을 도모하는 지도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만약 일본이 후자의 방향을 택한다면 일본 정치 지도자들이 우리가 제시하는 동북아개발은행 설립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충분하다.

 


  9. 우리는 변해야 산다

 


 

   지금까지 동북아 지역 전체의 경제 개발을 촉진하기 위하여 우리 나라를 동북아 물류-비즈니스 중심지로 만들고 동북아개발은행을 설립하자는 제안을 설명했다. 그것은 21세기를 살아가기 위한 생존 전략의 일환으로, 우리에게 근본적인 발상 전환과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전환과 변화란 쉬운 일이 아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해 관계가 얽혀 있을 뿐만 아니라 심리적 저항이 따르게 마련이다. 여기에서는 흔히 제기되는 의문에 대해 필자 나름의 소견을 밝히고자 한다.

 


01 세계화는 잘못된 선택인가?

 

  2001년 9월 11일 미국의 세계무역센터와 국방성 건물을 강타한 알 카에다의 테러가 있었고 미국이 이에 대한 보복으로 아프간 전쟁을 수행하게 된 것을 계기로 하여 세계화에 대한 비판과 반성의 소리가 나타나고 있다. 세계화는 미국이 자기 중심의 기준을 개도국에게 강요하는 책략(策略)이라는 비판도 있고, 세계화가 세계 국가들을 승자와 패자로 갈라 놓았다는 반성도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세계의 변화 방향에 적응하기 위하여 동북아 물류-비즈니스 중심지 구상을 논하고 있고 이 구상을 성공적으로 실현하자면 세계화를 향한 제도 개혁이 필수 조건이라고 말하고 있다. 정부가 제시한 제도 개혁의 내용을 보더라도 외국인 투자를 우대하고, 외국인이 기업하기 좋고 살기 좋은 곳을 만들어 주고, 외국의 학교와 병원을 마음대로 세울 수 있게 하며, 각종 제도는 미국의 표준을 따르는 것으로 되어 있다. 결국 세계화란 외국 지상주의 혹은 외국 숭배가 아니냐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고, 그래서인지 세계화가 잘못된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세계화는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지속될 필연성을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세계화가 선진국의 정치적 책략이기에 앞서 정보통신과 교통 기술의 혁명적 발달이 가져온 결과이기 때문이다. 컴퓨터의 발달로 FAX나 E-Mail은 물론 인터넷에 의해 전 세계의 컴퓨터 사용자 상호간에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어 이제는 어디에서나 어느 때나 문서, 영상, 이미지를 순간적으로 교환할 수 있고 또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사이버 공간'이니 '가상 현실'이니 하여 국경을 초월하는 연대 조직이 형성되고 있으니 이것이 바로 세계화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산속으로 들어가 세상을 등지고 살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물론 이것은 경제 발전의 산물이고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어느 때 어디에서나 주도적 역할을 하는 세력은 있게 마련이고 어느 의미에서는 그것이 필요하기도 하다. 지도 세력이 없으면 무질서와 혼란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통신 수단의 세계화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도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없다. 먼저 그 영향은 국제 무역을 통해 세계 경제에 나타난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우리 나라로부터 수입한 반도체와 일본에서 도입한 기술을 사용하여 중국에서 생산한 컴퓨터를 미국에서 미국 상표로 팔 때, 그것을 어느 나라 제품이라고 해야 하는가? 아마도 Made in China라고 할지 모르나 그것을 정확한 표현이라 할 수는 없다. 요컨대 국경이 불분명해지고 있는 것이다.
  세계화를 대형 다국적 기업의 경영 전략의 산물이라고 하나 개인의 경영 전략도 세계화의 동력이 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차고에서 영업을 시작하여 마침내 IBM을 누르고 컴퓨터 산업의 제왕이 되었고 컴퓨터 운영 장치인 Window는 세계를 제패하였다. 프레드 스미스(Fred Smith)는 1973년에 우편국 업무의 약점에 착목하여 페덱스(FedEx)를 설립한 후 지금은 세계의 모든 나라에서 우편 배달 업무를 하고 있고 연간 10억 개의 소포를 배달하고 있다고 한다. 아이디어와 비전이 있으면 누구든지 세계화의 주역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유능한 기업가에게는 세계화가 절호의 환경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세계화 내지 개방의 영향에 따르는 이해 관계는 고르지 않다. 국내적으로도 수혜자와 피해자가 있게 마련이고 국제적으로도 각종 격차가 생기게 마련이다. 소득의 격차뿐만 아니라 정보의 격차(Information Divide)가 새로운 국제 문제로 등장하였다. 그러나 이처럼 정치적 문제를 제기한다고 해서 그것이 세계화를 거부해야 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세계화에 적응하고 그것을 활용하는 나라는 흥할 것이고 그것에 적응하지 못하는 나라는 낙오될 것이다.

  외국 것이면 모두 좋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우리에게는 취사선택의 문이 열려 있다. 제아무리 세계화라 하지만 인터넷에 범람하는 음란 사이트를 수용해야 할 이유는 없고, 결혼한 부부의 거의 반수가 이혼하는 미국 문화를 따를 필요도 없다. 선택의 기준은 어디까지나 합리성과 유용성, 그리고 우리의 가치관이다. 사실상 우리는 역사적으로 그러한 선택을 끊임없이 해 왔다. 우리 조상들이 입던 한복 대신에 양복을 입은 지도 오래된다. 한복을 아주 버린 것이 아니라 세계 조류에 따라 일상 생활에 보다 편리한 양복을 선택했을 뿐이다. 반대로 서양 사람들 중에도 일본의 스시를 먹고 한국의 김치를 먹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우리가 제도 개혁을 통하여 외국의 방식을 따르자는 것도 외국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보다 합리적이고 우리에게도 필요하고 유익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학 기술의 발달과 경제 발전은 상호 작용하여 인간 사회에 변화를 일으킨다. 그리고 과학 기술 발달의 내용이 변화의 방향을 결정한다. 이 새로운 방향에 재빨리 적응한 나라는 흥하고 그렇지 못한 나라는 패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19세기 말 우리의 조상은 세계의 변화 방향을 모르고 '은둔의 나라'를 지키다가 일본 제국주의의 희생물이 되었고, 북한은 세계화의 변화 방향을 외면하고 구체제를 고수하다가 지금과 같은 경제적 파탄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02 세계화는 민족적 정체성을 파괴하는가?

 

  정부의 제도 개혁이 실현되면 외국 사람과 외국 돈과 외국 상품과 외국 상표와 외국 언어와 외국 생활양식과 외국 사고 방식이 물밀듯이 들어올 것이다. 때문에 우리 고유의 문화, 가치, 전통과 같은 민족적 정체성이 말살되지나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19세기 말 대원군은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병인양요(丙寅洋擾, 1866)와 신미양요(辛未洋擾, 1891) 두 차례에 걸쳐 외국 군함을 격퇴하고 전국에 척화비(斥和碑)를 세우고 개화파를 탄압했다. 그러나 대원군의 쇄국주의는 일본의 침략과 국권 찬탈을 막지 못했다. 그렇지만 일본의 식민 통치 아래에서도 우리 민족은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일제는 창씨개명을 강요하고 우리말과 역사와 문화를 말살하려 하였지만 결국 실패하였다.

  그러한 민족이 세계화의 물결 때문에 정체성을 잃게 될 것인가?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어느 민족도 세계화로 인해 문화적 정체성을 잃을 필연성은 없다. 형식 논리 같지만 개체가 없이 전체가 있을 수 없고 민족 혹은 국가의 다양성이 없으면 세계화의 의미는 성립되지 않는다.

  세계화의 추세에 자극되어 오히려 민족적 혹은 문화적 정체성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냉전 종결 후 수많은 독립국가가 생겨났고, 캐나다의 퀘벡 주와 대영제국의 스코틀랜드는 지금도 독립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그들이 독립국가가 된다 할지라도 약소국가에 불과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립을 원하는 것은 그들의 민족적 혹은 문화적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우리 나라의 상황을 보면 세계화에 따라 소비 행태가 미국을 닮아 가는 경향이 없지 않다. 그러나 보통 나이가 듦에 따라 기호가 한국식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일반적 현상이다. 세계 어디를 가도 한국 식당이 있고 한국 관광객들은 그곳에 들러 김치와 된장국을 먹어야 속이 편하다고 한다. 미국 LA로 이민간 한국인들은 미국 문화에 동화하여 미국식으로 살아갈 것으로 기대됐지만 실은 미국 내에 한국촌을 만들어 한국 문화의 전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각종 민속놀이가 부활되고 국악이 교향악단을 꾸밀 정도가 되었으며 서울 거리에는 옛날의 토담집과 주막을 흉내낸 식당들이 나타났다. 또 각종 전통 음식과 복식이 부활되고 있다. 세계화와 반대 방향의 변화인 것이다.

  세계화에 따라 크게 달라진 것은 국가간의 문화 교류가 확대되었다는 점이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미국의 가수 마이클 잭슨의 음악에 열광했던 것처럼 한국의 사물놀이가 뉴욕과 파리에서 열렬한 박수를 받기도 했다. 외국에서 유행하는 태권도의 종주국이 한국임은 물론이다. 요컨대 외국 문화가 밀려온다 하여 우리의 언어, 풍속, 예술 등의 전통적 문화가 추방되는 것은 아니며 또 추방될 수도 없다. 서로 다른 민족 혹은 국가 사이에 문화의 교류와 융합이 이루어지고 그를 통하여 인류는 경험과 선택의 폭을 넓혀 가고 있을 뿐이다.

  결론적으로 세계화가 민족의 정체성을 파괴한다고 우려할 필요는 없다.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현상은 표면적인 것, 예컨대 햄버거, 코카콜라, 블루진, 대중 음악과 같은 것이고 보다 본질적인 언어, 종교, 문화 등이 하나로 통합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오히려 세계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의 민족적, 문화적 정체성을 다시 보게 만들고 그것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03 리더십이란 어떤 것인가?

 

  우리가 제아무리 제도 개혁을 외쳐도 현 정부나 다음 정부가 그것을 실행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지배적이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정치적 리더십을 기대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리더십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 이념

  먼저 국가 지도자는 국민에게 국가 이념을 천명하여 그것이 국민들의 정신적 구심점이 되도록 해야 한다. 세계를 리드하는 미국에서는 지금까지 38인의 대통령이 나왔는데, 그들은 취임 연설에서는 물론이고 기회 있을 때마다 한결같이 국가 이념을 최고의 사회적 가치관으로 고취해 왔다. 9ㆍ11 테러가 발생했을 때 이 'Melting Pot(인종의 도가니)'의 나라가 무서운 단결력을 발휘한 비밀은 바로 여기에 있다. 국가 이념이 분명치 않으면 국민적 통합이 어렵고 국민적 통합이 없으면 지도자가 바라는 큰일을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지금 우리 나라는 대북 정책과 관련하여 심각한 이념의 갈등을 겪고 있다. 문제는 자유민주 이외의 어떠한 다른 이념과 체제에 입각한 통일을 생각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어떤 논자는 냉전 시대의 자유민주와 지금의 자유민주의 개념은 반드시 같지는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유민주의 기본 개념은 결코 변한 것이 없다. 선거의 자유, 언론의 자유, 집회의 자유, 인권 중시는 자유민주의 기본 개념이고 그것은 자유세계의 보편적인 가치이다. 불행히도 북한에서는 이러한 기본적 자유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데에 우리의 고민이 있는 것이다. 이런 때일수록 국가 지도자, 특히 대통령이 되고자 출마하는 후보들은 그들의 국가관을 명백히 밝혀야 한다.

 

  | 문제 의식

  다음에 국가 지도자는 나라가 당면한 문제를 정의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기본 방침을 밝혀야 한다. 국가가 직면한 문제를 지도자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의 경영 전략이 달라질 수 있다. 국가의 기본 문제는 역사적 경험에 의하여 규정될 수밖에 없으므로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문제 의식에는 공통점이 있게 마련이다. 예컨대 지금 우리의 공통된 문제 의식은 어떻게 하면 우리의 대의정치의 난맥상을 바로잡고 법이 지배하는 질서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정치 지도자들이 어느 정도로 문제를 심각하게 실감하고 있는지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경제 분야에서는 세계화, 정보화, 민주화라는 3대 조류와 이웃 나라 중국의 경제적 도약에 직면하여 우리의 살길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 오늘의 문제 의식이다. 문제의 정체를 이해하고 그갓을 해결하겠다는 사명감과 열의를 가지는 것이 지도자의 요건이다.

 

  | 경영 전략

  문제 의식이 있으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가 경영 전략이 있어야 한다. 이것을 흔히 경륜이라고 한다. 국가 경영에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 기본 요소가 있다. 첫째로 문제 해결의 우선 순위를 정하고, 둘째로 문제 해결을 위한 시스템을 창출하고, 셋째로 시스템을 구성하는 조직의 능률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지도자가 하고 싶은 일은 많지만 쓸 수 있는 인재와 재원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성공한 지도자는 자원 배분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사업 기회의 우선 순위를 판정한다. 즉, 사업 성과가 크고 성공 가능성이 큰 사업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특히 그는 가장 중요한 사업에 가장 우수한 인재와 필요한 자금을 배분할 줄 안다. 그런데 우리가 본 어떤 대통령들은 우선 순위보다 정치적 편의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정치적 명분이나 개인적 치적을 위해 성공 가능성이 희박한 사업에 착수했다가 실패하는 경우도 있다. 정부가 제시한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 실현 방안'을 보더라도 말로는 선택과 집중을 강조하면서도 정치적 편의를 고려하여 모든 사업에 손을 대려 하고 있다. 우선 순위가 낮은 사업이 중요치 않다는 것은 아니다. 밥상을 받고 국부터 마신다 하여 밥의 중요성이 적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만사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다. 요컨대 치세(治世)의 경륜이란 결국 국사의 우선 순위를 떠나서 논할 수 없는 것이다.

 

  | 시스템

  문제를 정의하고 문제 해결의 우선 순위를 정했으면 다음에는 문제 해결을 위한 시스템을 창출해야 한다. 지난날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 개발에 국가 경영의 최우선 순위를 두고 그를 추진하기 위하여 EPB를 창설하고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편성케 했다. 그리고 실효를 거두기 위해 부총리에게 경제기획원 장관을 겸하게 하는 동시에 이례적으로 예산 편성권을 재무부가 아니라 경제기획원에 부여하였다. 이것이 시스템 창출의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한국이 동북아 물류 중심지가 되게 하려면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시스템이 확립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기획 조정 기능이 미약하고 추진 기구도 불명확하다. 지난 10년 동안 2인의 대통령이 정부 조직을 개편했지만 그 성과가 어떠했는지 평가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주변 국가들은 10년 전부터 물류 중심지 건설 계획을 세우고 그 실행에 박차를 가해 왔는데 그 동안 우리는 별로 한 것이 없다. 지난 10년 동안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이룩한 성장력의 여세로 살아왔지만 앞으로의 10년은 살아갈 길이 막연하다. 이제 우리는 21세기를 살아갈 경제 전략과 그를 추진하기 위한 새로운 시스템을 창출해야 한다.

 

  | 조직의 능률

  시스템을 창출한다고 하여 그것만으로 경영 전략이 실천되는 것은 아니다. 시스템을 구성하는 조직의 능률을 극대화해야 한다. 과거에는 국무총리실에 심사분석실을 두어 매 4분기마다 계획 사업의 진도와 문제점을 점검했다. 대통령은 심사분석회의를 주재함으로써 경제 계획 전반의 진행을 조감(照鑑)할 수 있는 동시에, 각부 장관은 자기 소관 업무의 평가를 받게 되므로 업무 수행에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었고, 따라서 공무원들을 밤낮으로 뛰어야 했다. 심사분석회의 이외에도 대통령은 월례경제동향보고, 월례수출확대회의 등을 주재했고, 쉴 새 없이 정부기관과 지방을 순시하고, 그를 통하여 관계 부처의 업무 수행을 감독하는 동시에 민간 부문의 소리와 협조를 이끌어 냈다. 이것을 '개발독재' 방식이라 할지도 모르지만 민주 체제에서도 이런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조직 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는 장관의 임명부터 문제가 된다. 이 점에 관련하여 지난 8월 하와이 회의에 참석한 공무원과 나눈 대화는 이러하다.

  이 공무원의 솔직한 대답이 문제의 핵심을 찔렀다고 생각한다. 우리 나라의 장관들은 나라보다 자신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테면 농림수산부는 농민의 입장을 대변하고 노동부는 노조의 입장을, 산자부는 기업의 입장을 편드는 기관으로 착각하고 있다. 각 부처 장관들은 소관 분야의 국민의 요구를 존중하되 때로는 국가 경제 전체의 목표를 위해 그들의 요구를 접어 두고 소신과 설득으로 국민을 지도해야 한다는 것을 잊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은 장관을 임명할 때 후보자의 정책적 견해나 업무 수행 능력을 평가하기보다는 정치적 편의에 따라 임명하는 것이 관례화되어 있고, 무슨 일이 있으면 국면 전환을 위해 개각을 단행하므로 장관들의 수명은 파리 목숨과 같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위의 공무원 말대로 국가 경제라는 자동차의 새로운 모델을 만드는 곳도 힘이 빠지고 각 부처가 보내오는 부품도 조잡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제안하는 동북아 물류 중심지의 구상은 일개 부처나 공무원의 힘만으로 실현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국가 이념이 투철하고, 국가의 당면 문제를 깊이 이해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시스템을 창출하고, 시스템을 구성하는 조직의 능률을 극대화하며, 특히 장관을 임명할 때 필요한 정책 수행을 약속받고 약속을 이행하지 못하면 지체 없이 갈아 치우는 강력한 리더십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 경영에는 정치적 배경이 있어야 한다. 대통령이 리더십을 발휘하자면 국회 내에 자신을 지지하는 정치 세력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어떻게 하느냐 하는 문제가 있다. 이것은 정치적 리더십의 문제인데, 네덜란드와 아일랜드의 정치 형태가 우리에게 시사를 준다. 두 나라 모두 중도 좌파와 중도 우파의 연립 정부가 관례화되어 있고 그런 가운데 정책의 일관성이 유지되고 있는데, 이것은 양당간의 상호 이해와 인간적 친화가 있기에 가능하다. 우리 나라에서는 한동안 이러한 성숙된 정치 형태를 바랄 수 없을 테지만 적어도 지금과 같은 소모적인 상호 비방의 정쟁을 지양하고 정책 정당으로 변신하는 방법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중앙당 제도를 폐지하라는 말도 있고 정치 자금 출납과 선거 비용을 투명화하라는 주장도 있다.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받고 도덕성과 식견을 겸비한 리더십이 없을 뿐이다. 정치에서도 리더십의 기능은 마찬가지다. 즉, 오늘의 정치가 당면한 문제를 정의하고 문제 해결의 시스템 혹은 제도를 창출하는 동시에 시스템을 구성하는 정당 조직을 개혁하는 것이다.

 


04 우리는 변해야 산다

 

  우리 조사단은 유럽의 유수한 다국적 기업을 방문하여 여러 가지 조언을 들었는데, 그 중에는 한국에 대하여 비판적인 견해도 적지 않았다. 그들이 비판한 내용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늘 들어 온 한국인의 약점들이었다.  

  한국에 진출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식품 다국적 기업의 한 간부는 "한국에 진출한 지 17년 만에 처음으로 이익을 낼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동안 결손을 보면서 한국에 남아 있었던 이유는 그의 아내가 한국인이고 그래도 한국이 변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동안 우리가 변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는 더욱 변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또 다른 CEO는 한국에서 겪은 고난을 털어 놓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상담을 하면 한국인들은 쉽게 OK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 말에 고무되어 그들이 강권하는 폭탄주를 마시고 내키지 않는 음식도 먹어 가며 그들과 친해지려고 가진 고생을 다 했는데, 나중에 돌아오는 말은 No라는 대답이었다. 결국 한국인의 OK는 I understand이지 I accept나 I agree가 아니라는 것을 미처 몰랐다고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것은 언어 내지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문제라기보다 신의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한국인은 합작 투자를 해서 재미를 보게 되면 외국 주주를 몰아낼 궁리를 한다는 평도 있다. 우리는 신의를 지키는 국민이 되어야 한다.

  외국인에 대한 예의에도 문제가 있다. 외국 사람을 지칭할 때, 아이니 애들이니 놈이니 하는 말을 쓰는 것도 문제이고, 친밀감을 표시한답시고 자기가 마신 술잔을 외국 손님에게 내미는 풍습도 그들을 당혹하게 한다. 엘리베이터에 탄 외국인을 보고 "이 아이 코 되게 크다."고 했더니 그가 우리말로 "죄송합니다."라고 하더라는 씁쓸한 이야기도 있다. 우리는 까닭 없는 우월감을 버려야 한다. 세계화 시대에는 내국인과 외국인을 가릴 필요가 없고 다만 직분상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서양 사람들은 남이 무엇을 하면 "wonderful"을 연발하는 것이 습관인데, 우리는 남을 헐뜯기를 더 좋아한다. 최근 두 사람의 총리 서리가 그릇된 처신이 문제가 되어 국회 인준에서 부결되는 사태가 발생했는데, 부결 자체는 탓할 일이 아니지만 부결한 국회의원 자신들의 몸가짐은 어떠냐 하는 의문의 소리도 적지 않았다. "'예수께서 죄 없는 자만이 이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 하셨을 때 돌을 던지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는데, 돌을 던질 사람은 한국인이다."라고 혹평한 친구의 말이 생각난다. 남이 안되는 것을 좋아하고 남을 헐뜯기를 일삼는 한국인의 습성을 고치지 않고서는 우리 정치가 선진화될 수 없고 존경받는 한국인이 되기도 힘들 것이다.

  이러한 한국인의 단점을 뒤집으면 협력할 줄 모른다는 또 하나의 단점이 드러난다. 필자는 과거 어느 미국 대사에게서 한국인은 Sandy하다(모래알같이 흩어진다)는 말을 들었고, 일본의 전 외상에게서 한국인과 일본인이 1대 1로 맞붙으면 한국인이 이기지만 3대 3으로 맞붙으면 일본인이 이긴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우리는 협력을 양보나 저자세로 생각하는 경향을 갖고 있는데, 그것이 수평적 협력을 어렵게 만든다. 협력이란 공동의 목표를 위해 노력과 부담을 나누는 것이지 저자세와는 다르다. 모든 일이 네트워크화되고 팀워크화되는 21세기에 협력을 체질화하지 않으면 개인이나 단체나 국가나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요컨대 우리는 변해야 산다. 누구에게나 신의를 지키고 예의 바르고 남을 헐뜯지 말고 협력하는 국민이 되어야 세계에서 존경받는 일류 국가가 될 수 있다.

 


  에필로그

 월드컵이 보여준 것


 

 월드컵은 한국 사람이 경험한 사상 최대의 축제의 하나이다. 이제 우리 축구는 반세기의 와신상담(臥薪嘗膽) 끝에 드디어 세계 정상급으로 떠올랐다.

  태극 전사들의 약진을 보고 필자 나름의 감회가 없지 않았다.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지금 우리 나라가 직면한 기본 과제는 세계의 변화 방향에 슬기롭게 적응해 가는 것이다. 그 동안 우리 사회는 이를 위하여 각 분야에서 바람직한 변화를 추구해 왔고 그 성과도 적지 않았다. 필자는 그 변화의 모습을 월드컵에서도 보았던 것이다.

  먼저 우리는 사상 처음으로 외국인을 감독으로 영입하였고 그의 탁월한 지도력으로 우리 축구는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이제 우리 축구는 32개국 열강 중에서 중심적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고, 히딩크 감독의 덕택으로 외국인에 대한 편견이나 두려움도 사라졌다. 심지어 히딩크를 대통령으로 만들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것이 세계화를 향한 국민들의 의식 변화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는 첨단 정보 매체의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인터넷을 통하여 '붉은 악마'의 자발적 연대가 이루어졌고, TV와 전광판을 통하여 거국적 응원 열기가 달아올랐으며, 경기 운영에 동원된 우리 나라의 IT 기술 수준에 세계는 놀라움을 표시하였다. 분명히 우리 나라의 정보화는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우리의 정치 현실을 보면 기가 막힐 지경이지만, 시민들의 민주 역량은 경탄할 만하다. 붉은 악마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 낸 연대이다. 붉은 악마와 500만 시민들의 열광적인 응원은 한국인들의 단결력을 세계만방에 과시했고, 이를 본 외국인들은 아마도 1997년 외환위기 때 국민들이 금과 귀금속을 아낌없이 팔아서 국가 채무상환에 바쳤던 일을 상기했을 것이다. 민주 사회는 다원적 사회이지만 공동 목표를 위해 한마음 한뜻으로 통합될 수 있다는 것을 시민들이 보여 주었다.

  민주 시민들이 보여 준 성숙도 또한 인상적이다. 응원에 열광적이었던 군중들이 경기가 끝나자 쓰레기를 말끔히 치우고 신체부자유자들에게 길을 비켜 주며 질서 있게 경기장을 떠나가는 모습을 보고 외국 기자들은 감격 어린 기사를 썼다. 반미 운동을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뿌리에서부터 자라고 있는 것이다.

  광주에서 우리의 태극 전사들이 무적함대 스페인을 격파하고 4강에 진출하던 날, 강원도 용평에서는 한국무역협회 주최와 매일경제신문사의 후원으로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 실천 전략'이라는 대토론회가 진행되고 있었다. 학계, 언론계, 재계, 정계에서 참가한 30여 명의 저명한 지성들이 열띤 토론을 전개하고 있었는데, 참가자들의 문제 의식은 하나였다. 그것은 바로 이 책에서 제기한 문제 의식이다. 즉, 정보화, 세계화, 민주화라는 3대 역사적 조류를 타고 아시아 시대의 도래와 중국의 경제적 약진에 어떻게 대처하느냐 하는 것이다.

  필자는 대처 방안의 하나로 우리 나라를 동북아 물류 중심지로 만드는 구상을 이 책에서 설명하였다. 우리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가 물류 중심지가 되는 데에 적합하다는 발상에서 출발하여 유럽과 아시아의 주요 물류 중심지를 돌아보고 많은 자료를 수집 분석하여 우리 나라가 물류 중심지가 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연구해 왔다. 우리의 결론은 대체로 희망적이다. 그러나 우리의 목적을 달성하자면 경제 운영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는 결론이다. 그것은 비단 한국을 물류 중심지로 만들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우리가 21세기를 살아가자면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과제이다. 그런 의미에서 물류 중심지의 실현이 만병통치는 아니지만 21세기 국가 생존 전략의 주요 부분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한국을 살기 좋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만드는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외국 기업인들에게 한국을 '투자 천국'으로 만들겠다고 여러 번 약속하였다. 그러나 이 책에서 밝힌 바와 같이 우리의 현실은 '투자 천국'과는 거리가 너무나 멀고, 그에 도달하자면 달라져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 그런데 변화에는 고정 관념과 구습의 타파가 요구되므로 저항과 마찰과 혼란이 따르게 마련이고 그를 극복하기란 쉽지 않다. 때문에 우리 나라의 앞날을 비관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이 월드컵에서 보여 준 슬기로움을 생각한다면 국민들의 이해(理解)와 단합된 결의와 실천을 이끌어 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체념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바로 히딩크와 같은 지도자가 있으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유럽의 물류 중심지를 돌아보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러나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정치, 기업, 노조 지도자들이 국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사회적 연대를 이끌어 내는 경륜과 지도력이었다. 앞으로 이러한 지도력이 발휘되느냐 않느냐에 따라 우리 나라의 동북아 물류 중심지 실현 방안의 성공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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