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자' 보다 다자간 대화 우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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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4.19 (화)  동아일보  A31면'시론'  

 


  

최근 청와대가 발신한 동북아시아에 관한 메시지에는 두 가지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하나는 균형자론이고 다른 하나는 다자간 안보체제에 관한 것이다. 균형자론에 논란이 일자 해명에 나선 문정인 동북아시대위원회 위원장은 최근 언론을 통해 두 문제의 상관 관계를 설명했다.

문 위원장은 한국은 동북아의 세력 균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국력은 없고 다만 주변국과의 신뢰 구축을 통해 다자간 안보 협력 질서를 모색하자는 것이 균형자의 개념이고 , 여기서 균형이란 '힘의 균형'이 아니라 상호 대립하는 국가들 간의 '인식과 가치의 균형과 조정'을 의미하는 것"이라 했다. 공감이 가는 말인데 그렇다면 동북아의 다자간 대화가 그 방법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한편 문 위원장은 만약 미국이 대(對)중국 포위정책을 전개하거나 대북한 봉쇄와 체제 전환을 강행하고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고무하게 된다면 동북아 질서는 심각한 균열을 피할 수 없게 되고 균형자론과 한미동맹은 심각한 모순관계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문 위원장은 ‘만약’의 상황을 현실로 착각해 청와대가 이미 모순 관계에 빠진 것이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동북아 4강 역학관계 급변

지금 동북아에 이상 기류가 흐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등 4강의 역학관계가 급변하고 있는 가운데 상호 경계와 불신의 골이 깊어지고 있고, 특히 일본은 한.중 양국과의 관계를 긴장상태로 몰아 가고 있다.

이러한 4강에 둘러싸인 한국은 외교적으로 고립된 상태에 있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과 역사왜곡은 한국을 깔보고 있다는 증거 이고, 중국 또한 한국과의 우호관계를 평가하면서도 전통적 중화(中華)사상으로 우리를 대하고 있다. 그런 마당에 미국과의 동맹관계와 전통적 우호 관계는 금이 갔고, 심지어 미국에서 “한국과의 우호적 결별을 준비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고립을 자주의 기회로 이해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4강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할 것이냐 하는 것이 우리의 문제이다.

약소국이 국익을 위해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강대국과의 관계를 조정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다자간 협의체를 활용하면 다소간에 발언권과 영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2국간 대화보다 다국간 공론에서는 어느 정도 보편 타당한 논리가 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정부는 UN 총회나 국제회의, 정상회담등을 통해 한결같이 다자간 안보협의체 창설을 제안했다. 

1994년 김영삼 정부의 제안으로 '동북아안보대화(NEASD)'라는 포럼이 탄생했는데 이를 통해 내외의 전문가들이 활발한 토의를 계속해 왔다. 특히 주목할 점은 유럽안보협력기구 (OSCE)의 경우와 같이 양국간 군사동맹과 같은 기존 질서를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다자간 안보협의체의 구성이 가능하다는 것과, 지금의 6자 회담을 동북아 안보협의체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논점이다.

6자 회담을 안보협의체로

다자간 안보협의체 제안에 대해 한국, 일본, 러시아는 제각기 다른 동기에서 찬성하고 있으나, 중국은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다가 다양한 국제문제가 발생하는데 자극을 받아 최근에는 다소 긍정적인 반응으로 선회하고 있다. 미국 정부 또한 다자간 협의의 효용(效用)을 불신하고 있지만,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6자 회담의 지속을 강조하는 이면에는, 동북아에 대한 전략적 포석으로 다자간 협의체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동북아에서 한국이 응분의 지정학적 역할을 하고 남북 통일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자면 동북아 다자간 안보체제를 발전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청와대가 균형자가 아니라 다자간 안보협력체를 강조 했더라면 의미 있는 메시지가 되었을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