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성장론자와 분배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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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2월  23일 (목)  


 

나는 며칠 전 공인으로서 오랜만에 매스컴에 말려 든 일이 있다. 국회의원들의 연구모임인 '시장경제와 사회안전망 포럼'에 나가 "한국경제의 기본과제와 경기대책” 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고 이어서 변형윤 서울대학 명예교수는 "시장경제가 만능인가”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시간이 없어 나에 대한 국회의원 한 분의 질의에 응답하고 강연회가 끝난 것이 전부인데 도하의 신문들은 두 사람이 "성장이냐 분배냐”라는 주제를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인 것처럼 대서특필한 것을 보고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전에 배포한 나의 강연 원고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나의 주제는 우리경제의 4대 기본과제와 경기 대책에 관한 소견을 말한 것이고 분배에 관하여는 말미에 가서 성장이냐 분배냐 하는 논쟁은 부질없는 논쟁이라고 짤막하게 풀이한 것뿐이다. 만약 주최자가 사전에 성장이냐 분배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 말해 달라고 주문했더라면 나는 그 점에 초점을 두고 강연 원고를 준비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전에 보내온 안내장에는 그런 말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오늘 신문 보도를 보니 대통령이 "성장론자들이 분배론 자들을 몰아붙일 상황이 되느냐”고 말했다 하고 "우리가 지향해야 할 길은 양극화 현상을 막는 것”이라면서 "학자 출신과 전문가들이 논리적 검증을 거쳐 내년에 우리가 어떤 어젠다를 가지고 갈 것이냐를 판단해 보고하라”는 지시도 했다고 한다. 대통령은 '5세 남아 아사' 사건에 충격을 받아 이런 말씀을 했다 하는데 아마도 전기 강연회에 관한 매스컴의 보도와도 관련이 있는 것 같아 해명과 조언이 필요하다고 느껴졌다. 실은 나 자신은 강연 원고에 이렇게 썼다.

"불황기에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사회 안전 망을 튼튼히 하는 일입니다. 보건 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내년의 기초생활 보장 급여 대상은 146만 5천명, 급여 총액은 2조4263억 원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 아직도 결식 아동이 10만 단위로 있다는 보도에 접할 때 마다 실망을 금할 수 없습니다. 기초생활 보호의 대상 선정과 보호 방법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재활 부조, 직업 훈련, 노인 보호 등 사회 복지 서비스를 확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쓴 필자는 5세 남아 아사 사건의 보도를 보고 다시 한번 충격, 아니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1인당 소득이 1만 3천불이고 쌀이 남아서 처치 곤란한 이 나라가 어찌하여 어린 아이를 굶어 죽게 내버려 두었느냐 하는 것이다. 이것은 기초생활 보호법의 운영에 문제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성장주의와 분배주의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다만 경제운영에 문제가 있을 뿐이다.

분배문제에 관하여는 필자가 [월간 조선] 새해 1월호에 실린 좌담 (여기에서도 잡지사가 부친 표제와 내용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에서 상세히 설명해 두었는데 시장경제하의 분배원칙은 첫째로 생산물의 시장가치 창조에 대한 기여도에 따라 차등 분배를 한다는 것, 둘째로 절대 빈곤은 그 이유가 어디에 있던 공동체의 노력으로 없애야 한다는 것, 셋째는 기회 균등의 원칙인데 시장 경제 체제하에서는 농부가 기업주가 될 수 있고, 중소기업이 대기업이 될 수도 있고, 노동자가 경영자가 될 수 있고, 빈자가 부자로 될 수도 있고 이러한 가능성이 열려 있는 사회에 있어서는 결과의 평등보다 기회의 평등이 중요하다는 것 등이다. 그러나 시장경제 하에서는 계층간의 분배 격차를 영속화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그를 시정하기 위해 상속세를 강화하고 교육기회를 균등화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해 두었다.  부언하건대 시장경제가 만능이라고 생각하는 경제학자는 없다. 변 교수의 강연 제목은  경제학자 들을 두고 한 말은 아니라 본다. (1817 공백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