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청산' 역사가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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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9월 18일  동아일보 A7면 '시론' 게재 

 

 과거사 규명을 놓고 정쟁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이 1947년쯤이라면 국회는 당연히 친일파 숙청에 나서야 한다. 그러나 광복 이후 이미 반세기가 지났고 그때 살던 사람들은 거의 다 죽었다. 광복 직후 친일파 청산을 하지 못한 이유를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관념론자들은 북한의 김일성은 광복직후 친일파를 숙청해 민족정기를 세웠는데 남한의 이승만 대통령은 친일파를 관용하고 중용해 민족정기를 말살했고 그 결과 대한민국은 민족적 정통성이 없는 나라가 되고 말았다고 주장한다. 민족정기는 물론 하나의 관념이다.

역사적 현실 무시한 관념론

현실론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 소련 공산주의 세력의 남하를 저지하는 것이 최대의 민족적 과제라고 믿었던 이 대통령은 친일 인사들을 숙청하기 보다 포섭하는 것이 반공 정책에 유리하다고 판단했고, 정부 운영을 위해 일제강점기에 행정 경험을 한 사람들을 기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뿐 아니라 국군을 창설해야 했는데 군사교육을 받은 사람이라고는 이청천 장군을 비롯한 소수의 광복군 장성, 그리고 만주군 및 일본군 출신밖에 없었다. 그래서 만주군과 일본군 출신이 국군창립의 주역이 되었던 것이다.

관념론과 현실론의 어느 편이 발전적이었는지는 결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민족정기를 세웠다는 김일성은 소련이라는 외세를 끌어들여 동족상잔의 6.25동란을 일으켰고, 유엔군과 국군의 반격에 쫒기게 되자 중공이라는 또 하나의 외세를 끌어들였다. 게다가 김일성 부자는 북한 사회를 지금같은 비참한 상태로 만들었다. 반면 현실론이 이끌던 남한은 곡절 속에서도 지금같이 발전했다.

국회가 과거사를 청산하겠다는 것은 관념론의 연장이다. 과거사의 줄거리와 주요 친일파는 이미 드러났지만 세부 진실을 밝히기는 쉽지 않다. 관점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민족사관과 '식민사관'의 대립이 있고, 4.3사건을 남로당 주도의 '무장폭동'으로 보는 견해와 민중의 자생적 '무장봉기'로 보는 견해가 맞선다. 그런데도 일제강점기의 군인과 경찰등을 대상으로 친일파를 가려내겠다고 한다. 그 엄청난 행정 부담과 그 과정의 시끄러움은 고사하고 설사 친일파를 가려냈다 해도 판정에 승복하지 않는 사람들은 후일 현정권이 정략적 동기에서 한 일이라며 오히려 그들의 과거사를 규명하자고 나설지도 모를 일이다.

친일파 후손들의 연좌 여부도 문제인데 열린우리당은 처벌 목적이 아니니 연좌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당의 신기남 의원은 어째서 부친의 친일이 드러나자 의장직을 그만둘 수 밖에 없었는가? 형사상의 연좌는 아니더라도 정신적 처벌의 연좌임에 틀림없다. 먹고 살기 위해 순응한 사람의 자손에게까지 상처를 주고 죽은 사람을 부관참시 한들 관념론을 만족시키는 것 외에 무슨 실리가 있을까.

학계에 맡기고 나라일 챙겨야

그러면 과거사를 덮어두자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그것은 역사가에게 맡기라고 할 뿐이다. 역사학자들이 재력이 없고 정부 문서에 접근하기 어려워 연구하지 못하는 면도 있다. 정부는 재정적으로 역사학자들을 돕고 그들이 요구하는 정부문서와 역사자료를 공개하도록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 정치적 간섭없이 자유롭게 연구하고 논쟁하며 쓰는 가운데 사적(史蹟)이 축적되고 반역자들의 진상이 드러날 것이다. 반역자들은 그야말로 역사의 심판을 받고, 국민은 망국을 자초한 역사적 배경과 원인을 종합적으로 성찰할 수 있을 것이다.

21세기 세계화 시대에 다른 나라들은 경제 경쟁과 국익 수호에 여념이 없는데, 우리나라는 정치 경제 사회 외교 안보 각 방면에서 위기적 현상을 보이고 있다. 우리가 풀어야 할 난제가 쌓여 있는데 이 시기에 무엇 때문에 정치권이 역사를 심판하겠다고 나서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결국 위정자들의 철학의 빈곤에서 오는 현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