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통합과 국가 이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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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4월 7일 (수)  

서강대학교 오피니언 리더스 프로그램(OLP) 과정 강연 .

 


 

 

<분열과 혼돈>

검찰의 조사로 정치적 부패상이 백일하에 들어 나서 정당, 국회에 대한 불신과 혐오가 극에 달했을 때 국회에서는 193대 2라는 절대다수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어 헌법 재판소로 넘어가자 이 나라는 분열과 혼돈의  소용돌이에 휘 말렸다.  탄핵을 반대하는 여당 (정신적 ?)은 탄핵가결을 의회 쿠데타, 헌정 중단, 민주주의 부정으로 규정하고 있고 탄핵을 찬성하는 야당은 헌정의 수호이고 의회민주주의의 관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탄핵을 반대하는 시민단체는 촛불 시위를 주도하였고 국민의 70%가 그에 동조했다는 여론 조사가 있는가 하면 탄핵에 찬성하는  맞불 시위와 방송매체의 편파 방송 시비도 적지 않았다.

탄핵 시비가  아니더라도 이 나라는 갈래 갈래로 찢겨져 있다. 친북 대 반북, 친미 대 반미, 민족주의 대 세계주의, 노동자 대 사용자, 호남 대 영남 등과 같은 대립 갈등이 계속되고 있는데 이것을 민주사회의 다원화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이 들어선 이후 그의 “코드”와 “편가르기” 정치가 다양한 대립 갈등의 한편을 진보, 다른 한편을 보수로 양극화 했고, 양방의 이념적 특징이 들어 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진보와 보수의 개념이 명확한 것은 아니다. 예컨대 중국에는 천안문 사건 외에도 국내외에서 민주화를 추진하는 세력이 있고 북한 안팎에도 그러한 운동이 있다. (황장엽씨를 포함해서), 그들이 진정한 의미의 민주화를 추구하는 이상, 상식적으로 그들은 진보세력이지 보수세력이라고 볼 수는 없다. 헌데 남한에서는 민족의 이름으로 북의 공산 독재체제에 동조하거나 관용하는 세력을 진보라 하고 그를 비판하는 세력을 보수 혹은 수구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보와 보수라기보다 차라리 좌파와 우파로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사실상 우리 주변에는 우파를 가장한 좌파도 있고 좌파를 가장한 우파도 있다. 좌파라 하면 색깔론이라 하여 펄쩍 뛰는 사람도 있고, 보수라 하면 진보적 보수라고 얼버무리는 사람도 있다. 각 정당의 이념적 정체성이 모호하고 어떤 정당은 분명히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위장하고 있다. 이러한 이념적 불투명이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법치주의와 위기 >  

두 말할 필요도 없이 대한민국의 국가이념은 자유민주주의이다 자유민주주의는 법치주의와 의회주의를 양축(兩軸)으로 하고 있는 것인데 탄핵 사태로 빚어진 혼란을 보면 이 양축이 무너지고 있다는 느낌을 금할 수 없다 대통령이 선거법을  위반했다는 선관위의 결정을 스스로 무시하고 있고, 최근 헌법재판소가 사범대학 출신 임용시의 가산 점이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는데 그것을 수용하는 분위기도 아닌 것 같다. 선거법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규정하고 있는데도 일부 공무원과 공직자는 공공연하게 그를 위반하고 나섰다. 정부가 촛불 시위, 맞불 시위가 위법이라고 했는데도 그 들은 데모를 강행했고 오히려 법을 집행하려는 정부를 反민주라고 성토하고 있다. 교원노조는 법을 무시하고 공공연하게 민주노동당을 지지하고 나섰다. 법의 권위가 이처럼 추락하면 앞으로 어떻게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민생의 안정을 기할 수 있단 말인가 ?

이러한 反 법치주의에 대한 반응도 각각이다.  법을 무시하는 정치세력은 우리 사회의 기득권 세력을 타도하고 지배세력을 교체하기 위해서는 불법도 불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일종의 혁명이다.  

또 어떤 사람은 과거의 반 민주  정권도 그들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법치주의를 내세웠고 오늘의 법치주의도 수구세력의 논리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의 사회질서를 군사정권시대의 사회질서와 같다고 보는 것은 시대착오적이고 그 동안의 민주화 과정을 무시하는 일종의 허무주의이다.

그들의 주장대로 한 편에서 법을 무시하고 혁명적 행동을 한다면 다른 한편에서도  법을 무시하는 반혁명적 행동이 일어날 것인데 이렇게 되면 민주주의는 완전히 파괴되고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원래 혁명과 독재와 폭력을 지양해야 한다는 인류의 자각에서 민주주의가 태어난 것이 아니었던가? 

정말로 시민 혁명을 꾀한다면 차라리 이념적 색깔이나 목적을 들어내고 혁명을 하겠다고 공언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은 진실을 알고 선택할 수 있지 않은가. 혁명이 아니라면 법치주의와 의회주의의 룰을 지켜야 한다. 

<의회주의의 위기> 

지금 우리의 의회정치의 실상은 어떠한가? 필자는 야당이 탄핵 가결을 밀어 부친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헌정의 중단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탄핵안이 헌법재판소의 판결 절차를 밟고 있고, 법에 따라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권한을 별 탈 없이 대행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것을 말해 주고 있지 않은가?  헌정 중단이란 혁명, 내란등에 의하여 헌법이 무효화한 상태를 이름이다. 어쨌든 탄핵의 가부를  헌법재판소가 결정할 것인데 그 후에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탄핵 이후 국민의 여론을 무시하고 탄핵을 주도한 야당은 自中之亂에 빠져 있고 탄핵에 찬성투표를 던지고도 여론이 악화하자 탄핵 철회를 주장하는 무책임한 의원들도 있다. 정치개혁을 소리 높게 외치던 정당이 의장 석을 점령하여 실력으로 의사를 방해하며 그것을 민주 수호라 하고 국회의장이 법에 따라 경위권을 발동한 것을 의회 쿠데타라고 말하고 있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마약 그들이 다가오는 총선에서 국회의 다수당이 되었을 때 야당들이 물리적으로 議事를 방해하고 당신들이 한 것과 똑 같은 짓을 한다면 무슨 명분으로 그들을 비난하고 반대할 수 있는가-하고. 그러한 악순환이 계속되는 한 이 나라의 의회정치는  제자리 걸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들은 민주를 수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한다. 그러나 실질적 여당으로서 대통령에게 사태 수습방안을 건의한 일이 없고 물리적 의사 방해로 일관했다. 자기네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불법도 불사하겠다는 태도는 역시 혁명의 논리와 같다. 민주 수호는 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민주 수호를 위해 국회가 절대적 다수결로 가결할 안건이라도 사안에 따라 헌법재판소에서 재심하는 제도가 있지 않은가?

<무엇을 향한 통합이냐>

어쩌다가 이 나라가 이 꼴이 되었을까? 갈갈이 찢어진 이 나라를 통합하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정치인들은 저마다 국민통합을 강조한다. 그러나 무엇을 향한 통합인지를 말해 주지 않는다. 목표와 방향이 없는 통합이란 있을 수 없지 않은가? 다시 말하면 통합에는 어떠한 목표와 구심점이 있어야 한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통합이란 모든 국민들의 생각과 행동을 하나로 통일하자는 전체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해관계와 견해와 입장이 다르더라도 공동의 발판 위에서 같은 목표를 지향하자는 통합이다. 달리 말하면 孔子가 말하는 和而不同의 세계이다.

그러면 그 구심점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나라 마다 건국이념 혹은 국가이념이 있다.  바로 그것이 국민들의 정신적 구심점이 되는 것이다. 국가이념은 수레 바퀴의 중심축(pivot) 혹은 부채의 사북에 비유할 수 있다. 바퀴에는 여러 개의 살(spoke)이 있는데 그것들이 중심 축으로 통합되어 있기 때문에 바퀴가 구를 수 있고 수레를 움직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다원적인 이해관계가 국가이념으로 통합되어야 그 나라는 건강하고 힘있는 나라가 된다. 위에서 말한 여러 가지 갈등과 대립의 문제는 여러 개의 살(spoke)과  같은 것이고, 따라서 그것들이 국가이념이라는 구심점으로 수렴될 때 국민 통합이 가능해 진다.

다시 말하거니와 우리의 국가이념은 자유 민주주의이고 그에 기초하여 민주적 대의정치와 시장경제 체제가 운용되고 있다. 이러한  우리의 국가 이념은 지구촌의 보편적 가치와 일치하는 것이다. 그러면 자유민주주의 기본 원리는 무엇인가. 필자는 여기에서  정치학 원론을 강의할 생각은 없다. 다만 오늘의 이념 갈등이 주로 시장경제와  남북관계에 대한 견해 차이에서 유래하고 있는 만큼 이 두 가지 사항에 대하여 사견을 말해 보려고 한다.

<시장경제의 원리와  원칙>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시장경제는 경쟁을 속성으로 하는 경제 체제이다. 그런데 경쟁이 있으면 반드시 승자와 패자, 강자와 약자, 부자와 빈자가 있게 마련이다. 이러한 2원화를 어떻게 관리하느냐 하는 것이 국가운영의 기본과제가 된다. 승자가 패자를 멸시하고,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고, 부자가 빈자를 돌보지 않으면 자유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 가진 자와 없는 자의 양극화 현상에서 공산주의 독재체제가 생겨났는데 이 체제하에서는 빵과 자유가 양립할 수 없고 결국 두 가지를 모두 잃게 된다는 것이 20세기 공산주의의 장대한 실험 결과였다.

그러나  빈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부자를 배척하면  부자가 되어 큰 일을 해 보겠다고 모험과 혁신을 시도하는 기업가 정신을 꺾게 되고 경제사회의 발전을 제약한다. MicroSoft 의 빌 게이트는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는데 그것은 그가 컴퓨터의 사용을 전세계에 보급하여 세상을 바꾸어 놓은 위대한 성취의 결과이다. 그는 그 막대한 재산을 저승으로 가지고 갈 수는 없다. 결국은 사회로 환원하게 될 것이다. 

또 하나의 예를 들자. 서민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의료수가를 일률적으로 통제하면, 지금 나타나고 있는 현상과 같이, 내과와 외과를 지망하는 학생이 줄어들고 의사들이 위험 부담이 큰 의료 분야를 기피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결국에는 의학과 의술의 발달이 저해되고 부자 뿐만  아니라 서민층을 위한 의료 서비스의 개선도 바랄 수 없게 된다. 평준화의 허점이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경쟁과 자유를 적절히 조절해야 시장경제는 발전과 향상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평준화를 위해 경쟁을 봉쇄하면 발전과 향상이 없는 반면 경쟁의 공정성을 무시하면 약육강식의 사회가 된다. 이러한 기본 원리에서 정부의 경제운용의 네 가지 원칙이 도출된다.

첫째는 자율과 경쟁의 원칙이다. 정부는 가급적 민간의 자율적인 경제활동을 창달하고 사회 각면에서 경쟁을 유도해야 한다. 정부의 규제가 적고 민간의 창의와 이니시어티브를 존중하는 나라일수록 국제 경쟁력이 강하고 국민들의 생활 수준이 높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지난 수년간 정부의 규제완화가 경제정책의 주요과제의 하나였고 실제로 규제가 적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도 한국은 규제 과다로 기업하기 힘든 나라라는 내외의 정평을 면치 못하고 있다.

둘째는 공정경쟁의 원칙이다. 경쟁의 규칙을 만들어 주고 그를 위반하는 자를 징계하는 것이 정부의 임무이다. 정부가 정치적 편의를 위해 범법 행위를 묵인하거나 관용한다면 그 자체가 불공정 경쟁의 원인이 된다. 일부 지역이나 집단의 이기주의에 굴복하여 법을 공평하게 시행하지 못하면 무질서와 포퓨리즘에 빠지게 되고 독재를 유발할 위험이 있다. 흔히 악법도 법이냐 하는 질문이 있는데, 악법이면 고쳐야 한다. 그러나 고치는 것도 법적 절차에 따라 하는 것이 의회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다.  법치주의가 살아 있지 않으면 정의와 질서와 합리를 동시에 추구할 방법이 없다..

셋째는 공정 분배의 원칙이다. 무엇이 공정한 것이냐가 문제인데 분배 정의에 관한 철학적 논의는 분분하지만 자유경제체제하의 분배에 관하여는 학자들이 대체로  세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1) 생산 기여도에 따른 차등분배의 원칙.   생산물의 시장가치 창조에 대한 기여도와  그를 위한 노력과 투입 비용에 따라 차등 분배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업단위로 생산 요소 (자본, 노동, 토지, 기술, 경영)의 생산기여도를 측정하는 것은 말과 같이 쉽지는 않고 사회적 생산물에 대한 기여도를 측정하기는 더욱 어렵다. 거기에는 경제적 고려 이외에 가치판단의 문제가 개입하기 때문이다. 기업 차원의 분배에 있어서는 노.사간의 분배가 중심 문제인데 노동에 대하여는 차등 분배의 원리에 따라 노동의 생산성을 고려하지만, 그 밖에 노사 투쟁, 아니면  공동체의식, 정부 정책  등 생산 기여도 이외의 요인이 임금 결정에 영향을 주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므로 기업은 경영을 투명화하고 노동은 생산성 기준을 존중하여 상호이해와 상호 협력으로 노사간의 분배를 결정하는 것이 공생 공영의 길이 된다. 한편 기업의 이윤을 부인하면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가치물을  창조하려는 의욕이 없어 지고 기업이 존립할 수 없게 된다.

(2) 생활 보호의 원칙.  그 이유가 어디에 있던 절대 빈곤은 없애야 한다. 지체부자유자 뿐만 아니라 실업자. 탈북자, 이북 동포 들에게도 나눔이 있어야 한다.

(3) 기회 균등의 원칙.   시장 경제체제 하에서는 농부가 기업주가 될 수 있고, 중소기업이 대기업이 될 수도 있고, 노동자가 경영자가 될 수 있고, 빈자가 부자로 될 수도 있다. 이러한 가능성이 열려 있는 사회에 있어서는 결과의 평등보다 기회의 평등이 중요시된다. 자신의 불우를 전적으로 사회의 책임으로 돌린다면 자신의 창의와 노력과 향상의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는 결과가 된다.

그러나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계층간의 분배 격차를 영구화하는 경향이 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것은 옛말이고 지금은 부유한 부모를 가진 자녀들이 출세하고 유복해질 확률이 크다. 이 불공평은 시정되어야 한다. 그 방법은 상속세를 강화하고 교육기회를 균등화 하는 것이다.

성장 우선이냐 분배 우선이냐 하는 논쟁이 있는데  만약 공정 분배가 아니라  균등 분배를 의미한다면 경제성장은 멈출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분배원칙을 추구하면 성장의 요인이 될 것이다. 성장 없는 분배, 분배 없는 성장은 허상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의 분배상태를 개선하자면 먼저 경제 성장을 촉진하여  실업자를 줄이는 일부터 해야 한다. 다음에 빈부 격차를 줄이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넷째의 사장경제 운영원칙은 시장 보완의 원칙이다. 사회 문제를 시장 기능만으로 해결하지 못할 경우  경제학자들은 그것을 ‘시장 실패’라 한다.  시장기능이 교육, 환경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시장의 기능을 보완하는 것이 또한 정부의 역할이 된다. 그러나 그 방법에 있어서는 직접 규제보다 시장 친화적인 방법을 사용할 때 보다 더 효율적인 경우가 많다. 일례로 노인을 보호하기 위해 버스의 무임승차를 의무화한 결과 버스가 노인 승차를  기피해서 노인들이 애를 먹었다. 정부가 승차권을 구입하여 노인에게 보내 주자 그런 일은 없어 졌다.  그래서 ‘시장의 실패’보다 ‘정부의 실패’가 더 큰 문제라는 주장이 만만치 않다.

역대 우리 정부는 대체로  이상의 4대 원칙에 따라 정책을  추진해 왔고 그 결과 1인 당 소득 1만 불의 고지에 도달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위의 원칙에 위배되는 정책이 적지 않고 시장경제체제 자체를 적대시하는 세력이 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경제가 2만불 고지를 바라 보고 변천하는 국제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위의 원칙에 입각한 특단의 경제 개혁이 필요한데 지금의 “개혁 세력”은 그러한 개혁을 외면하고 있는 것 같다.

<대북정책의 원리와  원칙>

다음에  남북 문제를 생각해 보자.  남북 통일을 가로 막고 있는 근본 요인이 남-북의 이념과 체제의 차이에 있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북은 세습적 사회주의 독재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 남한은 자유민주체제를 택하고 있다. 남쪽 국민들의 절대 다수는 자유민주에 입각한 통일을 원하고 있고, 그래서 대한민국 헌법 제4조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논자들은 이념과 체제를 초월한 민족적 통합이 최고의 가치이고 이념과 체제문제는 통일 후에 해결할 수 있는 민족 내부 문제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념과 체제를 무시한 통일은 남.북 예멘의 경험이 말해 주듯이 *)내부 혼란과 내란을 불러오고 평화적 통일이 되지 않는다. 평화적 통일이란 북한이 독재체제를 버릴 때에만 가능하다.  이 단순 명백한 사리를 무시하는 데에서 남북 문제에 관한 이념적 혼란이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

이에 대하여 어떤 논자는 이념과 체제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시대와 나라에 따라 내용을 달리 할 수 있는 것이니 남한의 이념과 체제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한다. 그러나 자유민주의 기본 개념에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 예컨대 인권의 존중, 선거와 투표의 자유, 언론의 자유, 집회의 자유, 종교의 자유와 같은 개인의 기본권은 세계의 보편적 가치인데 독재체제는 말로는 민주주의를 가장하지만 실제로는 실행할 수 없는 체제라는 데에 문제가 있다.

우리는 자유민주의 명제를  떠나서 통일을 생각할 수는 없다.  하기야  북한 역시 개혁 개방의 방향으로 조금씩 움직이고 있고 중국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동북아의 평화 공존의 목표와 이상은 시장경제의 공통 기반 위에서 민주화의 방향으로 정치체제를 수정해 가는 것이다. 만약 북한이 중국의 경우처럼 시장경제의 요소를 조금씩 이라도 받아드린다면 남북간의 화해 협력과 동북아의 안정이 크게 쉬워질 것이다. 이상의 관점에서  대북 정책의 기본 원칙을 도출하면 다음과 같다.   

(1) 북한의 민주화 없이는 평화적 통일은 불가능하다는 인식 하에서 대북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2) 북한 동포와 북한 정권을 구별해서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이북 동포의 기아(飢餓) 상태를 보고만 있을 수 없고, 그 들을 돕지 않을 수 없다. 같은 맥락에서 북한 동포의 민주화의 소망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예컨대 정부는 UN 대북 인권 결의안 투표에 참가하지 않았는데 이것은 민주화를 바라는 북한 주민의 비원을 배반하는 것이고 그들의 원망과 자탄을 면치 못할 것이다.

(3) 북한 동포와의 문화 스포츠 교류를 통하여 민족의 동질성을 자각케 하고 남북 사회의  차이를 서로 알도록 한다.

(4) 북한 정권에 대한 경제 원조는 개혁 개방을 촉진하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 일례로 북에 식량지원을 함에 있어서는 북한 정권의 농업정책을 개혁하도록 촉구하고 기술 지원을 해야 한다.

끝으로 북의 독재정권이 주민들의 처참한 困窮을 돌보지 않고 대량살상 무기 개발에 자원을 집중하는 것을 한사코 막아야 한다. 그를 위해 현존 한.미 공조의 안보태세를 유지하고 6자 회담을 성공시켜야 한다.

<국가이념의 이해>

이상에서 우리나라의 국가 이념인 자유 민주주의 기본원칙을 설명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지도자와 국민이 이러한 국가이념을 무시하거나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어떤 정치지도자는 우리의 국가이념이 자유민주인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 터인데 새삼 그것을 강조하는 것은 소모적이라는 말을 한 일이 있다. 그러나 이 지도자는 대북정책, 북핵 문제, 반미 운동, 전교조, 한총련, 노사문제, 언론 정책, 등을 둘러싸고 이념 갈등이 심각한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때일수록 대통령은 헌법에 명시한 국가이념의 원리와 원칙을 천명하고 그에 따라 엉클어진 문제의 논점을  정리하고 국론을 통합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정치지도자가 국가이념을 강조하는 것이  소모적인 일이 아니다.

참고로 미국에서는 지금까지 38인의 대통령이 나왔는데 그들은 취임 연설은 물론 기회 있을 때마다 한결 같이 국가이념을 최고의 가치로 강조해 왔다. 이 "Melting Pot”의 나라가 그런대로 국민 통합을 이루고 있는 비밀이 여기에 있다. 월남전, 이라크 전의 경우와 같이 국론이 분열되는 경우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공동의 이념적 바탕 위에서의 대립이었다. 그러기에  결국에는 국민 통합이 이루어 지고 정치권은 초당적으로 대통령의 대외정책을 지지하는가 하면 一朝 有事 시에는 국민들이 의견 다툼을 접어두고 국익을 위해 자발적으로 궐기한다. 이 도가니 탕의 나라에서 자유민주의 국가이념이 없이 이러한 일이 가능할까?

다음에 북한을 자극할까 두려워서 국가이념을 강조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즉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우면, 북을 흡수 통일하겠다는 말이 되어 북한이 반발하고 남북 관계를 원만히 풀어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는 세가지 맹점이 있다.

(1) 첫째는 자유 민주에 입각한 통일이 반드시 흡수통일을 의미 하느냐 하는 것이다.  북한이 점진적으로 민주화하면 상호접근에 의한 평화적 통일이 가능할 수도 있다.

(2) 둘째로 남북 협상과정에서 북한의 입장을 배려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그렇다고 그것이 국가이념의 원리 원칙을 천명하여 국민 통합을 꾀하는 일을 포기해야 할 만큼 중요하냐 하는 것이다. 어차피 북한정권은 우리 헌법 제4조를 모르는바 아니고, 남한의 대다수 국민들의 의사를 모르는 것도 아니며, 이라크 파병, 한미공조 강조 등에서 드러난 우리 정부의 내심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일시적 편의를 위해 국민에게 할말을 못하고 할일을 못하면 그것은 북에 대한 얄팍한 속임수에 불과하고 그것을 아는 북한정권은 우리 정부를 더욱 우습게 여길 뿐이다. 만약 북이 우리 태도에 반발하여 협력을 거부한다면 묵묵히 북의 태도변화를 기다라면 되는 것이지 무리한 요구에 영합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우리의 입장을 정정당당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주장하는 정공법이 문제 해결의 지름 길이 될 것이다.

(3) 셋째로 정부의 대북 정책의 애매한 태도가 계속되는 가운데 남-남 갈등이 심해 지면 북한 정권은 그들의 대남 전략이 성공하고 있다고 오판할 수도 있다.  많은 국민들은 북한이 평양에서 인터넷을 통하여 그리고 남파 간첩을 통하여 남한에 대한 정치 공작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데 정부는 그의 진부를 밝혀 줄 책임이 있다. 

끝으로 냉전 종식과 함께 이념 논쟁은 살아졌고 21세기에는 구체적 정책을 논하면 된다는 사람도 있다. 이사람 또한 남.북한의  이념과 체제가 대치 상태에 있다는 현실을 무시하고 있고, 21세기에는 이념이 주요치 않다는 말도 수궁하기 어렵다. 민주주의와 독재주의 사이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고 넓게는 [문명의 충돌]을 예고하는 학자도 있지 않은가? 

젊은이들의 국가이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도 문제이다. 기성세대와 달리 빵과 자유의 굶주림을 모르고 자라 온 젊은이 들은 자유민주의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代價 없는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심지어 자유민주주의는 미국의 이념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젊은이 들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자유 민주 사상은 해방 후가 아니라 일찍이 한말의 개화사상에서 비롯 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개화사상은 평등과 인권 그리고 민권을 강조하여 민주주의의 원류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민권 운동으로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고 피를 흘렸는지는 國史를 읽으면 알 수 있는 일이다. 예컨대 천도교의 人乃天 사상, 동학 민중봉기와 전봉준의 죽음은 말할 것도 없고, 김옥균, 박영교, 홍영식 등의 정치 지도자들은 민권 신장을 위한 개혁을 시도하다가 역적으로 몰려 처형되었고,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 등은 일본으로 망명하여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는데 그 후 박영효는 일본에서 돌아와 乙未개혁을 주도했고, 미국으로 건너갔던 서재필은 독립협회를 설립하여 개화당의 맥을 이어갔다. 서재필 박사 또한 역적으로 몰리게 되자 그의 부모, 아내, 형은 음독 자살했고 동생은 참형 됐으며 두 살 난 아들은 돌보는 이가 없어 굶어 죽었다 한다. 이러한 처참한 박해에 불구하고 서재필 박사는 독립신문 (1896년 4월 7일에 창간)과 영자신문 《The Independence》를 함께 발간했고, 이상재(李商在), 이승만(李承晩) 등과 독립협회(獨立協會)를 결성하고 독립문을 세웠지 않았는가?  서재필 박사는 배재학당에서 젊은이들에게 자유민주주의를 가르쳤는데 이 때 李承晩 박사도 그의 강의를 듣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한다. 해방 후 고국에 돌아온 서재필 박사는 매주 금요일 중앙방송국을 통해 주로 자유민주주의의 이념과 제도를 설명하고 우리 국민이 가야 할 길을 강의하기도 했다.

개화기의 민주 사상은 3.1독립선언문에 반영되었고 그를 통해, 상해 임시정부로 계승되어, 임시정부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임] 이라고 선언하게 된 것이다. 이 법통을 어어 받은 대한민국 헌법 제 1조 또한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라고 선언하였고, 전술한 바와 같이 제 4조는 통일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이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우리는 6.25 동란을 통해 공산주의 체제하의 북한과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었으나 국토의 반쪽이나마 자유민주체제의 나라를 세우게 되었는데 그를 지키기 위한  6.25 동란에서  30여 만 명의 국군 장병과 3만 5천명 이상의 UN 군의 희생이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북에도 그 이상의 인명피해가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그리고 이승만 대통령에 대하여 말이 많으나 그의 국제정치를 보는 식견과 지도력이 없었다면 남한은 아마도 공산화 되었을 것이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우리의 자유민주는 맹목적으로 외세에 추종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우리의 선대 들이 피와 땀으로 이룩한 국가이념이다.  뿐만 아니라 이 국가이념은 지구촌의 보편적 가치이니 우리는 그것을 굳건히 지켜 나가야 하고 그를 위해 대가를 치를 각오가 있어야 한다. 6.25 동란 때 영국의  처칠 수상이 말한 바와 같이 모든 귀중한 것에는 대가가 있다. 빵과 자유는 귀중한 것이다. 고로 대가가 있다. 그 대가는 그것을 정신적, 제도적, 실천적으로 지키는 노력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