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통합과 국가이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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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4월 24일 [인간개발연구원]에서 강연, 지금까지의 논문을 종합한 것이므로 이 사이트에 게재한 다른 논문과 중복되는 부분이 있다.


 

<국가 이념의 역할> 

지난 대통령 선거 때에 각당 후보들은  한결 같이 국민 통합의 필요성을 강조하였고 선거에서 승리한 노무현 대통령 또한  국민통합이 그의  주요정책의 하나임을 여러 번 공언하였다.

정치 지도자들이 국민 통합을 강조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의 분열과 갈등이 위험 수위에 이르렀다고 보기 때문이리라.  호남과 영남, 빈자와  부자, 진보와 보수, 젊은 세대와 기성 세대,  민족주의와 세계주의, 노와 사 등 실로 우리 사회는 갈래 갈래로 찢겨진 상태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민주적 다원 사회의 당연한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면 정치 지도자들은 이와 같은 분열과 대립을 어떻게 통합하겠다는  것일까? 국민 전체의 통합을 이룩하자면 어떠한 공통의 입장과 공통의 목표가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통합에는 어떠한 목표와 구심점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어느 나라에 있어서나 국가이념이 그 역할을 한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우리의 국가이념은 자유 민주주의이고 그에 기초하여 민주적 대의정치와 시장경제 체제가 운용되고 있다. 따라서 대한민국은 자유세계의 일원이다.

국가이념은 수레 바퀴의 중심축(pivot) 혹은 부채의 사북과 같은 역할을 한다.  바퀴에는 여러 개의 살 (spoke) 이 있는데 그것들이 중심 축으로 통합되어 있기 때문에 바퀴가 구를 수 있고 수레를 움직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모든 국가 문제도 국가이념으로 통합되어야 그 나라는 건강하고 힘있는 나라가 된다. 

위에서 말한 여러 가지 갈등과 대립의 문제는 여러 개의 살(spoke)에 비유할 수 있고, 따라서 그것들이 국가이념이라는 구심점으로 수렴 될 때 국민 통합이 가능해 진다.

 

<국가이념과 빈부 격차>

설명을 위해 경제면에서 빈부격차 문제를 예로 들기로 하자.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는 경제활동의 자유와 경쟁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경쟁이 있으면 반드시 승자와 패자, 강자와 약자, 부자와 빈자가 있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분열을 어떻게 통합하느냐 하는 것이 자유민주체제의 기본과제의 하나가 된다.  만약 패자와 약자와 빈자를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가 없으면 자유를 유지하기 어렵게 된다.  예컨대 빈부의 양극화 현상에서 공산주의가 생겨났는데, 그 결과  공산주의 통제경제 하에서  인민들은 빵과 자유를 함께  잃고 말았다는 것이 20세기 공산국가들의 역사적  경험이었다.  J. F. Kennedy는 그의 유명한 취임 연설에서 다수의 가난한 자를 보호하지 않으면 소수의 부자도 보호할 수 없다고 한 말이 생각 난다.

그러나 패자와 약자와 빈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경쟁을 배제하고 강자와 승자와 부자의 자유와 활동을 억압하면 발전과 진보가 없어진다. 운동 경기에서 이긴 팀을 계속 밀어주지  않으면  우승의 영예를 유지할 수 없다.  부자를 억압하면  부자가 되어 큰 일을 해 보겠다고 모험과 혁신을 시도하는 기업가 정신을 꺾게 되고 경제사회의 발전을 바랄 수 없게 된다. 서민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의료수가를 일률적으로 통제하면 지금 나타나고 있는 현상과 같이 내과와 외과를 지망하는 학생이 줄어들고 의사들이 위험 부담이 큰 의료 분야를 기피하는 경향이 나타나서 결국에는 의학과 의술의 발달이 저해되고 부자 뿐만  아니라 서민층을 위한 의료 서비스의  개선도 바랄 수 없게 된다. 평준화의 허점이 여기에 있다.

자유경제체제 하에서는 노동자가 기업주로 변신할 수 있고, 빈자가 부자가 될 수 있고, 반대로 부자가 빈자로 전락할 수도 있다.  그것은 대체로 본인의 능력과 노력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자유경제 체제하에서는 결과의 평등보다 기회의 평등이 중요시된다.

자유민주 체제하의 정부와 국회는 이러한 원칙에 입각하여 공정 경쟁을 위한 규칙을 만들어 주고 그 규칙을 위반한 자를 징계하는 기능을 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약자를 보호하되 강자의 권익을 손상하지 않도록 경쟁과 형평을 도모하는 것이 정부의 기능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능은 법을 통하여 수행되므로 법치주의가 관철되지 않으면 자유민주의 원칙과 질서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정부와 국민이 이점을 이해하고 모든 문제를 이 원리에 따라 해결을 도모할 때 발전적인 국민 통합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국가이념과 남북관계>

이번에는 정치면에서 남북 문제를 예로 들기로 하자.  남북 통일을 가로 막고 있는 근본 요인이 남-북의 이념과 체제의 차이에 있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북은 세습적 사회주의 독재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 남한은 자유민주 체제를 받들고 있다. 남쪽 국민들의 절대 다수는 자유민주에 입각한 통일을 원하고 있고, 그래서 대한민국 헌법 제4조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논자들은 이념과 체제를 초월한 민족적 통합이 최고의 가치이고 이념과 체제문제는 통일 후에 해결할 수 있는 민족 내부 문제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념과 체제를 무시한 통일은 남.북 예멘의 경험이 말해 주듯이[*] 내부 혼란과 내란을 불러오고 평화적 통일이 되지 않는다. 그러면 평화적 통일이란 어떤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북한이 독재체제를 버릴 때에만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단순 명백한 사리를 무시하는 데에서 남북 문제에 관한 이념적 혼란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에 대하여 어떤 논자는 이념과 체제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시대와 나라에 따라 내용을 달리 할 수 있는 것이니 남한의 이념과 체제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한다. 그러나 자유민주의 기본 개념에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  예컨대 인권의 존중, 선거와 투표의 자유, 언론의 자유, 집회의 자유, 종교의 자유와 같은 개인의 기본권은 세계의 보편적 가치인데 독재체제는 말로는 민주주의를 가장하지만 실제로는 실행할 수 없는 체제라는 데에 문제가 있다.

남북관계에 관하여 高大의 서진영 교수는 그의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관계와 남북한 관계가 불안정한 이유는 체제와 이념이 다른 이질적인 국가들인데도 불구하고 정권 담당자들의 정치적 이익이나 실리적 경제이익에 기초한 단기적 협상과 타협에 의한 관계 개선을 추구했기 때문이고, 그에 대한 국민적 지지 기반이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계와 남북한 관계가 안정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단기적이고 실리적 이익의 차원을 넘어서는 목표와 이상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형성되어야 한다.”  전적으로 옳은 말이다.

그러면 목표와 이상이란 어떤 것일까?  그것은 자유민주의 개념을 떠나서  생각할 없을 같다.  중국은 아직도 공산당 일당 체제이지만 1978 등소평이 개혁 개방에 착수한 이후 시장경제 체제로 이행해 왔고 정권의 평화적 교체가 이루어 지고 있다.  천안문 사건 이후 인권 문제가 국제적 관심을 끌고 있으나 중국의 변화방향이 자유 민주의 방향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에 반하여 북한은 아직 세습적 독재체제를 유지하고 있고 정상적 정권 교체의 경험이 없다. 하기야  북한 역시 개혁 개방의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고 중국의 영향을 받지 않을 없을 것이다. 따라서 동북아의 평화 공존의 목표와 이상은 시장경제의 공통 기반 위에서 민주화의 방향으로 정치체제를 수정해 가는 것이다. 만약 북한이 중국의 경우처럼 자유민주의 요소를 조금씩 이라도 받아드린다면 남북간의 화해 협력과 동북아의 안정이 크게 쉬워질 것이다.

이상의 분석이 옳다고 하면 대북 정책의 기본 원칙은 자명해 진다. 첫째로 북한의 민주화 없이는 평화적 통일은 불가능하다는 인식하에서 대북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둘째는 북한 동포와 북한 정권을 구별해서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이북 동포가 굶어 죽어 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고, 그들을 돕지 않을 수 없다.  같은 맥락에서 북한 동포의 민주화의 소망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예컨대 정부는 UN 대북 인권 결의안 투표에 참가하지 않았는데 이것은 민주화를 바라는 북한주민의 비원을 배반하는 것이고 그들의 원망과 자탄을 면치 못할 것이다.  셋째로 북한 정권에 대하여는 평화적 방법으로 민주화를 향한 개혁 개방을 촉구하고 지원하되 안이한 타협이나 양보는 바람직하지 않다. 일례로 북에 식량지원을 함에 있어서는 북한 정권의 농업정책을 개혁하도록 촉구해야 한다.  끝으로 북의 독재정권이 주민들의 처참한 困窮을 돌보지 않고 대량살상 무기 개발에 자원을 집중하는 한, 현존 한.미 공조의 안보태세는 굳건히 유지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 동안 정부의 햇볕 정책은 평화 유지를 위한다는 명목 하에 지나치게 북에 대하여 영합적이고 원칙과 주체성이 없는 대응을 해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북한정권은 언제나 한국을 제쳐놓고 북-미 회담을 고집해 왔고 이번에 다자간 협상 예비회담에 있어서도 한국의 참가를 반대하여 북,미,중 의 3자 회담이 되게 하였다. 이러한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나게 된 이유중의 하나는 정치 지도자들의 대북정책의 원칙과 주체성이 애매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주견과 줏대가 없으면 남으로부터 輕蔑을 당한다는 것은 개인의 경우나 국가의 경우나 마찬가지다.  최근의 반미 파장과 한-미 관계의 推移를 보면, 앞으로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미국을 비롯한 우리의 우방들이 우리를 경멸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나라의 정체성과 주체성이 애매한 것처럼 보여지면 국제정치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국가이념의 이해>

남북 문제에 있어서도 우리의 국가이념이 중심축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우리 정치 지도자나 국민들이 국가이념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어떤 정치지도자는 우리의 국가이념이 자유민주인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 터인데 새삼 그것을 강조할 필요가 있느냐 고 반문한다.  그러나 이 지도자는 대북정책, 북핵 문제, 반미 운동, 전교조, 한총련, 노사문제, 언론 정책, 등을 둘러싸고 이념 갈등이 심각한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민주사화에서는 서로 다른 이념이 다툴 수 있고  (공산주의 대 자본주의),  자유민주의 이념을 가장하여 그 원리, 원측과 상반된 운동을 하는가 하면,  자유민주의 울타리 안에서도 거의 모든 문제들에 대하여 이해관계에 따라 의견이 대립할 수 있고 또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혼돈 상태가 심할수록 불필요하게 국력을 소모하게 되므로 대통령은 국민 대다수가 지지하는 국가이념의 원리와 원칙을 천명하고 그에 따라 엉클어진 문제의 논점을  정리하고 국론을 통합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정치지도자의 국가이념을 묻는 것이 결코 필요 없거나 소모적인 일이 아니다.

이 점에 관련하여 작년 11월   미군 병사에 의한 두 여학생 과실치사 사건으로 촉발된 반미감정이 극에 달했고, 그 배후세력의 이념적 성향을 우려하는 소리가 높았는데, 대통령은 물론 어느 정치 지도자도 사태의 진상을 설명하고 국민의 이해를 구하고자 설득하는 노력을 보여주지 않았다.

다음에 북한을 자극할까 두려워서 국가이념을 강조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즉 자유민주주의로 통일하겠다 하면, 북을 흡수 통일하겠다는 말이 되어 남북 관계를 원만히 풀어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는 세가지 맹점이 있다.  첫째는 자유 민주에 입각한 통일이 반드시 흡수통일을 의미 하느냐 하는 것이다.  위에서 본바 바와 같이 북한이 점진적으로 민주화하면 상호접근에 의한 평화적 통일이 가능할 수도 있다.

둘째로 남북 협상과정에서 북한의 입장을 배려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그렇다고 그것이 국가이념의 원리 원칙을 천명하여 국민 통합을 꾀하는 일을 포기해야 할 만큼 중요하냐 하는 것이다.  어차피 북한정권은 우리 헌법 제4조를 모르는바 아니고, 남한의 대다수 국민들의 의사를 모르는 것도 아니며, 이라크 파병, 한미공조 강조 등에서 드러난 우리 정부의 내심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일시적 편의를 위해 국민에게 할말을 못하고 할일 을 못하면 그것은 북에 대한 얄팍한 속임수에 불과하고 그것을 아는 북한정권은 우리 정부를 더욱 우습게 여길 뿐이다. 만약 북이 우리 태도에 반발하여 협력을 거부한다면 묵묵히 북의 태도변화를 기다라면 되는 것이지 무리한 요구에 영합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우리의 입장을 정정당당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주장하는 정공법이 문제 해결의 지름 길이 될 것이다.

끝으로 정부의 대북 정책의 애매한 태도가 계속되는 가운데 남-남 갈등이 심해 지면 북한 정권은 그들의 대남 전략이 성공하고 있다고 오판할 것이다. 정치 지도자들은 이점을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참고로 미국에서는 지금까지 38인의 대통령이 나왔는데 그들은 취임 연설은 물론 기회 있을 때마다 한결 같이 국가이념을 최고의 가치로 강조해 왔다. 이 "Melting Pot”의 나라가 그런대로 국민 통합을 이루고 있는 비밀이 여기에 있다. 월남전, 이라크 전의 경우와 같이 국론이 분열되는 경우도 있지만 결국에는 국민 통합이 이루어 지고 정치권은 초당적으로 대통령의 대외정책을 지지하는가 하면 一朝 有事 시에는 국민들이 의견 다툼을 접어두고 국익을 위해 자발적으로 궐기한다. 이 도가니의 나라에서 자유민주의 국가이념이 없이 이러한 일이 가능할까? 

  젊은이들의 국가이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도 문제이다.  기성세대와 달리 빵과 자유의 굶주림을 모르고 자라 온 젊은이들은 자유민주의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代價 없는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심지어 자유민주주의는 해방 이후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미국의 이념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젊은이 들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자유 민주 사상은 해방후가 아니라 일찍이 한말의 개화사상에서 비롯 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개화사상은 평등과 인권 그리고 민권을 강조하여 민주주의의 원류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민권 운동으로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고 피를 흘렸는지는 國史를 읽으면 알 수 있는 일이다. 예컨대 천도교의 人乃天 사상, 동학 민중봉기와 전봉준의 죽음은 말할 것도 없고, 김옥균, 박영교, 홍영식 등의 정치 지도자들은 민권 신장을 위한 개혁을 시도하다가 역적으로 몰려 처형되었고,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 등은 일본으로 망명하여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는데 그 후 박영효는 일본에서 돌아와 乙未개혁을 주도했고, 미국으로 건너갔던 서재필은 독립협회를 설립하여 개화당의 맥을 이어갔다. 서재필 박사 또한 역적으로 몰리게 되자 그의 부모, 아내, 형은 음독 자살했고 동생은 참형됐으며 두 살 난 아들은 돌보는 이가 없어 굶어 죽었다 한다. 이러한 처참한 박해에 불구하고 서재필 박사는 독립신문 (1896 4 7일에 창간) 영자신문 The Independent》를 함께 발간했고, 이상재(李商在), 이승만(李承晩) 등과 독립협회(獨立協會) 결성하고 독립문 세웠지 않았는가?  서재필 박사는 배재학당에서 젊은이들에게 자유민주주의를 가르쳤는데 李承晩 박사도 그의 강의를 듣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한다.  해방 후 고국에 돌아온 서재필 박사는 매주 금요일 중앙방송국을 통해 주로 자유민주주의의 이념과 제도를 설명하고 우리 국민이 가야 길을 강의하기도 했다.

개화기의 민주 사상은 3.1독립선언문에 반영되었고 그를 통해, 상해 임시정부로 계승되어, 임시정부 헌법 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임] 이라고 선언하게 것이다.   법통을 어어 받은 대한민국 헌법 1 또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선언하였고 , 4조는 전술한 바와 같이 통일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이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우리는 6.25 동란을 통해 공산주의 체제하의 북한과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었으나 국토의 반쪽이나마 자유민주체제의 나라를 세우게 되었는데 그를 지키기 위한  6.25 동란에서  30여 만 명의 국군 장병과 3만 5천명 이상의 UN 군의 희생이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북에도 그 이상의 인명피해가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그리고 이승만 대통령의 치적에 부정적인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의 국제정치를 보는 식견과 지도력이 없었다면 남한은 공산화 되었을지도 모른다.

6.25 동란 이후 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박정희 대통령의 이른바  [개발독재] 과정에서 민주화 운동이 계속되었는데 여기에는 양면이 있다.  한편에는 4.19 학생 의거 와 같이 자유민주를 위해 민주화 운동을 계속한 세력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는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하에서 북한 정권을 옹호 하는 다른 의미의 “민주화” 세력이 있다.  후자의 경우에는 민주화의 구호를 소리 높게 외치지만 북의 독재체제에 대하여는 말이 없고 오히려 북한 독재체제를 비판하는 세력을 수구 반동으로 몰아세우고 있는 형편이다. 그들이 진정으로 민주주의 발전을 원한다면 이제는 북한의 민주화를 촉진하는 방안을 생각해야 하지 않는가?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우리의 자유민주는 맹목적으로 외세에 추종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우리의 선대 들이 피와 땀으로 이룩한 국가이념이다.  뿐만 아니라 이 국가이념은 지구촌의 보편적 가치이니 우리는 그것을 굳건히 지켜 나가야 하고 그를 위해 대가를 치를 각오가 있어야 한다. 모든 귀중한 것에는 대가가 있는 법이다. 빵과 자유는 귀중한 것이다.  고로 대가가 있다.

끝으로 자유민주의 국제적 연대에 관하여 一言 하고자 한다.  이라크 파병에 관하여 말이 많았다.  미국이 UN의 결의 없이 이라크를 공격한 것을 필자 자신도 좋게 보지 않는다.  그러나 파병에 명분이 없다는 주장에는 의문이 있다.  미국은 UN 결의를 무시하고 대량살상 무기를 개발한 사담 후세인의 독재정권을 타도하는 것이 전쟁의 목적이라고 말해 왔다.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는 나라도 후세인의 무도한 독재체제를 시인하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독재자 사담 후세인 한 사람이 권좌에서 물러나면 이라크의 무고한 백성들이 생명과 재산을 잃는 무참한 전쟁을 피할 수 있었는데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은 사담 후세인 에게 망명하거나 下野 하라는 권고를 하지 않았고  (이라크 정세가 기울어 지자  독일이 후세인의 하야를 권고 하기는 했다 ) 다만  연합국을 비난하기만 했다. 이것은 자유민주의 국제적 연대라는 견지에서 유감스러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과는 대조적으로 영국의 Tony Blair 수상은 처음부터 단호하였다.  그는 이라크의 독재체제를 타도하고 이라크를 민주화하는 것이 전쟁의 목적임을 분명히 했고, 야당과 자기당 일부의 반대에 굴하지 않고  한치의 양보 없는 설전을 계속한 것이 매우 인상적이다.  3월 21일 자 Time 지에 “American Prime Minister” (미국의 수상)이라는 묘한 제목이 눈에 띄어 읽어 보았더니, Tony Blair가 미국이 해야 할 말을 유감없이 말한 반면 Bush 대통령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Bush의 고집과 의지로 전쟁에는 이겼지만 앞으로 평화를 얻는 데에는 Tony Blair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말도 있었다.  즉 국제정치에 있어서 자유민주의 이념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명분보다 전략상의 이유로 이라크 파병을 결정했다고 누누이 변명했으나 자유민주의 국제적 연대를 위해 미국을 도와야 할 명분이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것 또한 북한을 의식해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우리의 국가이념을 천명하여 국민들의 정신적 구심점이 되게 하는 동시에 그 원리와 원측에 입각한 문제 해결을 적극적으로 지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가 강조하는 국민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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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예멘은 1918년에 Ottoman 제국으로부터 독립하였고 예멘은 영국이 19세기 도안 보호령으로 지배해오다가 1967 철수하자 맑스주의 정권이 수립되었다. 그러자 수십만의 인구가 예멘으로 이주하였다.  20여년 동안 . 북이 적대관계로 대치해오다가 1990년에 통일이 실현 되었는데 후에도 내분이 계속되어 1994 중반 내란이 일어났고 무력으로 진압되었다.  현재의 인권 상태는 매우 좋지 않고 언론, 집회의 자유도 법으로 제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