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주의를 지켜야 한다.

lkhy1.gif


 2003년 4월 7일(월) 조선일보 A31면 게재

<시론>' 代議정치 기본을 지켜라'


 

민주주의는 경제면에서 시장경제와 정치면에서 대의정치를 근간으로 하는 체제이다. 스위스와 같이 나라가 작고 국민 의식이 성숙된 나라에 있어서는 직접민주주의가 가능할지 모르나 인구가 많고 국민의 의식이 다양한 나라에 있어서는 대의정치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대의정치를 부정하면 것 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질 뿐이다.  

의회정치는 국민들이 선거를 통하여 대표를 뽑고 그들로 하여금 임기 동안 국가의사 결정에 참여케 하는 것이다. 그래서 국회가 이 나라의 국가 의사결정의 최고 기관이 된다. 그리고 국회는 충분한 토론을 거친 후에 표결에 부쳐 다수결로 의안을 결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 나라에서는 국회 스스로가 당리당략의 포로가 되어 대의정치의 기본 원칙을 유린하는 사례가 허다하였다. 당리 당략으로 중상, 모략, 음해, 협박, 탄압, 단식, 퇴장, 의사 방해, 몸싸움, 날치기 등의 방법 등이 동원되었고 이것을 보는 국민들은 대의정치에 대한 환멸과 불신만을 더해 왔다. 실로 우리의 대의정치를 정상화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직면한 최우선의 시대적 과제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의 파병문제는 그런대로 대의정치의 정상적 모습을 보여 주었다.

파병을 둘러 싸고 국론 분열이 극심했고 국회의원들도 찬반으로 분열되어 있었다. 그러나 전례 없이 전원위원회를 소집하여 2일 동안 찬반 토론을 계속 했고 국회 본회의에서 다시 토론을 계속한 끝에 의원들의 자유투표를 통해 파병을 결정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대의정치 정상화의 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 본다.

 그런데 이번에는 시민 단체들이 의회주의에 도전하고 있다. 그들이 파병에 반대하고 평화적으로 의사표시를 하는 것을 탓할 이유는 없다. 그것은 국회가 국가의사를 결정하는 데에 영향을 주려는 운동이고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우리가 보기에는 그들은 그 동안 자신들의 의사표시를 위해 할만큼 했고 그들의 의사가 국회에 반영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국회에서는 다수결로 파병을 결정했고 찬반별로 국회의원의 명단도 공개하였다. 이제는 그들을 심판하는 것은 선거구민들의 몫이고 그 결과는 다음 선거에서 나타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파병 반대자들은 그에 승복할 수 없다고 하여 동맹 파업을 선동하고, 일부 시민단체는 시민들을 동원하여 그들의 의사를 끝까지 관철하겠다 한다. 그러나 국회의 결정을 무시하고 끝까지 싸우겠다면 국회는 있으나 마나 한 것이 되지 않는가? 뿐만 아니라 지금 유가앙등, 수출 부진, 투자 냉각, 물가 상승 등으로 경제가 일대 위기에 처해있고 실업자를 구제할 길이 막연한데 그들의 소란으로 사회불안마저 겹친다면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단 말인가?

 게임에는 규칙이 있다. 게임에서 패배하였다 하여 게임 판을 때려 부시면 게임은 계속 될 수 없고 폭력 대결만이 남게 된다. 같은 이치로 소수파가 의회정치의 원칙을 무시하고 자기의 주장만이 절대적이라고 주장한다면 민주적 대의정치는 설 땅이 없어진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반대 운동을 하는 것은 그들의 자유이다. 그러나 말로는 민주주의를 내 세우면서 행동으로는 의회주의와 질서를 파괴하는 일만은 하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다.

이번에 파병무제를 둘러싸고 국민들도 고민했고 정치지도자들도 고민했다.그러나 정상적인 방법과 절차를 거쳐 국가의사가 결정된 것은 큰 다행이다. 지금 우리는 파병문제 이외에도 국가의사의 결정을 기다리는 문제가 너무나 많다. 이번의 파병문제 처리가 하나의 모델을 보여 주었는데 앞으로도 모든 문제 처리에 이 모델이 적용되기를 바라 마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문제를 의정 단상에 올려놓고 아무런 이면 공작 없이 싫도록 토의하고 그런 다음 표결에 부쳐 다수결로 결정하면 소수는 다수의견에 복종하는 것이다. 이 단순하고 자명한 규칙을 무시하는 정당이나 의원이나 시민단체는 의회주의의 적(敵)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1951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