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 정책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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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중앙 2002년 4월 호에 “통일 접어 두고 [평화 교류]로 되돌아 가라 “ 라는 제목으로 게재되었다. 제목은 편집자 마음대로 고치는 것이 우리의 관례인 것 같다.


 

햇볕정책하의 남북관계가 다시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이 시점에서 햇볕정책의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거기에서 어떠한 교훈을 도출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 한다. 무릇 모든 정책은 두가지 상반된 측면을 가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햇볕정책의 성과> 먼저 햇볕 정책의 주요 성과부터 말한다면 반세기만에 남북정상이 서로 만났고 그 결과 3차의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 졌으며 남북간의 인적교류와 경제교류가 상당히 확대되었다. 그를 통하여 남북이 서로 상대방을 보다 잘 알게 된 것도 소득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의 9-11 사태이후 온 세계가 테러 위험에 떨고 있었는데 우리는 마치 대안의 불 구경하듯 평온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도 햇볕정책의 덕택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햇볕정책이 남북간의 표면상의 긴장완화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의 국방력과 주한미군의 전쟁억지력 없이 그것이 가능했었는지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남한의 대다수 국민들이 이해하는 대북 정책에는 최소한 네가지 요소가 있다. 첫째는 장기적으로 자유민주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을 추구하는 것이고 둘째는 우선 남북간의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고, 셋째는 동포애에 입각한 긴급구호와 북의 개혁개방을 촉진하기 위한 교류 협력을 추진하는 것이며 넷째는 위의 세가지 목적을 추구하기 위하여 미국을 비롯한 우방과의 긴밀한 공조체제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것을 대북 정책의 4대 원칙이라 할 수 있는데 햇볕 정책의 목적도 이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부가 선택한 방법의 미흡으로 이외의 결과를 가져온 것도 사실이다.

<여섯가지 허점> 먼저 [햇볕정책]이라는 용어자체가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다. 원래 햇볕정책의 함축은 화해 협력의 햇볕을 쏘여 북한이 스스로 체제의 외투를 벗도록 만든다는 것인데 그 것은 평양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그래서 평양은 햇볕정책이 그들의 체제를 붕괴시키려는 음모라는 격렬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결국에는 햇볕정책을 역이용하여 다급한 경제난의 돌파구를 찾으려 했던 것이다. 따라서 햇볕정책은 처음부터 상호 불신을 안고 출발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둘째의 난점으로 연결된다. 즉 평양은 남쪽의 선의의 제의를 받아 드리는 데에 매우 인색했고 오로지 다급한 경제적 실리만은 챙기려 했다. 예컨대 당초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경의선 연결사업의 초기공사에 착수하지 않고 있고 또 지난 2월 지뢰 제거를 위해 남북이 합의한 "비무장지대 공동 규칙"에도 서명하지 않고 있다. 이산가족 상봉의 방식을 보더라도 그들의 주민에 대한 사상과 행동 통제에는 변함이 없고, 상시 면회소를 설치하자는 남측의 제의도 묵살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지난 11월에 있었던 남북 장관급 회의도 회의 장소에 관한 평양의 하찮은 고집으로 결렬되고 말았다.

셋째로 햇볕정책은 남한 사회에 필요 이상의 이념 갈등과 국론 분열을 가져왔다. 2000년 6월 15일 역사적인 [남북 공동선언]이 발표되었는데 , 이 선언은 통일의 문제를 전면에 내세웠다. 즉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기초로 하여 통일을 지향해 나간다”고 되어있다. 남한에서는 이를 계기로 하여 통일논쟁이 벌어지게 되었는데 한편에서는 6.15선언이 평화와 통일의 대로를 열었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그러한 약속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며 대통령이 국민의 동의도 없이 그러한 약속을 할 수 있느냐 하는 반론이 제기되었다. 그런가 하면 평양에서는 공동선언 실천에 필요한 개혁개방 대신에 김정일 위원장을 7000만 민족과 통일의 최고 지도자로 부각시키는 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앞으로 북측은 협상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언제나 6.15 공동선언과 통일을 내세워 강변하게 될 것이다.

국론이 분열되고 국민들이 불안해 할 때에는 대통령과 정부는 국가이념과 통일의 기본 원칙을 재천명하여 국민적 통합을 꾀해야 한다. 그러나 평양의 반발을 고려하여, 할 말을 못하고 있고, 그 때문에 주체성 없이 평양에 끌려 다닌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통일은 20년 또는 30년 후에나 바라 볼 수 있는 일이라고 누차 말했는데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남북 공동 선언에서 통일 문제를 거론하여 지금과 같은 이념의 갈등과 국론분열을 가져올 필요가 있었느냐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넷째로 대북경협에 있어서는 500개 이상의 기업들이 북한과 거래관계를 튼 것은 고무적인 일이나 대북 투자사업에는 큰 성과가 없고 [현대] 계열회사가 무모하게 시작한 금강산 관광사업은 남쪽이 계약 조건을 지키지 못해 현대 뿐만 아니라 정부가 크게 위신을 잃은 결과가 되고 말았다. 결국 경협 확대가 남한에 특수(特需) 경기를 가져올 것이라는 정부의 예언을 무색케 한 결과가 되고 말았고, 경제협력이 얼마만큼 북한의 개혁개방을 이끌어 낼 수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다섯째로 한.미간의 공조체제에 금이 간 것도 문제이다. 물론 미국의 대외정책이 우리의 국익과 반드시 일치한다는 보장은 없다. 클린턴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의 대북 태도가 다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의 두 대통령이 북을 보는 기본적 시각이 다른 것은 아니다. 즉 그들은 평양이 수십만 인민들이 굶어주어 가는데도 불구하고 국가 자원을 대량 살상무기 생산에 투입하고 그를 테러 국가에 수출하는 나라, 인권이 유린되고 국민의 자유가 없는 일당 독재의 나라라는 시점에는 전혀 차이가 없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자유세계의 일반적 시점이자 우리의 시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평양에게 대화를 강력히 촉구하고 그 실현을 위해 미국과 공동 노력을 기우려야 할 일이지 用語 문제로 반미 감정을 선동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끝으로 이상과 같은 의외의 사태로 인하여 햇볕정책이 목적한 화해 협력 대신에 오히려 남북간의 불신의 골이 깊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다.

<햇볕정책의 교훈> 햇볕정책에서 얻는 교훈은 평양의 체제전환 없이는 우리의 소망은 어느 것도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평양의 개혁 개방을 바라고, 김정일 위원장의 신사고론에 기대를 걸어 보지만 그것도 낙관적이 아니다. 이유는 중국의 경험이 말해 준다. 중국에서는 毛澤東체제에서 鄧小平체제로 이행하는 권력구조의 개편이 있었고 1978년 중공 제11기 3중 전회에서 [중국 인민공화국 창건 이후 우리당의 역사에 관한 약간의 문제에 대한 결의]를 채택하여 중국공산당의 목적은 계급투쟁이 아니라 경제 발전임을 명백히 했고 그를 위하여 4대 현대화계획을 출범 시키기로 결의한 것이다. 북한에서 과연 이러한 권력구조의 개편과 과거사의 청산이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그것은 어떻게 해서던지 (국방, 외교를 포함해서) 한반도에 평화를 유지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 목적을 위하여는 [6.15 남북 공동성명]보다 1992년 2월 19일에 발표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 협력에 관한 합의서]가 보다 현실적인 접근을 했다고 생각된다. 이 합의서는 상호 체제 인정, 상호불가침, 내정 불간섭, 교류협력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열거 하였으되 통일에 관하여는, 일언반구(一言半句)의 언급이 없다. 다만 그 서문에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 뜻에 따라”라는 문구가 있을 뿐이다. 통일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인식이 양측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불행히도 [남북기본합의서]는 8차의 남북 총리회담 끝에 1992년 12월 좌절되고 말았는데 그 배후에는 독일의 통일 (1989), 소련의 해체 (1991),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의 체제전환, 그리고 한.중 수교 (1992년 8월 24일)에 충격을 받은 평양이 “우리식 사회주의”로 정책 방향을 굳힌 데에 원인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그 후 평양의 사정도 달라 졌고 남한에서는 햇볕정책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이라도 기본합의서의 입장으로 되돌아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즉 통일의 문제는 접어두고 오로지 평화유지를 위해 기본 합의서에 명시한 대로 남북의 체제를 서로 인정하고 상호불가침과 내정불간섭의 원칙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다. 이 합의서 대로하면 햇볕이니, 포용이니 할 필요도 없고 이념 갈등을 잠재울 수 있고 평양도 대등한 입장에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사실 그대로 [평화 교류정책]이라고 하면 되는 것이다. 평화와 교류가 계속되면 거기에서 진정한 상호신뢰가 싹 틀 수 있다. 이제 남북이 다같이 지금까지의 접근방법을 반성하고 새로운 전기(轉機)를 마련할 때라고 생각된다. 적당한 시기에 제9차 남북 고위급 회담을 재개하던가 아니면 장관급 회담에서 남북 총리회담을 복원하여 [기본합의서의]의 입장을 재확인하자고 제의하는 것이 어떨까 한다. 요컨대 [햇볕정책] 대신에 [평화 교류 정책]을 제시하여 새로운 남북관계를 열어가야 할 시점에 온 것 같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