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대통령의 역사적 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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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1월 4일, 중앙일보 오피니언 칼럼. 


    

금년 大選에 도전하겠다는 대통령 지망생이 열 사람 이상이 된다. 그들의 역사 인식과 사명의식이 어떤 것일까? 궁금해서 이 글을 쓴다.

<4대 과제> -1945년 해방이후 우리 정치지도자와 지식인들은 기본적으로 네 가지 문제와 대결해 왔다. 첫째는 한반도에 새로운 민족국가를 건립하는 일인데 불행히도 한반도는 미.소 두 강대국들의 흥정의 대상이 되어 남북 분단의 비운을 맞게 되었다. 그러나 남한에서 나마 자유민주의 공화국을 건립하게 된 것은 불행 중 다행인데, 여기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지도력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의 지도력이 없었다면 아마도 남한은 공산화 되었을지도 모른다.

째의 과제는 조상 전래의 빈곤으로부터 탈출하는 일인데 이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지도력에 의하여 그 기초가 마련되었고 그 위에 오늘의 한국 경제가 있다. 

셋째의 과제는 정치적 근대화, 즉 민주적 대의정치를 구현하는 일인데 그동안 권위주의적 대의정치체제의 과정을 거쳐 외형상으로는 민주적 대의정치체제로 이행하였으나 그 내용은 옛날과 별로 다름이 없다.

넷째의 과제는 남북 통일인데 김대중 대통령은 셋째의 과업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 문제에 도전하다가 우선순위가 바뀐 탓으로 적지 않은 고난을 겪고 있다.

<정치적 병폐> - 제 3의 문제로 돌아가서 우리는 민주화 투쟁 끝에 권좌에 오른 두 대통령이 명실 상부한 민주적 대의정치를 구현하는 데에 지도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해 왔다. 그러나 그 기대는 빗나갔다. 지금 우리 대의정치의 병폐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간추리면 첫째로 정치자금의 조달과 지출이 불투명하고 권력형 부정 부패가 만연되어 있다. 둘째로 검찰과 국세청, 국정원 등의 권력기관이 정략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셋째로 국회의원들이 나라의 당면 문제 해결을 위한 토론과 입법 활동보다 정당 싸움에 대부분의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고 있다. 넷째로 소수가 다수에 복종하고 다수가 소수를 존중하는 의회주의의 기본 룰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다섯째로 당 운영이 총재의 전제(專制)에 의존하고 있고, 여섯째로 국회가 만든 법률을 국회 스스로가 유린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병폐로 인해 국민들의 정치 불신이 극도에 달하고 있고, 정치가 경제 발전의 걸림 돌이 되고 있다는 소리가 높다.

<역사적 사명>- 그러므로 이제는 제3의 과제 즉 민주적이고 생산적인 대의정치를 구현하기 위해 지도력을 발휘하는 대통령이 나올 차례이고 그것이 차기 대통령의 역사적 사명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진정한 대의정치를 구현하는 일은 대통령의 힘만으로 되지 않는다. “국민은 그들에 값하는 정부를 가지게 마련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국민들 자신의 자각과 노력과 협력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지도자의 살신성인(殺身成仁) 용단과 솔선 수범이 있을 때에 비로서 국민들은 따라 갈 수 있을 것이다.  

 이 나라의 정치개혁은 제4의 역사적 과제인 통일 목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북의 김정일 위원장은 경제적으로는 남한이 강하지만 정신적으로는 북이 강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가 보기에는 남한사회는 끝없는 정치싸움, 부정부패, 무질서, 부도덕한 자본가가 판치고 있는 사회이고 밀어 부치면 쓸어질 같은 사회라고 보고 있을 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지 않다. 언론이 모든 사실을 있는 그대로 들어내고 비판과 대립과 토론의 과정을 거쳐 대책과 해결로 귀결되는 자유민주 체제가 독재체제보다 훨씬 더 강인하고 안정된 체제라는 것을 북한의 지도자들은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따라서 남한사회의 혼탁이 심할수록 그들은 그들의 독재체제를 정당화하고 개혁, 개방과 민주화를 외면하게 될 것이니 통일의 지평은 더욱 멀어 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최선의 통일 정책은 우리 자신을 바로 잡는 것이다.   

요컨대 새로운 지도자는 위에서 정치-사회적 치부를 치유하는 데에  몸을 던질 아니라, 우리 앞에 펼쳐지는 모든 취약점에 불구하고 자유민주체제가 우리의 최선의 선택인가를 비단 남한 국민 뿐만 아니라 북한 지도층에게도 설득할 있는 식견과 신념의 소유자라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특히 지금은 이념적 갈등이 심한 때이니 만큼 우리의 국가이념과 통일의 원칙을 분명히 밝혀 갈등과 대립을 잠재우는 지도자가 나왔으면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