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논문

햇볕정책의 교훈   

lkhy1.gif


2001년 9월 10일 한양로타리클럽 오찬 강연. 


 

지금의 햇볕정책을 둘러싼 일련의 사태에 비추어 햇볕정책을 다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 됩니다. 모든 정책이 그러하듯이 햇볕정책에도 득실 양면이 있게 마련입니다. 득으로는 반세기 만에 남북정상이 서로 만났고 그 결과 3차의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 졌으며 남북간의 인적교류와 경제교류가 크게 확대 되었습니다. 그를 통하여 남북이 서로 상대방을 보다 잘 알게 된 것도 소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정적 측면도 적지 않습니다. 원래 햇볕정책은 화해 협력의 햇볕을 쏘여 북한이 스스로 체제의 외투를 벗도록 만든다는 것인데 그 용어는 평양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당초에는 햇볕정책이 그들의 체제를 붕괴시키려는 음모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하였으나 햇볕정책을 꺼꾸로 이용하여 다급한 경제난의 돌파구를 찾으려 했던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평양은 남쪽의 교류 협력의 제의를 받아 드리는 데에 매우 인색했고 오로지 경제적 실리만은 챙기려 했습니다. 예컨대 당초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경의선 연결사업의 초기공사에 착수하지 않고 있고 또 지난 2월 지뢰 제거를 위해  남북이 합의한  "비무장지대 공동 규칙"에도 서명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산가족 상봉의 방식을 보더라도 그들의 주민에 대한 사상과 행동 통제에는 변함이 없고, 상시 면회소를 설치하자는 제의도 묵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식량부족으로 국민의 기아 상태가 심각한데 지난 3월 27일 미국 상원 청문회에서 주한 미군 사령관이 증언 한 바에 따르면 “북한군은 지난해보다 더 커지고, 나아지고, 가까워지고, 치명적이 되었다.” 합니다. 왜 그럴까요?

결국 우리가 경험에서 얻는 교훈은 평양의 체제 전환 없이 우리가 바라는 것은 어느 것도 실현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북한 동포가 빈곤에서 벗어나기를 바라지만 그것은 평양의  現 체제 하에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화해 협력을 통하여 민족의 동질성이 회복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남북의 문화교류 및 스포츠 교류는 확실이 남북 동포간의 친밀과 동질성 회복에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평양이 그것을 두려워하고 주민들에게 통제를 가하고 있는 것을 어찌합니까?

셋째로 우리가 평양의 개혁 개방을 바라고, 김정일 위원장의 신사고론에 기대를 걸어 봅니다 만은 그것도 낙관적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중국의 경험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毛澤東체제에서  鄧小平체제로 이행하는 권력구조의 개편이 있었고 1978년 중공 제11기 3중 전회에서 [중국 인민공화국 창건 이후 우리당의 역사에 관한 약간의 문제에 대한 결의]를 채택하여 중국공산당의 목적은 계급투쟁이 아니라 경제 발전임을 명백히 했고 그를 위하여 4대 현대화계획을 출범 시켰습니다. 북한에서 과연 이러한 권력구조의 개편과 과거사의 청산이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북한의 체제전환 없이 우리가 원하는 것은 아무 것도 실현되기 어렵다고 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나 체제전환은 쉬운 일이 아니고 최선의 경우에도 시일이 걸립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어디까지나 북한 정권과 인민의 선택에 달려있는 과제이지 우리가 어쩔 수는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다만 직접 간접으로 어느 정도의 영향을 끼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어떻게 해서던지 한반도에 평화를 유지하는 일입니다. 다행히 남 북 어느 편도 무력 충돌을 원치 않는 것은 사실이고 이것이 남북관계개선의 출발점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1990년대에 남북 정부는 두 가지 합의 문서에 서명 했습니다. 하나는 1992년 2월 19일에 발효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 인데 이 합의서는 매우 현실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 합의서는 서로 각자의 체제를 인정하고 평화와 불가침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열거하였으되 통일에 관하여는, 일언반구(一言半句)의 언급이 없습니다.  (다만 그 서문에 “통일을 바라는 민족의 염원에 따라”라는 문구가 있을 뿐입니다.) 통일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인식이 양측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남북 [6.15 남북 공동선언]은 통일의 문제를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즉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기초로 하여 통일을 지향해 나간다고 되어 있습니다. 언론의 자유가 없는 북한과는 달리 남한에서는 이를 계기로 하여 통일논쟁이 벌어지게 되었는데 한편에서는 6.15선언이 평화와 통일의 대로를 얼었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그러한 약속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며 대통령이 국민의 동의도 없이 그러한 약속을 할 수 있느냐 하는 반론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평양에서는 공동선언 실천에 필요한 개혁개방 대신에 김정일 위원장을 7000만 민족과 통일의 최고 지도자로 부각시키는 데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국론이 분열되고 국민들이 불안해 할 때에는 대통령은 국가이념과 통일의 기본 원칙을 재천명하여 국민적 통합을 꾀해야 합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평양의 입장을 고려하여, 침묵을 지키고 있고 다만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만을 고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차피 평양은 햇볕의 속셈을 잘 알고 있는 터인데 우리 정부는 당연히 해야 할 말을 못하는 궁지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한편 이러한 사정은 이른바 “개혁파”를 크게 고무하여 햇볕정책을 비판하는 주요 신문들을 반통일 반민족으로 몰아세우고 정부는 세무사찰과 사주들의 구속으로 신문들을 협박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 기묘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어디에서나 독재국가의 체제전환은 민주화를 추진하는 새로운 정치세력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인데-남한에서도 그러했습니다- “진보파” 들은 지식인들의 북한 체제 비판과 황장엽 씨의 민주화 운동을 반통일 냉전 세력으로 매도하고 정부 일각에서도 그에 동조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것을 과연 "진보"라고 할 수 있을 지 의문입니다. 우리는 북한의 현 정권이 평화적으로 체제전환을 이룩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그렇다고 북한 내외(內外)의 개혁주의와 민주화 운동을 보수- 반통일 세력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장차 역사의 흐름이 어느편을 들것인지는 분명한데 북한 민주화세력을 부정하면 후 일에 무슨 낯으로 그들을 대할 것입니까?

결국 평화유지의 문제에서 이념과 체제에 결부된 통일의 문제로 비약한 데에 혼란의 발단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념과 체제의 문제는 언제인가는 넘어야 할 산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남 북 어느 쪽도 그 문제를 건설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처지에 있지 않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없을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도 통일은 20년 또는 30년 후에나 바라 볼 수 있는 일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불행히도 [남북기본합의서]는 8차의 남북 총리회담 끝에 좌절되고 말았습니다. 북측은 미국의 핵사찰 요구, 한-미 구사훈련 [팀스피릿드]의 재개를 회담 거부의 구실로 내세웠지만 본인이 보기에는 소련의 해체,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의 체제전환에 충격을 받은 평양이 “우리식 사회주의”로 정책의 방향을 바꾸기로 한 데에 원인이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8차의 회담 직후 북한측 대표인 연형묵 총리는 경질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후 평양의 사정도 달라 졌고 남한에서는 햇볕정책이 한계를 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이라도 기본합의서의 입장으로 되 돌아 갈 수밖에 없습니다. 즉 통일의 문제는 접어두고 오로지 평화유지를 위해 기본합의서에 명시한 대로 남북의 체제를 서로 인정하고 상호불가침과 내정불간섭의 원칙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입니다. 이 합의서 대로하면 햇볕이니, 포용이니 할  필요도 없고 이념 갈등의 소지도 없어지고 평양도 대등한 입장에서 받아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양측이 안보 불안에서 해방되면 자연스럽게  상호신뢰가 생겨나서 상호 협력의 길이 트일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도 난관은 허다하지만 인내를 가지고 대화를 계속해야 합니다. 남북간의 화해는 협력의 결과이지 원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힘 자라는 대로 경제적으로 평양을 도와주면 됩니다.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평양도 결국은 개혁개방의 방향으로 변화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들 자신의 일 입니다. 그들 문제의 해결은 그들에게 맡겨두고 우리는 우리의 내부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국민의 에너지를 집결해야 합니다. 이제 남북이 다같이 지금까지의 접근방법을 반성하고 새로운 전기(轉機)를 마련할 때라고 생각됩니다. 제9차 남북 고위급회담을 재개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인데 그것이 거북하다면 이번의 장관급 회담에서 남북 총리회담을 복원하여 [기본합의서의]의 입장을 재확인하자고 제의하는 것입니다. 이 합의가 성립되면  대통령이 평양에 구애됨이 없이 국민에게 국가이념과 통일의 기본 원칙을 재천명하여 국론 통일을 기할 수 있고  평양 역시 자기의 갈 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 이념과 체제에 관한 논쟁은 학자들에게 맡겨두고, 급변하는 세계경제정세 하에서 한국이 어떻게 살아 가야 할지 새로운 전략을 모색해야 할 때입니다.  

끝으로 우리가 북한을 어떻게 볼 것이냐에 대해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흔히 평양의 정권이 마치 북한인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외교적 입장에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겠지만 국민은 평양의 정권과 북한 동포를 구별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민은 영원한 것이지만 정권은 영원할 수가 없습니다. 남한에서는 선거를 통하여 정권이 빈번히 교체되나 북한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북한에서도 정권은 영원할 수가 없고 언제인가는 교체될 운명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평양의 정권 보다 북한 동포의 행복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남한 국민들은 평양의 정권에  대하여는 호의적이 아니지만 북한 동포를 도와야 한다는 데에는 대체로 이의가 없습니다. 기아에 신음하고 있는 동포를 보고만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작년 한해 정부가 북한에 대하여 쌀 30만톤, 비료 30만톤, 옥수수 20만톤을 보낸 것을 국민들은 누구나 이해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어느 신문에  주적 개념을 바꾸라는 글을 쓴 일이 있습니다.  단순한 용어의 문제이고 실질문제는 아니지만 북한을 우리의 주적이라고 하는 대신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에 따라  "국가안보와 자유민주체제에 중대한 위협을 주는 세력”을 주적으로 정의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필자가 그러한 제안을 한데에는 세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남북관계를 생각할 때 북한 동포와 북한 정권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북한의 동포는 영원한 것이지만 북한 정권은 영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북한 동포는 우리의 "주적"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주적" 이라고 하면 북한 동포가 섭섭해 할 것입니다. 둘째로 군인은 유사시에 나라를 위하여 생명을 바치는 것을 임무로 하는 것인데, 군인들이 자기의 목숨을 바쳐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모르면 용기가 나지 않을 것입니다. 즉 강한 군대는 강한 이념을 필요로 합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남북 화합을 강조하고 있는 터에 북한 동포를 주적이라고 하면 군인들은 헷갈리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셋째로 UN은 자유와 인권을 수호하는 국제적 노력의 일환으로 분쟁지역에 UN 경찰군을 파견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동티모르에 군대를 파견하고 있는 것인데 우리 장병들은 그 대의(大義)를 알기 때문에 긍지를 가지고 출정한 것입니다. 이 인류의 대의를 저 바리는 세력은 누가 되었던 우리의 “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