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논문

 남북관계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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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5뤌 11일 [한국 방송기자 클럽], 그리고 5월 29일 [육사 총동창회] 조찬강연회에서 이 원고에 따라 연설을 했다.


 

<한국의 역사적 과제>

우리나라는 1945년 해방이후 기본적으로 네 가지 문제와 대결해 왔다.

첫째는 새로운 민족국가를 건립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한반도는 미.소를 양축(兩軸)으로 하는 강대국들의 흥정의 대상이 되어 남북 분단의 비운을 맞게 되었는데 남한은 미국의 영향하에서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하는 대한민국을 건립한 반면 북한에 있어서는 소련의 영향하에서 공산주의 계획경제를 바탕으로 하는 조선인민공화국을 건립하게 되었다, 남한에서 나마 세계사적 조류에 순응하여 자유민주의 공화국을 건립하게 된 것은 불행 중 다행인데 여기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지도력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6.25 동란 시에 자유 민주를 위해 생명을 바친 30만 국군 및 UN군 장병들의 덕택으로 한반도 적화 통일 전략을 저지할 수 있었다. 아마도 이 대통령의 지도력과 국군 용사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남한은 공산화되고 말았을 것이다.

둘째의 과제는 조상 전래의 빈곤으로부터 탈출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지도력에 의하여 그 기초가 마련되었고 그 위에 오늘의 한국경제가 있다.

셋째의 과제는 정치적 근대화, 즉 민주적 대의정치를 구현하는 일인데 그 동안 권위주의적 대의정치체제의 과정을 거쳐 외형상으로는 민주적 대의정치체제로 이행하였으나 그 내용은 아직도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따라서 선진적 대의정치를 구현하는 것이 오늘의 역사적 과제로 남아 있다.

넷째의 과제는 남북 통일인데 김대중 대통령은 셋째의 과업이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에서 이 문제에 도전하고 있으나 역점(力點)의 순서가 바뀐 탓으로 여러 가지 내부적 문제에 봉착하고 있다.

작년 (2000년)의 역사적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간의 화해협력 정책이 추진되고 있으나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하여 각종 의문과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정부의 통일정책의 비전과 대북정책의 논리가 투명하지 못한 데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다섯 가지 의문>

많은 사람들이 제기하는 남북관계에 대한 의문점을 정리하면 대략 다섯 가지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는 평양의 공산독재체제의 전환 없이 북한 동포가 행복해 질 수 있는가? 둘째는 평양과 진정한 의미의 화해 협력이 가능한가? 셋째는 햇볕정책이 평양의 체제전환을 유도할 수 있는가? 넷째는 햇볕정책으로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가? 다섯째는 통일의 이념적 지표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논리적인 해명이나 이해가 없기 때문에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호응이 적고, 심지어 이념의 갈등이 심화 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 체제전환 없이 북한 동포가 행복해 질 수 있는가? >

먼저 제1의 질문에 대하여는 평양의 체제전환 없이 이북 동포가 빈곤과 압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무릇 인간사회의 근본 문제는 빵과 자유의 문제인데 공산주의는 빵과 자유의 문제의 어느 것도 만족스럽게 해결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양자를 양립 시킬 수 없는 체제라는 것은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이에 반하여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비록 나라의 문화와 역사적 배경에 따라 그 내용을 달리 하지만, 기본적으로 빵의 문제 해결과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의 신장을 가능케 하는 체제라는 것이 오늘의 보편적 인식이다. 우리 정치 지도자들 가운데 극 소수의 좌파를 제외하고 이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 전제를 놓고 남북 문제를 생각하지 않으면 논리적인 해답을 얻기 어렵다.

<진정한 화해 협력이 가능한가 >

제2의 질문 즉 북과의 진정한 의미의 화해협력이 가능하냐 하는 질문에 대하여는 우리 정부의 생각은 대략 다음과 같은 것이다. 평양이 역사적인 정상회담에 응했고 6.15선언에 합의하였으니 대화의 문은 열렸다. 우리가 북한의 비정상적 상태를 덮어두고 먼저 너그러운 태도를 보이면 화해 협력이 증진될 수 있을 것이다. 그 동안 상당한 변화를 볼 수 있었고 그 중에는 상호비방 중단, 2차의 이산가족 상봉, 38선 일부의 지뢰 제거와 철도, 도로 연결사업의 착수, 경제교류의 확대, 남북의 외무장관, 및 국방장관의 공식 회담 등을 들 수 있다-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표면적인 변화에 불과하고 본질적인 변화는 보이지 않고 있다. 신문 보도에 따르면1 북의 당초의 약속과는 달리 경의선 연결사업의 초기공사에 착수하지 않고 있고 또 지난 2월 지뢰 제거를 위해 남북이 합의한 "비무장지대 공동 규칙"에도 서명하지 않고 있다. 이산가족 상봉의 방식을 보더라도 그들의 주민에 대한 사상과 행동 통제에는 변함이 없다. 그리고 식량부족으로 국민의 기아 상태가 심각한데 지난 2001년 3월 27일 미 상원 청문회에서 주한 미군 사령관이 증언 한 바에 의하면 “북한군은 지난해보다 더 커지고, 나아지고, 가까워지고, 치명적이 되었다.2 한다. 그리고 그나마도 지금은 남북 회담이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화해협력 정책이 민족적 신뢰와 동질성을 회복할 수 있으려면 북의 정권과 인민의 생각이 같아야 한다. 남북간의 경제, 문화, 스포츠 등의 교류를 계속하면 남북 인민들 사이에는 동포애와 동질성이 두터워 질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남북 팀이 올림픽 경기에서 이겼을 때 남북 선수가 얼싸안고 기뻐하는 광경을 보지 않았는가. 그러나 불행히도 평양 정권은 남북 민간들의 동화(同化)를 크게 경계하고 있고, 그러기에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관광 등과 같은 민간 접촉을 엄격한 통제하에 두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남북 정부간의 대화는 동상이몽의 게임이라 할 수 있다. 남쪽은 화해협력을 통하여 북한의 개혁 개방을 유도하고자 하나 북에서는 개혁개방은 체제유지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오로지 남한에서 경제원조와 협력을 끌어 내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므로 제2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불확실하다고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 체제전환을 유도할 수 있는가?>

제3의 질문, 즉 우리의 햇볕정책이 과연 북의 체제 전환을 유도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검토해 보자. 이에 대한 정부의 견해는, 먼저 우리가 화해 협력을 주도하고 북한의 개혁 개방을 지원하면 점차로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가 일어 나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햇볕정책의 논리인데 이에 대하여는 두 가지 의문이 있다. 첫째로 개방을 하면 북한 주민들이 외부세계에 눈뜨게 되어 민주화의 갈망이 높아지고 현실에 대한 불만이 누적될 것이다. 물 속에 눌러둔 고무 풍선에서 손을 떼면 풍선이 물 위로 튀어 오르는 것과 같이, 주민통제를 완화하면 누적된 불만이 일시에 폭발할 위험이 있다. 중국에 있어서도 1976년 모택동 사망(9월 9일) 직후 4인방 타도를 외치는 천안문 데모사건, 1986~7년의 호요방의 정치개혁을 지지하는 제2의 천안문 데모사건, 그리고 1989년 6월4일,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들을 무참히 압살한 제3의 천안문 사건 등이 있었다.3 그리고 사정은 다르지만 우리나라의 민주화 과정에 있어서도 4.19 학생의거와 5.18 광주의 비극이 있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평양이 이와 같은 사태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평양 정치체제의 행방이 결정될 것이다.

둘째로 최근에 김정일 위원장이 신사고론을 주장하고 상해에 가서 중국의 개혁, 개방의 성과에 큰 감명을 받았다는 보도에 고무되어 김 대통령은 북한이 “제2의 중국”을 지향하고 있다고 평가하였다. 그러나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즉 중국에서는 鄧小平이 이끄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출현하여 毛澤東 주의로부터 개혁-개방주의로 전환하는 권력구조의 개편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1987년 중공 11기 3중 전회에서 [중국인민공화국 창건 이후 우리당의 역사에 관한 약간의 문제에 대한 결의]를 채택하여 과거를 청산하는 절차가 있었다.4 북한에서 과연 이러한 권력구조의 개편과 과거사의 청산-그것은 남측과도 크게 관련되는 문제이다- 이 일어날지는 미지수이다. 그러므로 제3의 질문에 대하여도 예측할 수 없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 평화정착이 가능한가>

제 4의 질문, 즉 햇볕정책으로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가에 대하여는 이른바 진보적 인사들의 답변이 있다. 그들에 의하면 통일은 20년 혹 30년 후 에나 기대할 수 있는 일이니 지금은 남북이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화해협력을 추진하는 동시에 미국의 군사적 위협을 제거하는 것이 평화 정착의 길이다, 라는 것이다.

평화 유지는 어느 한 편이 정치적 목적으로 다른 한편을 무력으로 협박하거나 무력을 사용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믿는 상호 신뢰가 있어야 가능하다. 화해 협력이 그러한 상호신뢰를 구축하는 길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남북의 이념과 체제가 다른 이상 완전한 상호신뢰는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남한은 화해 협력을 통하여 북의 개혁 개방을 유도하고자 하고 만약 그러한 목적을 포기하면 남한의 대북정책은 [통일 없는 공존]을 영구화하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반면에 북에서는 남한에 대한 “적화 통일” 노선을 버리면 공산주의 정권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진보파들은 미군의 군사적 위협이 평양의 화해 협력 내지 개혁 개방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과거에, 군사정권이 정권안보를 위해 북의 위협을 과장하고 있다고 소리 높게 외치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북에 대해서는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평양이 정말로 미국의 군사위협 때문에 개혁 개방을 주저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야말로 체제안보를 위해 주민에게 조석으로 "미 제국주의의 음모"를 선동하고 있는 것인지 냉정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

화해 협력이 평화유지로 통하려면 무엇 보다 행동면에서의 상호 접근이 있어야 한다. 진보파들은 마치 남쪽의 사정 때문에 모든 일이 안 되는 것처럼 말하는데 왜 북쪽의 태도와 문제점에 관하여는 말이 없는지 알 수가 없다. 그들은 앞으로 20-30년 동안 평양의 현체제가 지속된다는 암묵적인 가정하에서 남북 연합 또는 남북 연방을 논하고 있다. 그러나 위에서 본 바와 같이 20-30년의 세월이 흐르는 사이, 만약 북에서 개혁 개방이 추진된다면 북한 사회는 크게 변화할 것이고, 그것은 우리의 대북정책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어쨌든 아직은 북의 대남 전략이 본질적으로 변했다는 증거는 없다. 그런데 남쪽이 일방적으로 전쟁 억지력을 약화시킨다면 그것은 오히려 평화 유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요컨대 제4의 질문에 대하여는 화해협력의 노력은 남북간의 긴장완화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남북 체제의 차이가 해소되지 않는 한 상호 신뢰에는 한계가 있고, 군사적 대치상태는 계속될 것이다.

<통일의 목표가 무엇인가>

제5의 질문, 즉 남북통일의 이념적 목표가 무엇이냐 하는 질문에 대하여는 국민 대다수가 우리나라의 국가 이념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하는 민족국가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그것을 명확하게 말하지 않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자유 민주와 인권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고 그 때문에 노벨 평화상을 타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에 있어서의 자유와 인권 문제에 대하여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말을 하면 평양의 반발을 사서 모처럼 시작한 대화를 깨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국가이념과 통일 목표를 밝히는 것이 평양의 눈치를 보아야 할 만큼 가벼운 일이냐 하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 심지어 국가 정체성에 대한 신념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냐 하는 의혹을 살 수도 있다. 어차피 평양은 남한 국민과 정부의 뜻을 모를리 없고 어디까지나 자신의 입장과 실리에 따라 행동할 것인데 말이다.

특히 지금 남한에서는 이념 갈등이 위험 수위에 달하고 있는데 대통령은 이러한 때에 국민에게 국가이념과 통일 목표를 천명하여 국론통일을 꾀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 한다. 국가이념이 명확하지 않으면 국민들의 정신적 구심점이 없어지고 국민적 통합이 어렵게 된다. 뿐만 아니라 평양에 대하여 눈 가리고 아옹 식으로 할 말을 안 한다면 국제사회에서 정직하지 못하고 외교의 정도가 아니라는 평을 들을 수도 있다.

통일 목표가 투명하지 않은 데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어디에서나 독재국가의 체제전환은 민주화를 추진하는 새로운 정치세력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인데, 남한의 진보파들은 남한 지식인들의 북한 체제 비판과 황장엽 씨의 민주화 운동을 반 통일 보수 세력으로 매도하고 있고, 정부 또한 그에 동조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일부 논자들은 민족의 통일이 모든 가치에 우선하므로 모든 것을 초월하여 통일을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느 월간 잡지에 실린 한 논자의 말을 빌리면 “우리 사이에 조금의 견해차이가 있더라도 우리는 대승적 차원에서 분단의 역사를 종식하고 민족화해와 평화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통일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것은 백번 옳은 일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어떠한 통일을 어떻게 추구 하느냐가 문제이다. 논자는 “조금의 견해 차이”를 해결하면 될 것 같이 말하는데 과연 남북간의 차이를 "조금의 견해차"의 문제로 치부할 수 있는가? 논자는 평양의 견해나 태도에 대하여는 말이 없고, 다만 남한에 대해서는 "역사의 방향에 브레이크를 거는 일부 냉전세력이 조지 부시 대통령의 보수적인 미국정권이 등장함에 따라 나라 안팎으로 더욱 힘을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민족공동체 의식 및 건전한 안보관을 바탕으로 통일을 이룩하는 데 필요한 가치관과 태도의 함양을 목적으로 하는 통일교육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두 말할 필요도 없이 남북간의 근본 문제는 북한의 공산 독재체제와 남한의 자유민주체제 사이의 대립인데 그러면 북한에서는 자유민주주의 가치관을 교육할 필요는 없는 것인지 또는 그것이 지금의 평양 정권 하에서 가능한 일인지 묻고 싶다.

요컨대 통일지상주의는 현실성이 없는 제안이다. 왜냐하면 통일지상이라면 북은 자기식의 통일을 들고 나올 것이고 남한 역시 그 점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남북간의 이념과 체제상의 어떠한 통합이 가능하지 않으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도 탁상공론(卓上空論)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그것이 가능하려면 평양이 최소한 자유선거와 인권 개념의 수정을 받아드려야 한다. 그러나 평양의 인권개념은 「 북한체제에 순응하고 당과 영도자를 충성으로 받들고 모든 것을 다 바쳐 투쟁하는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것]5으로 되어 있다. 지금으로서는 평양이 이러한 인권 개념의 수정과 자유선거를 받아드릴 가망이 없다는 데에 근본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북한이 그것을 받아드리면 그것은 이미 자유민주의 스펙트럼(spectrum)에 포함되는 것이고 따라서 절충이 아니라 일원화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자유 민주와 독재체제가 공존하는 통일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통일이라 할 수 없다. 그러므로 통일을 추구함에 있어서는 이념과 체제의 선택이 불가피하다

<북한을 어떻게 볼 것인가>

우리는 흔히 평양의 정권이 마치 북한인 것처럼 말하고 있다. 정부는 외교적 입장에서 그럴 수밖에 없지만 국민은 평양의 정권과 북한 동포를 구별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국민은 영원한 것이지만 정권은 영원할 수 가 없다. 남한에서는 선거를 통하여 정권이 빈번히 교체되나 북한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러나 북한에서도 정권은 영원할 수 가 없고 언제인가는 교체될 운명에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평양의 정권 보다 북한 동포의 행복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독일의 통일 과정이 말해 주듯이 정권과 국민의 선택이 다를 수 있다. 독일 통일은 서독 정부의 노력과 유리한 국제환경에 힘입은 바가 적지 않으나,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동독 인민 자신들이었다. 통일 얼마 전까지 Leipzig의 광장에는 매 월요일 마다 100만 명의 동독 군중이 모여 민주화와 통일을 절규하였는데 동독 정권은 이를 제지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베를린의 벽은 무너지고 만 것인데 다행한 것은 동독이 소련의 영향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고르바쵸프가 그를 묵인한 것과 동독 경찰이 총을 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에 대하여 흡수통일의 의사가 없다고 해도 반드시 그의 마음대로 되는 일은 아니다. 남한 국민들은 평화적이고 질서 있는 통일을 염원하지만 그것도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다.

같은 맥락에서 남한 국민들은 평양의 정권에 대하여는 호의적이 아니지만 북한 동포를 도와야 한다는 데에는 이의가 없다. 기아에 신음하고 있는 동포를 보고만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작년 한해 정부가 북한에 대하여 쌀 30만톤, 비료 30만톤, 옥수수 20만톤을 보낸 것도 그 때문이다.

필자는 어느 신문에 주적 개념을 바꾸라고 제의하는 글을 쓴 일이 있다. 단순한 용어의 문제이고 실질문제는 아니지만 북한을 우리의 주적이라고 하는 대신 대한민국의 헌법의 규정에 따라 "자유 민주체제와 안보에 중대한 위협을 주는 세력”을 주적으로 정의하라는 것이었다. 필자가 그러한 제안을 한데에는 세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남북관계를 생각할 때 북한 동포와 북한 정권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동포는 영원한 것이지만 북한 정권은 영원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북한 동포는 우리의 "주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 주적" 이라고 하면 북한 동포가 섭섭해 할 것이다. 둘째로 군인은 유사시에 나라를 위해 생명을 바치는 것을 임무로 하는 것인데 군인들이 자기의 목숨을 바쳐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모르면 용기가 나지 않을 것이다. 즉 강한 군대는 강한 이념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대통령이 남북 화합을 강조하고 있는 터에 북한 동포를 주적이라고 하면 군인들은 헷갈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셋째로 UN은 자유와 인권을 수호하는 국제적 노력의 일환으로 분쟁지역에 UN 경찰군을 파견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동티모르에 군대를 파견하고 있는 것인데 우리 장병들은 그 대의(大義)를 알기 때문에 긍지를 가지고 출정한 것이다. 이 인류의 대의를 저버리는 세력은 누가 되었던 우리의 “적”이라 할 수 있다.

<대북정책의 방향>

이상에서 남북관계에 대한 의문점들을 검토해 보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평양이 체제전환을 하지 않는 한 화해 협력과 통일의 목적은 달성되기 힘든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의 대북정책에 걸 수 있는 기대는 어떻게 하든 한반도에 평화를 유지하는 것 이상은 될 수가 없다. 만약 현재의 휴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꿀 수 있다면 큰 다행이다.

그런데 이러한 평화 유지를 위한 대북정책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1992년 2월 19일에 발효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가 있는 데 그것이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이 합의서는 평화와 불가침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열거 했으되 통일에 관하여는 언급이 없다. 통일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인식이 양측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남북 정상회담과 [6.15 남북 공동선언]은 이러한 총리급 차원의 합의를 정상급 회담의 합의로 끌어 올린 데에 큰 의의가 있다고 하겠는데, 동시에 동 선언은 남쪽의 국가연합과 북쪽의 “낮은 단계의 국가연방”의 공통점을 기초로 하여 통일을 지향한다(제2조)고 되어있다.

이것은 중대한 비약이다. 그래서 이를 계기로 남한에서는 통일논쟁이 벌어지게 된 것인데 한편에서는 6.15선언이 평화와 통일의 대로를 얼었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그러한 약속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며 대통령이 국민의 동의도 없이 그러한 약속을 할 수 있느냐 하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평양에서는 공동선언 실천에 필요한 개혁개방 대신에 김정일 위원장을 민족과 통일의 최고 지도자로 부각시키는 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리하여 세 갈래의 동상이몽 격인 양상이 벌어지고 있는데 결국 평화유지의 문제에서 이념과 체제에 결부된 통일의 문제로 비약한 데에 혼란의 발단이 있는 것이다. 이왕 이렇게 된 바에야 차제에 우리의 국가이념과 통일 방안에 대한 철저한 논의를 통해 국론 수렴을 꾀할 필요가 있다.  

남북의 화해 협력은 그 자체로서 선(善)이고 가치 있는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대화는 계속해야 한다. 그러나 선의(善意)만으로 정책이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정책은 언제나 현실을 초월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한편으로 대북 화해협력을 강조하면서도 다른 한편 국방에 한 치의 허점이 없도록 강조하고 있는 것이 그것을 말해준다. 따라서 우리는 이상을 추구하되 현실을 무시할 수 없고 그러한 의미에서 정책적 통일론과 정서적 통일론을 분별해야 한다. 정부의 대북정책에 반대하면 보수이고 찬성하면 진보라는 등식은 옳지가 않다. 진보냐 보수냐가 문제가 아니라 대북정책의 논리적 근거가 무엇이고 불확실성과 미지의 변수 (국제정세를 포함한)가 무엇이냐 하는 것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여 합리적이고 현명한 대북정책을 도출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몇 가지 필자의 사견을 말한다면 다음과 같다.

1. 정부는 대북정책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보다 분명히 천명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자유민주주의 이외의 어떠한 다른 이념에 입각한 남북 통일을 생각할 수 있는 것인지 명백히 설명해야 한다. 다시 말하거니와 국가이념이 명백하지 않으면 국민들의 정신적 구심점이 없어지고 따라서 국민적 통합이 어렵게 된다.

2. 우리의 대북정책의 목표가 뚜렷하다면 우리의 입장을 주체적으로 지켜 나가야 한다. 즉 타협의 원칙이냐 원칙의 타협이냐를 분명히 해야 한다. 이것은 남북관계와 협상에 있어서 언제나 대결적인 자세를 취하라는 말은 아니다. 대결적 자세를 취하지 않고 우리의 입장을 수호하는 것은 외교적 역량에 달려 있다.

3. 체제전환은 새로운 정치세력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필연적이다. 우리는 북한의 현 정권이 평화적으로 체제전환을 이룩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그렇다고 북한 내외(內外)의 개혁주의와 민주화 운동을 반 통일 세력으로 보아서는 아니 된다.

4. 정부가 통일 원칙을 명시하지 않으면 북한동포의 민주화의 염원을 무시하는 역사적 과오를 범하게 되고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기 어렵다.

5. 정부는 탈북자 들의 보호와 민주사회에 적응하는 동화대책을 강화해야 한다.

6. 우리는 동포애의 견지에서 민생구호에 필요한 경제 원조는 계속 해야 한다.  기타의 경제원조는 평양의 개혁 개방 노력을 유도할 때에만 의미가 있다.

7. 우리의 힘만으로 평양의 개혁-개방을 유도하기 어려운 만큼, 평양을 국제사회로 이끌어내서 우방들의 영향력이 평양에 미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현 정부의 외교 정책이라고 생각되는데 대북 전략의 관점에서 현명한 정책이다.

8. 대북 경제 협력은 남한 자신의 경제력과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지금 우리 자신이 경제적 난국에 처해 있고 북한을 도울 수 있는 여력이 크지 않다. 그래서 필자는 장기대책으로 동북아개발은행의 설립을 주장해 왔는데, 동 은행이 설립되면 재원 조달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대북 경제정책을 추진함에 있어서 다국적 접근이 용이해 진다.

9. 정부는 민간투자의 길을 열어주되 무작정 그것을 장려할 것이 아니라 냉철하게 북한의 투자환경을 관찰하여 그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민간기업이 어디까지나 자기 책임 하에 대북 진출을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끝

    

  1. 2001년 5월 25일 중앙일보
  2. Pyongyang’s military machine is "bigger, better, closer, deadlier," Gen. Thomas A. Schwartz,in testimony before the Senate Armed Services Committee. Stars and Stripes , April 1, 2001
  3. 자세한 설명은 필자의 별고 중국의 이념적 갈등과 민주화 운동을 보기 바란다.
  4. 주 3 참조
  5. 국토통일원 Web Site, [북한의 인권개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