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에서의 다자간 경제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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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5년 2월 16일 제5회 동북아시아 경제포럼
영문기조연설 번역, 일본, 니키타


 

이번 회의는 1993년 9월에 한국의 용평에서 개최되었던 회의에 뒤이은 제5차 동북아 경제 포럼이다. 용평회의에서 참석자들은 동북아 지역 국가간의 긴밀한 상호보완성에 기인하여 역내 경제협력 및 발전의 강력한 토대가 형성될 수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특히 동북아 경제 포럼의 가나모리 의장은 동북아 역내 국가간의 경제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들이 천연자원, 노동력, 기술수준 그리고 자본력에서 매우 높은 상호보완성이 있음을 설파한 바 있다. 또한 동북아 역내국가 모두가 비록 발전의 한계에는 직면하고 있지만 상호협력의 강화를 통해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높이 평가하였다.

이에 덧붙여 필자는 동북아 역내 국가간의 경제협력이 이 지역에서의 평화유지에 근본적인 조건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적으로 이러한 역내 경제협력을 추진하는데 있어서 수많은 정치, 경제적 어려움에 봉착하고 있어 이를 실현하는데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 특히 이러한 현실 때문에 역내 경제협력을 추진하는 방법과 수단을 채택하는 데에도 의견이 분분해지고 있다. 이러한 의견중에는 쌍무적 접근에 반대되는 개념으로서 다자간 접근방식의 효율성에 관한 것이 있는데 필자는 이 문제에 초점을 두어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우선 무엇보다도 동북아시아에서는 시장의 힘이 역내 모든 국가에 작용을 미쳐 시장통합이 자연스럽게 역내 경제협력의 제도화로 연결될 수 있을 때까지 쌍무적 협상을 통해 경제협력을 다져가자는 의견이 있다.

그러나 PECC와 APEC과 관련해서 시장통합이 태평양지역에서의 경제협력제도화에 선행되어 이루어졌다는 점을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으며 아시아 태평양지역의 어느 정부도 역내 통합을 심사숙고하여 추진한 사실이 없고 단지 국경을 넘어서서 작용하는 시장의 힘을 방해하는 요소를 줄이는데 그쳤다는 점을 주목하여야 할 것이다. 더욱이 상호신뢰가 취약한 현존정치환경 하에서는 다자간 의사결정방식이 머나먼 꿈이라는 회의론이 대두되고 있다.

필자는 비록 이러한 의견에 대부분 동의하지만 동북아 역내 국가간의 경제협력형 태로서 다자간 접근방식의 실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는 데는 다소 의문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사회주의 국가들도 소비에트 연방공화국의 해체 이전에 시장지향적 체제를 보유하고 있지 않으면서도 COMECON과 같은 다자간 협력체제를 유지한 바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의문을 야기시키는 것이다.

시장통합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으나 바로 이것이 다자간 경제협력 추진을 위한 유일한 전제조건은 아니다. 시장통합의 추진을 위해서 당사국들이 신중하게 다자간 협력을 강구해 나가는 것도 필요하지만 쌍무적 접근방식과 다자간 접근방식을 상호배타적인 것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음을 강조하고 싶다.

필자는 전문적 경험을 통해서 이러한 두 가지 접근방식은 상호보완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 예를 들어 PECC나 APEC에서 이루어진 통상관련 협의는 미국과 한국의 쌍무적 통상협상에 영향을 미친 바 있다. 이외는 역으로 미국의 경우는 타국과의 통상협상에서 우선 쌍무간 협의로 시작하여 이를 포괄적 협정으로 유도시키기 위해 다자간 협상 테이블로 가져가는 예를 우리는 흔히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다자간 접근방식은 동북아 역내 국가간의 정치적 대립으로 많은 제약을 받아왔다. 그러나 상황은 우리에게 더욱 유리한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비록 많은 일본인들이 북방 도서(島嶼)문제가 러시아-일본간 교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북방 도서(島嶼)문제가 양국간 경제교류에 얼마나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북한도 역시 변하고 있다. 비록 김일성 사후 정치적으로는 불확실한 상태에 있지만 북한정부는 미국, 일본,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남한과도 관계 정상화를 모색하기로 결정한 듯 하다. 미국과 북한 간의 핵 문제에 관한 제네바 협정은 핵확산 금지 측면 뿐만 아니라 북한에 대한 경제적 충격이라는 면에서도 의미있는 일이다. 제네바 협정에 따른 북한의 경수로 건설은 남한과 그 동맹국들로부터 대량의 인력과 물자가 북한으로 유입되게 만들 것이며, 이는 북한주민을 외부 세계와 단절시켜 온 북한 정부를 매우 곤혹스럽게 할 것이다.

최근 북한정부가 조심스럽게 나진·선봉 지역을 자유무역지대로 개방하기 시작하였고 이에 따라 미국도 부분적으로 북한에 대한 경제적 제재조치를 풀기 시작했다. 북한이 중국식 경제개혁모델을 취하고 다자간 기구에 참여하면서 점차 그문호를 개방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것이 다수의 견해이다.

다자간 접근방식에 대한 회의론은 ASEAN과 같은 지역 그룹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 예컨대 동북아시아(NEA)는 아시아-태평양지역권내에서 ASEAN과 같은 소지역 통합체를 갖고 있지 않는 유일한 지역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동북아시아를 위한 소지역통합체가 현재는 필요 없다고 믿고 있는데 이는 그와 같은 지역통합으로 얻을 수 있는 어떤 실질적인 이익을 구체화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차라리 이런 점에서 APEC 내에 러시아, 몽골, 북한을 회원국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동북아 지역에서의 경제협력을 위한 다른 형태의 다자간 접근방식이 있는데 두만강 프로젝트가 그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동 프로젝트는 지역경제협력의 한 종류로서 다자간 방식에 의한 첫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UNDP의 후원하에 다자간 협상은 여러해 동안 조금씩 진행되었고 최종결과가 마침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렇지만 필자의 견해로는 이러한 종류의 다자간 접근방식은 최종적으로 성공적인 결론에 이를 때까지 끈기있게 계속되어야 하며 이러한 과정은 시간이 걸리긴 하나, 다자간 협상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동북아시아에서는 중요하다고 본다.

동북아지역에서의 경제적 협력을 위한 다른 형태의 다자간 접근방식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일례로서 동북아시아 개발은행(NEADB)을 설립하기 위한 아이디어가 이 포럼에서 몇 번 논의되어 왔는데 그것은 지역적 통합체가 아니라 동북아시아에서의 지역협력을 제도화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즉 NEADB는 말 뿐인 기구가 아니라 구체적인 활동과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기구이다. NEADB는 동북아시아를 위해 많은 금액의 자금원을 끌어들이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며 동북아시아의 개발도상국들이 교통, 통신 및 에너지인프라에 대한 자금을 조달하고 새로운 사업에 착수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NEADB의 설립으로 지역 내 투자가들과 정책 입안자들간의 정보 교환 및 전파가 원활하게 될 것이다. 또한 NEADB는 선진시장경제로부터 체제전환중인 동북아 지역으로 지식, 경험 및 제도를 전파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하는 한편 금융, 보험, 통신 등의 분야에서 전문적 교육을 통해 개도국 내에 적정한 제도가 도입되도록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NEADB의 설립은 동북아 국가 간의 상호이해를 증진시키는 한편 상호이익을 위한 다자간 협력을 촉진시키는 분위기를 조성하게 될 것이다. NEADB 설립의 이론적 근거와 이에 따른 문제점들은 고 B. 캠프벨 박사와 히로시 카카즈 교수가 작성한 보고서에 잘 언급되어 있다. 이 보고서 요약분은 용평 포럼의 마지막 회의에서 이미 배포된 바 있고, 그 후 94년 8월에 서울의 세종연구소에서 개최된 세미나에서도 다시 제공되었다. 따라서 필자는 그 논의의 상세한 내용을 언급하기 보다는 NEADB의 설립을 대변하는 입장에서 필자는 일본과 다른 지역의 몇몇 학자들에 의해 제기된 회의적 견해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고자 합니다.

회의론자들의 첫번째 질문은 동아시아지역에서 북한을 제외한 모든 나라들을 대상으로 이미 세계은행, ADB 그리고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이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에 별도의 지역금융기관이 있어야 할 필요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즉 동일한 국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기존의 금융기관들과 NEADB의 기능이 중복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세계은행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다자간 개발은행들, 즉 미주개발은행(IADB), 아프리카개발은행(ADB), 중동개발은행(MEDB),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그리고 아시아개발은행(ADB)들이 존재하는 것일까? 세계은행이 전 세계국가를 대상으로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은행들이 존재하는 데는 반드시 어떤 타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필자의 생각으로 특정지역의 고유한 환경에서 야기되는 특수한 필요를 보다 잘 충족시켜 주기 위해서는 지역적으로 특화된 은행이 필요하다는 것이 주된 이유라고 본다. 이러한 관점에서 캠프벨 교수는 왜 동북아지역에 지역금융기관이 필요한가에 대해 잘 설명해 주었는데 이하에서 필자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이를 다시 설명해 보고자 한다.

첫째, 동북아시아에는 두 개의 선진시장경제(일본과 한국)와 네 개의 체제전환중인 과거 계획경제지역이 서로 인접하여 공존하고 있다. 그리고 경제적 교환과 협력의 양태가 다른 지역과는 매우 다르다. 또 두 개의 시장경제, 즉 일본과 한국은 이웃의 개도국들로 하여금 가능한 신속하게 체제를 전환하여 경제개발을 이룩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많은 수단들을 보유하고 있다. 과거 계획경제였던 지역이 현재 가장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은 시장경제의 경험을 배우는 것과 함께 자신들이 생산한 원자재를 국내 및 해외시장에 공급할 수 있는 수송과 통신 및 하부구조를 구축하는 일이다. 그러나 매우 상이한 경제체제가 포함되어 있고 체제전환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 동북아 지역에서 지역적으로 특화된 금융기관 이외에는 어떤 것도 특수한 지역적 요구와 정치적 현실에 충분히 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둘째로는 동북아시아 국가들이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 및 주요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는 데 있어서 직면하는 문제점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주요 개발계획을 위해 대출자금을 할당하는데도 기존의 은행들은 여러 국가들간의 정치적 균형을 생각해야 하며 이를 충분히 고려치 않는 경우에는 해당 은행의 이사회에서 불공평의 문제점들이 제기될 수도 있다.

이러한 제약은 동북아시아 국가들에게 다음과 같은 두가지의 함축적 의미를 제공한다. 첫째, 세계 주요 개발은행들이 기형적으로 큰 규모의 중국경제와 자금수요를 충분하게 고려하지 못한 결과 중국의 북동지역은 은행기금을 사용하려면 치열한 경쟁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아울러 EBRD의 경우에도 지리적으로 가까운 서러시아와 동유럽에 더 역점을 두어 한정된 기금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극동러시아의 이해가 충족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시 말해 기존 은행들은 대출 시에 지역간 보완성에는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면 신생소국으로서 몽고는 아시아개발은행과 세계은행의 관심권 밖에 있을 가능성이 있으며 북한의 경우에도 정치적 이유로 인해 기존은행들의 충분한 고려에서 제외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둘째로 동북아국가들은 기존의 은행으로부터 이용가능한 기금에 덧붙여 국제적 자금원으로부터의 금융자원조달을 극대화하기 위한 자구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필자가 생각하기에 NEADB를 설립해야 하는 설득력 있는 이유로 볼 수 있다.

셋째로 동북아에서의 사회간접자본 건설계획은 기존 은행들의 내부 대출규정이나 정관에 따라서 추진되는 개별국가차원의 계획보다는 다국적 차원의 계획에 의해서 실시될 때 더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또한 동북아에서 한 국가에 의한 경제적 지배라는 정치적 의구심을 극소화하는 데에도 특히 중요한 것이다.

또 다른 회의론은 NEADB를 설립하고 운영하는데 있어서 필요한 금융 및 경영자원의 동원과 관련된 문제이다. 즉 한국으로부터 이용가능한 금융자원은 매우 제한되어 있으며, 일본은 자국의 원조기금을 지역적으로 분배하는데 있어서 재조정이 필요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더욱이 일본의 인적자원이 부적합하여 대외협력에서 일본이 취약점을 갖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데 한국 역시 이 분야에서의 경험이 일천하다. NEADB는 ADB에 비하여 규모에 있어서 더 작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것이 규모의 경제라는 측면에서 효율성을 의심받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측은 일본과 한국을 포함한 지역국가들의 경제적, 지적 힘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한 것으로 보인다.카카즈 교수는 기금의 규모에 대한 개략적인 추정치를 계산하였는데 그에 따르면 ADB의 최초 출자자본은 6억 달러로 지역회원국 국민소득의 0.5% 수준이었지만 이러한 수준을 NEADB에 적용시키게 되면 최초 출자자본은 150억 달러에서 200억 달러의 규모가 될 것이며, 이는 1992년 ADB의 230억 달러와 아프리카 개발은행의 210억 출자자본과 필적할만한 것이다. 또한 총출자자본의 1/2은 5년 이내에 지출고 잔액은 청구 즉시 지불되는 자본(Callable Capital)이 될 것이다.

카카즈 교수는 5년 이내에 적립된 80∼100억 달러로 해마다 대출과 투자를 위해 20억 내지 30억 달러를 동원시킬 수 있음을 상기시켰다. 이는 상당한 액수이기는 하나 그것만으로는 해당지역의 적정자본 요구량 수준을 충족시킬 수 없다. 따라서 카카즈 교수와 캠프벨 교수는 여타의 다자간 관계가 고려되어야 하며 NEADB가 NEADB의 관여 없이는 동원할 수 없는 민간부문 대출자들을 끌어들여 대출 컨소시엄을 구성하는데 선도적 역할을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바로 이점이 동북아지역은행의 필요성을 고조시키고 있는 것이다.

다음 문제는 위에서 언급한 바 있는 막대한 약정자본을 어떻게 동원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에 관한 필자의 솔직한 생각은 관련 자금의 동원가능성이라기 보다는 정치적 의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100억 달러 내외의 총염출자본은 1992년 일본 경상수지흑자의 8%에도 미달하며 최근 10년 간 축적해 온 총흑자의 극히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 물론 국민소득의 0.5%라는 계산방식을 도입한다면 일본은 100억 내지 70억 달러 중 일부분만을 책임지면 될 것이다. 만약 우리가 대만과 미국 그리고 유럽국가들도 회원이 될 수 있도록 설득할 수 있다면 일본과 다른 나라들의 할당액은 훨씬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5년 내에 5억 달러를 지불해야 한다. 이는 최근의 경상수지 적자재현을 고려해 볼 때 상당히 큰 금액이다. 그러나 러시아에 대한 30억 달러의 경제원조와 핵무기 확산금지를 위한 다자간 노력으로서 북한 경수로 건설을 지원하기 위한 수십억 달러의 공여약속 등을 한국이 이미 제시한 것을 보면 동북아지역의 이익을 위해 이러한 정도의 금융부담은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정치적 의지가 있는 듯 하다.

러시아와 중국의 납입자본금은 각각 9억 달러 정도로 추산된다. 중국의 경우 이는 1991년 말 중국 외환보유고의 약 2%에 해당되는 것이다. 동북아지역은행이 설립될 경우 주요 수혜자 중의 하나가 될 중국은 이 재정분담 의무액을 거부할 것 같지는 않다. 지역은행으로부터 얻어지는 큰 이익에 대한 기대로 러시아의 경우도 덩달아 가입할 것으로 보여진다.

필자는 왜 지역은행의 설립 및 운영을 위해 필요한 운용자금이 조달 불가능한 것으로 제안되었는지가 의문스럽다. 은행 운영을 위해서는 숙련되고 잘 교육된 아시아인들이 많이 있다. 만약 아시아인 인력으로 불충분한다면 이 은행은 서구국가들로부터 재능있는 전문가들을 채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카카즈 교수는 ADB내에도 선진국 출신의 전문가들이 동북아 지역 전문가들보다 많다고 한다.

아울러 세계은행과 ADB가 차입국들이 제출한 개발계획을 심사하는데 있어서 경제적 합리성에 주로 초점을 맞추어 정치적 중립을 취하는데 보다 적합한 은행이라고 주장하는 의견도 있다. 과거 명령경제체제국들의 경제적 개혁에 대한 이들 은행의 조언이 국내 문제에 대한 간섭으로 받아들여질 것 같지는 않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NEADB가 세계은행이나 아시아개발은행(ADB)과 같은 정도의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되지 않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다자간 금융기관이 한 국가의 정치적인 문제에 공공연히 개입한다면 결국에는 실패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문제가 되는 것은 동북아지역의 정치적 의지와 지도력의 부족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이 정치적 의지를 가지고 다른 국가들의 지원하에 지도적인 역할을 행사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된다. 국제적인 문제에 있어 지도적인 역할을 극구 꺼리는 일본의 태도는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일본은 동북아 및 세계무대에서 자국의 위치를 재평가해야 한다. 미국 및 유럽 시장에 의존하는 수출방식으로 매년 무역수지 흑자를 누적시키는 행위를 얼마나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동북아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이 지역이 얼마나 중요한 잠재시장인지, 동시에 이 지역의 성장과 발전을 가속화시키는 것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일본은 깨닫게 될 것이다. 미국과 유럽과의 통상관계에서 체득한 경험에 비추어 보더라도 이 지역 국가 및 기타 국가들과의 만성적인 무역불균형이 비록 일정 부분 그들 국가 탓이라고 하더라도 바람직스럽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또한 일본은 쌍무적이고 시장지향적인 방향에서 동북아시아의 개발도상국들에 대한 경제적인 침투를 지속하는 것은 동북아 및 세계무대에서 지도자로서의 책임을 회피하는데 급급한 경제공룡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만을 더욱 강화시킬 뿐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동북아시아 지역에서의 다자간 경제협력을 이끌어 내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을 뿐더러 근본적으로 아시아인들은 서로 협력하여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기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그러나 시장기구만으로 이러한 약점을 치유해야 한다고 속단하는 것은 성급할 뿐더러 편파적인 결론이다. 이 문제를 단순히 시장기구에 맡겨 버리는 것은 경제는 물론 국가사회의 모든 문제에 있어 정부의 역할이 절대적인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동북아 국가들의 전통과도 상치되는 것이다.

ASEAN의 경험에 비추어 지역적인 협력은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일 수도 있지만 결국에는 자유무역지대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세계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자유롭고 번영하는 동북아시아 공동체로 가는 긴 여행을 시작해야 하며 NEADB의 설립은 그 첫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