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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보만 잡으면 그만인가 ?

 -가계 부채 급증에 가려진 문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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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5월 2일(목) 중앙일보 칼럼 게재


 

 요즘 가계대출의 급증이 문제시 되고 있다. 정부 발표에 의하면 2001년 말 가계대출은 341조원, 전년 동기 대비 28% 증가했고, 은행 총대출 중 37%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정부는 가계 대출 증가 요인으로 금리하락에 따르는 소비증가, 고리대 상환, 자영업자의 증가, 기업부문의 투자부진으로 인한 자금수요 감퇴, 신용카드 난발, 할부금융 활성화 등을 들고 있다. 그런데 이 분석은 가계 대출의 수요 측면만 보고, 공급 측면을 보지 못하고 있다. 즉 가계대출이 급증하는 이면에는, 자금 공급자인 은행들이 리스크가 따르는 기업대출을 기피하고 경쟁적으로 부동산 담보 대출에 열을 올리고 있는 또 하나의 원인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부동산 담보주의가 우리 경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 가늠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일본이 경험하고 있듯이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 담보가치가 하락하고 은행의 부실채권이 일시에 증가하여 금융 파탄을 가져 올 수 있다는 것은 당국자가 지적한 바와 같다. 그러나 그 뿐 아니다. 담보 부족이나 가치하락을 재평가로 해결하려는 인플레 압력이 작용할 수도 있고, 가계 부채가 지나치게 팽창하면 어느 시점에서 소비지출이 냉각하여 불황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은행들이 담보에 안주하여 융자사업의 경제적 타당성 검증을 소홀히 하면, 기업의 부실화를 예방하기 어렵고, 따라서 가용 자원의 합리적 배분이 왜곡된다는 문제도 있다.

그러나 또 한가지 중요한 문제가 있다. 지나간 개발년대에는 기업들이 유망사업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았고 그곳에 투자하면 기업과 은행은 다 같이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산업구조가 성숙화하고, 기업 환경이 매우 불확실한 오늘에 있어서는 기업이 어디에 투자를 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결국 요행을 바라거나 시행착오를 거쳐 유망사업을 발견할 수밖에 없는 것인데, 금융기관이 담보에 집착하여 리스크 융자를 기피하면 그것마저 할 수가 없다. 결과적으로 투자 침체와 성장 둔화로 이어 진다.

원래 은행이란 위험 부담을 먹고 사는 산업인 만큼, 위험을 기피할 것이 아니라 관리하는 기관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은행들은 오랫동안 위험부담을 정부에 전가하는 체제하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위험 관리 기법을 익히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지금도 담보를 잡는 가계대출과 국공채 매입과 같은 안이한 경영 방식을 선호하고 있고, 기업대출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로 인해 금리가 낮아도 담보가 없어서 운영자금을 조달할 수 없는 중소기업 들이 많이 있다. 지난 수년간 민간 투자가 저조 내지 감소를 보여 왔는데 이것은 우리의 금융 패턴과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다.

서방의 은행들이 위험을 관리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로 융자에 보험적 요소를 가미하여 예컨대 10건의 융자를 하면 2건의 융자가 잘못되어도 10건의 대출을 할 수 있도록 금리와 대손 충당에 반영하는 방법이 있다. 둘째는 신용평가와 융자 심사기능을 개발하는 것이다. 셋째는 대부채권을 증권화하여 시장에서 유통시키는 방법도 있다. 넷째로 부실기업의 정리 절차를 간소화하고 부실기업이 쉽게 매매되는 시장기능을 개발하는 것이다. IMF 사태이후 이와 같은 제도들이 도입되기는 하였으나 아직은 성과가 미미하다.

그러나 시장 기능에만 맡겨 둘 일이 아니다. 부동산 담보주의를 타파하기 위하여 정부와 중앙은행이 적극적으로 지도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각 은행의 총 대출 중에서 건전한 무담보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하여 한국은행 대부 조건(금리 포함)을 차별화 하는 방법이 있다. 둘째로 은행의 업무 평가에 있어서 신용대출 비율이 높은 동시에 건전성이 양호한 은행을 그러치 않은 은행 보다 높게 평가하는 제도 또는 관행을 만들 수 있다. 셋째로 부동산 담보에 치중하지 않는 서방 은행들의 경영방식을 배우도록 촉구하기 위해, 담보 대출 비율에 과한 가이드라인을 설정하고 단계적으로 최고치를 하향 조정해 가는 방식도 생각해 볼만 하다. 요컨대 부동산 담보주의가 지속되는 한, 구조조정 목적이 달성되었다 할 수 없다. 끝 (2067자)